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되는 농·축협, 새 ‘협동’ 담을까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9.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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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협동조합법, 진통 끝에 국회 통과…농민 위한 단체로 거듭나는 것이 숙제
국회가 8월13일 농업협동조합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2000년 7월 거대한 협동조합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법의 처리 결과는 협동조합과 직접 관련이 없는 도시민에게도 큰 관심사였다. 농림부 안이 나온 지난 3월부터 농업협동조합(농협) 과 축산업협동조합(축협)이 서로 다시 안볼 듯이 으르렁대고, 농민 단체들은 양쪽 진영으로 갈려 각각 통과와 저지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 축협 노조가 광고 등으로 농림부와 김성훈 장관을 거칠게 비난해 명예 훼손 공방이 벌어지는 등 분위기도 험악했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충격 속에 몰아넣은 것은 이 법안 통과 전날 발생한 신구범 축협 회장의 할복 사건이었다.

관련 기관장이 자살을 기도한 초유의 사태를 몰고 온 농업협동조합법은 어떤 법일까. 이 법안의 골자는 농협·축협·인삼협동조합 중앙회를 통합하며(수산업협동조합과 임업협동조합은 제외), 그 밑에 농업 경제·축산 경제·신용 등 세 개 사업 부문을 두는 것이다. 책임 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세 부문의 경영을 전담할 대표이사를 두는 것도 특징이다. 신용 사업(은행)은 일반 은행과 동일하게 은행법 상의 건전 경영 지도를 받는다.

‘할복’신구범 회장, 개혁 필요성에 줄곧 의문 제기

정부 설명대로라면 조직을 효율화하고 책임 경영을 유도하며, 금융(신용 사업)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인데 축협은 왜 그토록 반발하는 것일까. 8월14일 서울 성내동에 있는 축협중앙회는 신회장의 할복 사건이 부른 비장감으로 터질 듯했다. 여기다 때마침 중견 관리자 22명이 경찰에 연행되어 분위기가 한층 격앙되어 있었다. 신회장이 파업 자제를 촉구하는 담화문을 보내온 탓인지 업무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지만 투쟁 의지만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축협은 올해 내내 농협과 축협의 단순 강제 통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펴왔다. 신구범 회장은 취임(7월9일) 초부터 “협동조합 과제에 대한 정부의 진단과 처방이 잘못되었다”라면서 친정인 농림부를 공격했다(신회장은 1급인 기획관리실장을 지내는 등 농림부에서 잔뼈가 굵은 관료 출신이다).

신회장과 축협은 협동조합 개혁이 왜 필요하냐고 원천적인 의문을 제기해 왔다. 비대한 중앙회 조직을 축소하고 농민을 위하기보다 돈 장사(신용 사업)에 치중해 온 폐해를 시정하는 것이 개혁의 목적이라면, 통합 법안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회를 단순 통합하는 것이어서 더욱 비대해질 우려가 있으며 경제 사업과 신용 사업(은행)을 분리하지 않은 것도 현재의 문제점을 전혀 개선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는 반대 논리는 통합이 축산업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점.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기관이 필요해 81년 농협의 특수조합 형태였던 축협이 떨어져 나와 딴살림을 차리게 되었는데 왜 지금 다시 합쳐 20년 전으로 후퇴하느냐는 주장이다.

물론 이런 반대 논리에 대해 농림부는 대부분 설득력 없다고 일축한다. 농림부는 세 개 협동조합 중앙회를 통합하지만, 최대한 살빼기를 할 것이어서 비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통합 중앙회는 협동조합 고유 기능인 지도·교육·정보·농정 활동을 관장하며 부문별 조정 역할에 그친다는 것이다. 또 중앙회가 직영하는 경제·유통 사업을 회원 조합에 넘기거나 공동 사업 방식으로 전환해 중앙회 기능을 축소하는 반면, 회원 조합에 힘을 실어 주어 명실 상부하게 농민이 주인이 되는 협동조합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농림부는 경제 사업과 신용 사업 분리에 대해서도 각 사업 별로 독립적인 회계와 결산 제도라는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인된 국제 기관의 검증을 통해 통합 후 2년 이내에 신용 사업을 완전히 떼어내는 것이 좋은지 현행대로 한 울타리 안에 사업부 형태로 두는 것이 적절한지를 검토 과제로 남겨 놓았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다.

축산업의 전문성 부분도 마찬가지. 농림부는 농업과 축산업이 구분되어 있는 데다, 국회 통과 과정에서 축산업 대표이사가 충분히 독립적으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고쳤기 때문에 이 주장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농업협동조합법에 축협측 주장이 상당히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정부와 국회가 독립 법인화라는 축협의 주장을 수용하지는 않았지만, 품목조합연합회에 법인 자격을 주어 경제사업연합회 구성을 실질적으로 인정했다. 다시 말해 축협의 주장대로 경제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또 축협 조합장 대표자 회의에서 단수로 추천된 사람을 동의 절차 없이 축산 부문 대표이사로 선출하고, 통합 후 구조 조정 과정에서 조합별 직원 규모를 고려해 형평성을 잃지 않도록 했다. 농협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인 축협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받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것이다.

농림부 협동조합개혁추진단의 한 관계자는 ‘그런데도 축협이 반발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의심했다. 이 관계자는 축협이 이런저런 반대 논리를 내세우지만, 자기 조직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이 진짜 이유라고 주장했다. 농협의 8분의 1 수준인 축협이 통합을 잡아 먹히는 것으로 인식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축협의 한 관계자는 “밥그릇 싸움이라고 볼 여지가 없다고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것은 농업과 축산업의 밥그릇 싸움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라고 반박했다(현재 농업 부문에서 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4%).

“통합 논쟁에 찢어진 농심 헤아려라”

축협측이 거세게 반발한 데는 그밖에 다른 요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회장 할복 직후인 8월13일 이범섭 축협 부회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법안 추진 과정에서 행해진 ‘외압’에 대해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축협의 한 관계자는 문제의 외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협동조합 개혁이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라는 공권력을 발동해 농협과 축협을 무력화시켰다.”

실제로 2월 말과 3월 초 농협과 축협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검찰도 협동조합 비리 수사 결과를 지난 5월 발표했다. 검찰은 비리 연루자 8백61명을 밝혀내고 이 가운데 죄질이 나쁜 2백87명을 구속했다. 공안 사건이 아닌 일반 범죄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비리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여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축협의 또 다른 관계자는 “물론 농협도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농협은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들은 별 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로서는 수뇌부가 무장 해제를 당했으니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지난 4월 김대중 대통령은 “농업인들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된 농업협동조합법은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농림부의 말대로 아직은 ‘그릇’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릇에 담겨질 내용물은 농림부와 이해 당사자가 참여해 곧 발족할 설립추진위원회의 몫이다.

전남 장흥군의 한 농민은 한 일간지에 이런 투고를 했다. “1년 이상 계속된 통합 논쟁은 농민 간에 반목과 갈등을 조장시켜 농심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농촌 현실에서 농협과 축협에 이중 가입하지 않은 농민이 몇 명이나 되는가. 통합이 되든 안되든 관심없다. 정말 농민에 희망을 주는 쪽으로 가야 한다.” 이 농민의 바람대로 협동조합은 농민을 위한 단체로 거듭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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