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세계화의 모순
  • 프로리안 슈프너 (한독상공회의소 사무총장) ()
  • 승인 199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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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최근 세계화를 강조하면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가 세계화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93년 새 정부는 개혁을 외쳤다. 그 개혁의 열풍으로 경제계가 위축되기도 했다. 한국에 나와 있는 외국 업체들까지 그 영향을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부정과 부패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한국에 나와 있는 많은 외국인 사업자들은 지금도 사업을 할 때 이러한 부정과 부패를 피부로 느낀다고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무슨 의미로 세계화라는 말을 쓰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도대체 그 상식적인 말을 정부가 그렇게 복잡하게 규정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어쨌든 서양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계화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세계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시장 개방’이 세계화

구미인들에게 세계화란 세계와 교류하고 자신들의 제도나 상관행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준과 조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들이 세계화를 하겠다고 처음 외쳤을 때, 구미인들은 이를 한국인들이 시장을 열고 시장 자유화 정책을 더욱 과감히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인들이 외친 세계화가 시장 개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한국 정부는 세계화가 시장 개방으로 오해 받는다며 세계화의 영문 표현을 ‘`Globalization’이 아닌 ‘Segyehwa’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한국 정부가 세계화를 어떻게 규정하든 관치 금융의 틀을 깨지 못하는 정부가 세계화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음은 누가 보아도 우습다. 세계화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데도 삼성그룹이 승용차 생산을 위한 외국 기술 도입 때문에 정부 눈치를 보고 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외국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외국 기업이 한국 기업을 매수하거나 합병할 수 없도록 금하고 있는 것도 세계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 아닌가. 현대그룹의 명예 회장이 대통령에 출마했다고 해서 정부가 그 그룹에 보이지 않는 제재를 가한다는 말이 공공연한 사실로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무도 이러한 정부의 제재가 비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94년 한국은 유럽연합에 자동차를 무려 10만대나 수출했다. 그러나 같은 해 한국이 유럽으로부터 수입한 차는 고작 천대가 넘지 않는다. 94년 5월 외국 자동차를 구입한 사람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물론 한국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무역 상대국의 불평이 심해지자 한국 정부는 모든 형태의 수입품 억제 조처를 철폐하겠다고 공표했다. 그 발표가 있자 독일로부터 수입하는 소비재 물량이 갑자기 두배 이상 늘었다. 이 통계는 한국 정부의 수입품 소비 억제책이 분명히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 13위의 무역 대국이다. 국민총생산의 약 40% 이상을 수출하는 나라이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은 무역과 투자에서 국제적인 규칙과 동떨어진 자신들만의 관행과 원칙을 고집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화를 원한다면 우선 국제 규칙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반개방적인 정책·관료 행정 버려라

한국이 시장 개방에 대한 약속을 지킬 때 세계도 한국에 대해 신뢰를 가질 것이다. 개방을 통한 진정한 세계화만이 무역 의존적인 한국이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 정부는 민간 경제에 대한 간섭과 통제를 줄여 나가는 것이 자신들의 세계화임을 알아야 한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이 다시 경제 대국으로 일어선 과정을 한국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독일도 경제 재건 초기에는 개방이 힘들었다. 그러나 개방을 통해 국제 사회에서 인정 받는 견실한 경제를 구축했다. 이제 한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도 독일이 투자와 무역을 개방한 자유로운 시장이고 투자지임을 알고 있다.

한국이 망설임 없이 시장 자유화를 밀고 나간다면 경제는 더욱 눈부시게 성장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확신이 없어 보인다. 세계화를 외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추진하고,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후보까지 내세우면서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반개방적인 정책과 편협하고 숨막힐 듯한 관료 행정을 과감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세계화의 모순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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