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한 ‘Mr. 구조조정’이헌재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0.0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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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전문가에서 경제 정책 조정자로 변신 … 조정 능력 발휘가 관건
‘미스터 리스트럭처링(구조 조정)’이 경제팀 총수가 되었다. 신임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은 지난 2년 동안 재벌·금융 구조 조정을 진두 지휘한 야전 사령관. 한마디로 국제통화기금 체제라는 난세가 낳은 스타였다. 그가 토로했듯이 매일매일의 구조 조정 과정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실제로 그는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 구조개혁단 내에 설치된 상황실을 ‘워룸(war room)’이라고 불렀다. 30년이나 케케묵은 한국 경제의 부실과 비효율을 도려내는 일대 소탕전을 벌였으니 그가 적들에 휩싸이고 금감위가 신종 시위 명소로 떠오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는 난공 불락 요새처럼 어떤 로비와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지만 떠나는 자리에서 끝내 소회를 감추지 못했다. 1월14일 오전 금융감독원 강당에서 진행된 이임식에서 그는 2년간 계속되었던 구조 개혁의 기억을 더듬으며 감정이 복받친 듯 네 차례나 울먹였다. 초대 금융감독위원장이자 금융감독원장으로서 후배들에게 서산대사의 한시를 인용하며 당부도 잊지 않았다. ‘눈덮인 광야를 걸어갈 때는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새 천년 한국 경제의 모든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하는 출발 시점에서 재경부장관을 맡게 되어 어깨가 무겁다”라고 취임 소감을 밝힌 그는 ‘준비된’ 재경부장관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금리는 더 낮아져야 하며, 인플레 우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제통화기금 체제의 그늘인 부의 양극화를 바로잡을 소득 재분배 정책도 적극 펼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또 기업·금융·노동·공공 부문의 개혁 과제와 규제 개혁을 올해 마무리하고 시장 경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

중단 없는 재벌 개혁이라는 의중을 드러내려 한 것일까. 그는 개각 발표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도 속된 말로 한판 붙었다. 산업 경제에서 지식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기득권층(재벌 오너)이 자기 보호에만 앞서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전경련 같은 오너 클럽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 것이다.

그는 재벌뿐 아니라 재경부 관료들도 바짝 긴장시켰다. 1월14일 21년 만에 친정인 재경부로 금의환향한 이장관은 “우리처럼 작고 개방된 경제에서는 규제와 권한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다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며 어깨 힘을 빼되 분발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장관을 맞는 재경부 관료들의 속내는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우선 금융정책국 등 금융쪽 관료들은 적극 반기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그가 옛 재무부 출신이어서도 그렇지만 1년 이상 끌어온 재경부와 금감위 간의 영토 분쟁에서 합리적인 휴전선이 그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 옛 경제기획원 출신들이 널리 포진하고 있는 부서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경제기획원 출신 한 국장은 이장관의 경험 폭이 금융과 구조 조정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거시 경제 운용과 소득 재분배, 노사 문제 같은 민감한 핵심 현안들을 그가 과연 솜씨 있게 처리할 수 있겠느냐는 걱정이다. 이런 평가는 이장관의 이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옛 기획원과 옛 재무부 출신 사이의 뿌리 깊은 알력과 상호 견제 정서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이장관은 입각 전부터 ‘이헌재는 금융 전문가일 뿐’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는 그가 특정 분야에서만 유능함이 검증된 인물이므로 경제의 모든 것을 두루 잘 다루어야 하는 경제팀 수장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복선이 깔린 평가였다. 이장관은 경제팀장으로서 필요 조건인 부처간 정책 조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항목에서도 우려를 낳고 있다. 이장관 역시 행정고시 동기(6기)인 강봉균 전임 장관처럼 선배들(진 념 기획예산처장관과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을 ‘모시고’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장관은 강장관보다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재경부가 예산 편성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장관은 정부 조직 개편이 이루어질 5∼6월께는 별 이변이 없는 한 다른 경제부처 장관보다 ‘한 계급 높은’부총리로서 정책 조정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TJ의 강력 천거로 진 념 따돌려

이장관은 1997년 김용환 의원의 천거로 현정권과 인연을 맺었다.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으로 19년 간의 야인 생활을 접었던 것이다. 서울대 수석 입학·행정고시 수석 합격이라는 이력에서 잘 드러나듯이 그에게는 늘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김용환 의원이 재무부장관이었던 1970년대 중반 그는 일개 과장(금융정책과)이면서도 ‘장관급 과장’이라는 부러움과 질시를 한몸에 받을 만큼 신임을 받았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천재성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장관은 34세 최연소 국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기가 무섭게 1979년 율산 파동으로 옷을 벗었다. 그 후 여러 곳을 전전하며 그야말로 떠돌았다. 이런 오랜 야인 생활과 좌절 경험이 천재들이 흔히 보이는 타인에 대한 배려 부족 같은 단점을 극복하게 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장관을 금감위에서 모셨던 한 국장은 그가 소신 있게 구조 조정이라는 대역사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원천을 그가 즐겨 말했다는‘평생자상무관락(平生自想無官樂)’에서 찾았다. 구조 조정 작업이 일단락되면 표표히 떠나 세계를 유랑하며 관직 없는 즐거움을 만끽하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무욕이 경제팀 총수라는 영예를 가져온 것일까.

물론 이장관이 국민회의쪽 실세들이 세게 밀었던 것으로 알려진 진 념 장관과 막판까지 엎치락뒤치락했을 때 이헌재 카드를 고수한 것은 박태준 총리였다. 이장관은 박총리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지만, 불협화음이 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경제 총리’를 자임하는 박총리가, 총리는 내각을 통괄하되 비경제 부처쪽 정책 조율을 맡고 경제는 재경부장관이 책임지고 운영하는 과거의 관행을 깨뜨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박총리와 이장관 간에 경제관이나 노선 차이는 발견되지 않는다.

현정권 제3기 경제팀은 순항할 것인가. 이장관은 경제팀장으로서 얼마나 매끄러운 정책 조정 능력을 발휘할까. 분명한 것은 이장관 앞에는 구조 조정뿐 아니라 거시 경제 운용, 소득 분배, 노사 관계 등 한결같이 다루기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과천 관가에는 벌써부터 스타 플레이어보다 팀워크가 중요하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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