공룡 컨설팅 기업들, 닷컴 추위에 ''벌벌''
  • 蘇成玟 기자 ()
  • 승인 200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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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지 등 대형 업체들, 인력 유출·애널리스트펌 출현으로 ‘이중고’
최근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은 대형 컨설팅 회사들이 전례 없이 인재난에 허덕이고 있다고 크게 보도했다. 매킨지 같은 경영 전략 컨설팅 회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명문 경영대학원 출신들이 앞다투어 지원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원자가 줄어들자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중위권 경영대학원들까지 기웃거려야 할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이유는 ‘닷컴 기업’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포브스〉 〈뉴스 위크〉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하버드 대학 경영학석사(MBA)들이 인터넷 기업에 지원하는 비율이 20%나 되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투자 은행(12%)을 제치고 지원 순위 2위에 오른 것이다. 1997년 10%였던 지원율이 겨우 2년 만에 갑절로 늘어났다.

사람 구하기만 힘들어진 것이 아니다. ‘집안 단속’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4월25일 〈월 스트리트 저널〉이 인용한 라자 굽타 매킨지 회장의 발언이 이를 대변한다. “인터넷 경제에 대해서는 별로 두렵지 않다. 걱정되는 점은 우리 자부심과 인력에 대한 것이다. 사람 붙잡아두기가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인력 유출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1∼2월 한국에서도 매킨지·보스턴컨설팅그룹·AT커니·앤더슨 등 대형 컨설팅 기업에 근무하던 컨설턴트들이 비슷한 이유로 무려 20∼40%씩 회사를 떠났다. 신참 컨설턴트로부터 고참 파트너에 이르기까지 우수한 경력자들이 조직을 이탈하고 있다. 이는 인력이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컨설팅 회사의 존재 기반을 위협하는 신호일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새롭게 컨설팅 업계에서 세력을 넓히는 세력이 떠올라 주목된다. 정보통신(IT) 업계를 주무대로 삼아 활동해 온 리서치 전문 회사들이 인터넷 붐을 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컨설팅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에 설립된 가트너 그룹·포레스터 리서치 등을 선두로 1990년대 중반 이후 발족한 주피터 커뮤니케이션스·양키 그룹·조나 그룹·에버딘 그룹·메타 그룹·인터넷 리서치 그룹이 대표적인 회사들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회사들을 가리켜 ‘애널리스트펌’이라 부른다.

가트너나 포레스터 리서치가 설립되던 1980년대는 미국에서 정보통신 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시장이 나날이 커지자 새로운 기업과 시장의 정보를 제공하고 또 이를 정확히 평가할 조사·분석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졌다. 가트너나 포레스터 리서치는 바로 그런 틈새 시장을 공략해 사세를 키웠다.애널리스트펌, 인터넷 혁명 타고 막강 세력 구축

199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노다지를 캐려는 기업이 따라서 급증하자, 첨단 기술 산업의 변화 속도는 혁명이라 불릴 만큼 빨라졌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첨단 산업 정보를 제공하는 애널리스트펌도 그에 비례해 빠르게 성장했다.

미국에서 애널리스트펌의 위상은 대단히 높다. 그들이 기업을 어떤 시각으로 분석하느냐에 따라 투자를 유치하는 데서부터 주가를 높이는 데 이르기까지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초 포레스터 리서치가 2001년까지 미국내 닷컴 소매 업체의 83%가 망할 것이라고 보고서를 내자 해당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진 것이 좋은 예다.

그 때문에 영향력 있는 애널리스트펌이 발표하는 유료 보고서는 외면하지 못한다. 정보가 필요한 까닭도 있지만,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가 자칫 불리한 분석이 나올까 걱정해서다. 웬만한 인터넷·정보통신 관련 기업들은 애널리스트펌만 전담하는 홍보 직원을 따로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직접 애널리스트펌을 찾아다니며 회사 현황을 알리고 실적을 자랑하기에 열을 올린다.

그러나 컨설팅 분야에서 애널리스트펌들의 성과를 논하기는 이르다. 미국의 주요 애널리스트펌들도 아직까지는 컨설팅 수익보다 유료 보고서와 각종 컨퍼런스를 열어 기업이나 개인으로부터 거두는 참가비 수익이 더 많다(컨퍼런스는 참석자들 간의 로비나 인맥 구축 무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1997년 세계 컨설팅 시장 규모는 7백30억 달러에 달했는데, 그 가운데 60%를 상위 50개 컨설팅 기업이 차지했다. 1998년에는 세계 1∼20위 컨설팅 기업이 벌어들인 컨설팅 수수료만 4백35억 달러에 달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앤더슨·매킨지 부류의 전통적 컨설팅 기업이다.

19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컨설팅 산업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그것도 1980년대부터 급성장했다. 초기에는 생산성이 급상승하자 기업에 회계 컨설팅을 하고 수수료를 받는 회계 법인이 먼저 등장했다. 언스트영·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등이 회계 법인을 모태로 하여 성장한 대형 컨설팅 회사이다. 20세기에 이르러 1923년 설립된 매킨지와 같은 경영 전략 컨설팅 회사들이 나타났다.

컨설팅 산업이 1980년대부터 고속 성장을 거듭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우선 ‘레이거노믹스’와 ‘리엔지니어링’으로 대변되는 치열한 시장 경쟁과 강력한 기업 구조 조정, 국제적인 무역 자유화 흐름에 따른 해외 시장 공략 등을 들 수 있다. 또 정보통신 혁명에 따라 ‘전사적 자원 관리(ERP)’ ‘자료 관리(DW)’ 같은 기업 전산화 수요도 창출되었다.

이같은 전통적 컨설팅 회사들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매킨지 서울사무소 최정규 파트너는 “컨설팅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고객인 기업 임직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노하우야말로 나머지 80%에 해당하는 진짜 자산이다”라고 역설했다. 그의 주장은 인터넷 경제가 두렵지 않다는 라자 굽타 매킨지 회장의 발언과도 통한다.

또 세계 최대 컨설팅 기업인 앤더슨컨설팅 한국지사 이재형 대표도 “대형 컨설팅 기업은 세계 각국에 포진한 전문가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어 전문성에서 앞선다. 창의성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비판도 있지만, 지금까지 새로운 정보 환경을 기업에 적용하는 일을 해 왔다. 새로운 분야 역시 우리가 더 유리하다”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나타냈다.전통적 컨설팅, 전문성 뒤져 전망 어두워

그렇다면 명문 대학 출신 경영학석사들이 초임 연봉 13만∼15만 달러를 제시하는 대형 컨설팅 회사를 마다하고, 잘 받아야 연봉 5만 달러에 그치는 인터넷 기업으로 몰려드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새로 배출되는 인재들이 인터넷 기업을 선호하는 것이 스톡옵션(stock option)으로 상징되는 ‘대박’ 가능성 때문이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컨설팅 회사에서는 7∼8년 넘게 야근을 밥 먹듯이, 또는 휴일까지 반납해 가며 뼈 빠지게 일해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연봉 50만 달러쯤 받는 파트너 자리에 오를 수 있다. 반면 닷컴 기업에서는 운만 따르면 1∼2년 만에 수백만 달러를 챙기는 벼락 부자가 될 수 있다.

이유는 또 있다. 닷컴 기업에서 젊음을 불사르다가 혹시 회사가 망하더라도 컨설팅 회사를 지원하는 데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컨설팅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의 한 매니저 컨설턴트는 “업무 능력 문제로 회사를 떠난 것이 아니라면, 한 번 나간 인력이 다시 돌아온다 해서 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히려 실무 경력을 더 인정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회사를 떠나더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디지털 경제에 과연 전통적인 컨설팅 기법이 적합하냐 하는 점이다. 인터넷 붐이 일면서 기존 컨설팅 업체들이 자랑하던 방대한 자료나 광범위한 네트워크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아졌다.

기업 내부 문제도 중요하지만, 더욱 큰 변화는 급속히 바뀌는 시장 흐름을 좇아야 하기 때문에 기업 외부 정보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논리적 사고를 토대로 한 분석력보다 창의적 사고에 바탕을 둔 아이디어가 더욱 중시되는 상황이다.

닷컴 기업 때문에 대형 컨설팅 회사의 위상이 상대적으로 하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 때문만은 아니다. 기존 컨설팅 업무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난 점 역시 무시 못할 이유이다.

최근 몇 년간 화려한 학벌과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된 전통적 컨설팅에 대한 회의가 일기 시작했는데, 그같은 시각에 기폭제 구실을 한 책이 1997년 미국에서 발간된 〈위험한 회사; 컨설팅 파워 집단과 그들이 살리고 망친 사업들(Dangerous Company; the Consulting Power Houses and Businesses They Save and Ruin)〉(제임스 매디건·찰스 오세이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경영 컨설팅사를 평가한다〉(세종연구원 펴냄)라는 ‘부드러운’ 제목으로 번역·출간된 이 책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컨설팅 업계의 비리와 문제점을 폭로했다.

한국계 애널리스트펌 ‘프린시피아 그룹’ 탄생

이 책에는 세계 굴지 대기업들의 심복 노릇도 하고, 국가 원수의 고문 역할도 하는 엘리트 집단인 컨설팅 회사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기업 실무에 무지한 신참 컨설턴트라도 전문 기업 집단에 투입되어 해결책을 끌어내야 하는 것이 컨설팅이다. 전문 실무자가 비전문가인 컨설턴트로부터 ‘훈수’를 받아야 할 경우, 서비스의 효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전통적 컨설팅에 대한 회의가 끊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이다.

올해 3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애널리스트펌 ‘프린시피아 그룹’을 만들어 미국 첨단 산업 시장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남유철 대표(38·법학박사)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애널리스트펌이 학벌·이미지 관리 같은 전통 컨설팅 회사의 영업 노하우까지 확보할 경우, 대형 컨설팅 기업의 시장을 잠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라고 전망했다(현재 다른 애널리스트펌들이 유럽 시장에 집중하고 있어, 프린시피아 그룹은 공백 상태나 다름없는 아시아 시장부터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21세기 컨설팅 시장은 전통적 컨설팅 기업들이 애널리스트펌의 추격과 고객의 회의적인 시각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대형 컨설팅 회사들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 시장의 변화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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