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로 분석한 ‘IMF환란’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9.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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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방어용 단기 외자 유치 ‘실책’…외환 시장 개입도 ‘악수’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조사 특위가 주도하는 경제 청문회가 환란의 원인을 밝혀 줄 수 있을까. 또한 같은 상황이 다시 닥치더라도 이를 능히 극복할 교훈을 청문회에서 얻을 수 있을까.

경제 전문가들의 대답은 회의적이다. 이들이 보기에 청문회는 주로 외환 위기를 전후한 시기에 벌어진 각 부처 보고 체계의 난맥상과 구정권 비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이번 청문회보다 앞서 이루어진 감사원과 검찰의 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외환 위기 당시 과연 한국 경제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어 있었나를 진지하게 따져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한국이 IMF 관리 체제로 접어든 후 ‘내가 진작부터 외환 위기를 경고하지 않았느냐’는 사람(기관)이 이상하리만치 많이 등장했다. 그러나 단지 최악의 시나리오로서가 아니라 일관되게 한국 경제의 외환 부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해 온 경제 전문가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볼 때 가장 주목할 만한 목소리를 낸 사람을 꼽는다면, 당시 금융 정책 업무에서 비켜나 있었던 이호철 재경부 서기관(현 지역경제과장)을 꼽을 수 있다. 그는 97년 봄 외환 부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글로 써서 여러 사람에게 보였고, 책으로 펴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책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정작 IMF 관리 체제 직후에야 출간되었다(<경제를 알아야 인생이 보인다> ).

공개적으로 외환 부문의 문제를 지적한 또 한 사람으로 정운찬 교수(서울대·경제학)를 꼽을 수 있다. 그는 97년 6월 나라발전연구회 기념 세미나를 비롯한 각종 세미나에서 “멕시코 위기는 단순히 이론상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 모두 당시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던 환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율을 중심으로 당시 이들이 포착했던 한국 경제의 ‘이상 징후’를 쉽게 풀어본다. <편집자>

환율이란 국가간 화폐 교환 비율을 말한다. 따라서 환율은 다른 나라 화폐에 대한 우리 돈의 가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경제 현상처럼, 환율 역시 외화에 대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된다.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수입에 필요한 달러에 비해 부족하다고 가정해 보자. 환율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우선 달러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커져서 원화 가치가 떨어지고 환율이 오른다.

그렇다면 환율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적으로는 양국의 물가 차이를 반영한 구매력에 따라 환율이 결정된다(구매력 평가설). 한국 물가가 미국에 비해 많이 올라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원화로 살 수 있는 상품의 가치가 달러화보다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원화 환율이 오르게 된다. 이는 달리 표현해 구매력이 높은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늘어서 환율이 오른다고 할 수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환율이 두 나라의 채권·채무 관계나 심리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97년 적정 환율은 1달러당 1천42원

8백원대에 머무르던 97년 환율이 이상 징후였나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원화의 적정 환율이 얼마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적정 환율을 산출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간단하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즉 한국과 미국의 경상 수지가 균형을 이루었을 때 환율을 적정 환율로 보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85년 말과 87년 초가 그랬다. 이 시기 환율을 한·미 양국 간의 적정한 구매력을 반영한 수준이라고 보고, 이를 지난 10년 간의 물가 수준과 비교하면 그동안의 환율이 실제와 큰 괴리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도표 참조).

예를 들어 97년 7월 한국의 생산자 물가지수는 135.3이고 미국은 122.7이었다. 같은 기간에 소비자 물가는 한국과 미국이 각각 177.8과 146.2였다. 두 물가지수를 참고해서 97년 양국 화폐의 구매력에 따른 환율을 계산해 보면 1달러당 각각 9백45원(생산자 물가 기준)과 1천42원(소비자 물가 기준)이 된다. 그러나 당시의 실제 시장 환율은 8백92원이었다.

한마디로 지난 10년 동안 원화 가치가 실력 이상으로 높게 평가되어 있었다는 얘기다. 그동안 물가가 상승해 국내에서 만원의 가치는 크게 떨어져서 이 돈을 가지고 살 물건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구매력이 떨어진 것이 환율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만원을 달러로 바꾸어 해외에 나가면 기분 좋게 이것저것 살 수 있었다. 결국 국산품은 비싸고 외제품은 싸게 느껴져 우리 돈이 외국으로 새나갔다. 94년 반짝 흑자를 보였던 경상 수지가 그후 적자로 돌아서고 해마다 적자가 2배씩 불어났던 메커니즘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실제 구매력이 환율에 반영되지 않았을까. 환율은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자동 조절된다. 무역 적자로 달러화가 빠져나가면 달러화의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을 이루어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자연스레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한국은 부족한 외화를 외국 빚을 얻어 메웠던 것이다. 달러화가 부족할 때마다 정부는 외국인에 대한 주식 시장 개방 폭을 넓혀 외국 단기 자금을 들여왔다. 또 기업이나 해외에 나가 있는 금융기관을 통해 외국 단기 자금을 끌어들였다. 이 때문에 외형상 달러화에 대한 수급은 맞았으나, 이는 빚으로 쌓아 올린 사상 누각이었을 뿐이다. 경제 실체를 반영하지 못했던 원화의 환율은 언젠가 반드시 올라야 했던 것이다(이호철 <경제를 알아야 인생이 보인다> 60∼64쪽).

당시 정부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97년 초 그 해 경제 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성장을 다소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국제 수지와 물가를 잡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했다.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지했다는 점에서는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말만 그렇게 해놓고 실제 정책은 정반대로 집행했다. 성장을 희생하면서 국제 수지 적자와 물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긴축 정책이다(후에 IMF 관리 체제에서 시행한 것과 같은 처방이다). 고금리를 유발해 총수요를 억제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는 한편, 수입 수요를 줄여 국제 수지를 방어하는 방법이다. 환율 절하를 고려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경상 수지 적자에 따라 원화 환율이 절상될 추세를 보이자, 한국은행은 외환 보유고가 줄어드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적극적인 시장 개입에 나섰다. 통화 정책도 저금리를 유도하는 방향이었다. 한보 사태로 인한 여파를 줄이기 위해 시중에 통화를 대량으로 풀었다. 환율 절하를 유보하는 대신 물가 상승 압력을 억제하고, 금리 인하를 통해 기업의 비용 부담을 덜어 주어 수출을 촉진하자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정책 조합은 지극히 위험한 것이었다. 시중에 통화가 많이 풀리면 원화의 대외 가치 하락을 예상할 수 있으므로, 외환 시장 참가자들이 한국은행이 개입해도 달러 사재기에 나설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의 방어 능력이 의심받기라도 하는 날이면 엄청난 외환 위기가 발생할 소지가 다분했다(97년 6월 나라발전연구회 기념 세미나에서 정운찬 교수 발언).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아

이런 상황에서 환율 폭등에 불을 붙인 것이 종금사들이었다. 종금사들은 싼 외화 자금을 단기로 빌려와서 무리하게 중·장기로 기업에 대출해 주었다. 외화 자금 상환에 몰린 종금사들은 기업에 나간 대출금을 황급히 거두어들이는 한편 국내 시중 은행의 하루짜리 급전인 콜 자금까지 얻어서 국내 외환 시장에서 달러를 사모으기 시작했다. 당시 53억 달러 가량 외화 예금을 보유하고 있던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환차익을 기대하며 달러화를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어쩔 수 없이 외환 부도 위기에 몰린 종금사에 긴급 자금을 대출해 주면서, 동시에 폭등하는 환율을 잡기 위해 매일 3억∼5억 달러를 외환 시장에 풀어야 했다. 그 결과 외환 보유고가 나날이 줄어들었다. 97년 11월2일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의 외환 보유고에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다음날 미국의 경제 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 통신이 한국의 외환 보유고가 1백50억 달러밖에 안된다고 보도했다.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IMF 관리 체제 1년은 경제적으로 보자면 원화 환율이 정상화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와서 아쉬움이 있다면, 1달러당 천원 수준에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탓에 1달러당 2천원까지 치솟는 최악의 환율 대란을 겪었다는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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