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평] 수출은 좋고 수입은 나쁘다?
  • 이두원(연세대 교수·경제학) ()
  • 승인 1997.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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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미 간에 자동차 협상이 결렬되자 미국이 슈퍼 301조를 발동했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서 O-157균이 검출되자,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미국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는 우리가 보복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한국에서의 수입품 불매운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소비자들의 인식에는 수입품 구매를 죄악시하는 잠재 의식이 깊게 깔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지난해 경상 수지 적자 규모가 국내총생산의 5%에 육박하는 2백37억달러에 이르자 많은 국민들은 한국 경제가 멕시코나 태국처럼 외환 위기를 맞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세계 11위 무역국인 한국이 언제까지 수입에 대한 거부감과 무역 적자에 대한 막연하고 근거 없는 불안감을 지닐 것인지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한국 경제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과소비를 비난하는 소리를 듣게 되며, 과소비의 대표 격인 수입 사치품을 비난하는 여론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국내총생산 대비 34% 저축률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경제가 과연 과소비 경제인가 하는 의구심은 둘째 치고라도, 수입이 과소비의 온상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사치품 수입, 전체 수입액의 1.5%에 불과

작년의 경우 우리의 전체 수입액인 1천5백3억달러 중에서 약 89%는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자본의 수입이었다. 나머지 11%가 식료 및 소비재 수입이었으나, 이중에서 우리가 흔히 사치품이라고 일컫는 의류·가구·승용차 수입은 21억달러에 불과해, 전체 수입액의 1.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입 구조를 놓고 볼 때 수입이 과소비를 부추기고 있으며 사치품 소비재 수입이 무역 적자의 주범이라는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일반적으로 수입 자유화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소비자들에게 선택할 기회를 더 많이 제공하며 국산품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이러한 혜택은 대부분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런데도 소비자단체가 수입품 불매운동을 벌이는 일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기현상일 것이며, 이러한 운동의 이면에는 수입을 적대시하는 우리들의 뿌리 깊은 잠재 의식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무역 적자와 경상 수지 적자 문제를 보는 견해 역시 몇몇 잘못된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흔히 소비재 수입과 과도한 해외 여행 경비 등 대외적 요인을 경상 수지 적자의 주범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상 수지와 같은 대외 거래에서의 균형은 자본의 유출입과 관계가 있어 이 둘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즉 국내 경제의 대내 균형이 무너졌을 때 경상 수지와 같은 대외 균형 역시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이며, 현재 한국 경제는 투자와 저축 사이의 대내 균형이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작년의 국내총생산 대비 투자율은 약 38%로 저축률(34%)과 비교해 볼 때 4% 가량 격차를 보였는데, 이러한 대내 불균형이 경상 수지 적자로 이어졌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저축률을 높이거나 투자율을 낮추는 두 가지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현상태에서는 저축을 늘리기보다는 비효율적이고 중복되는 투자를 피함으로써 투자 효율을 높이고 투자율을 낮추어 국내 저축률과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수입 문제와 경상 수지 문제에서 발상 전환을 꾀해야 할 단계에 와 있다. 감정적이고 국수적인 수입 규제 운동이 과연 진정한 애국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 것이다. 국산품 애용이 좁은 의미의 소극적 애국이라면 국산품을 외국 수입품 이상의 품질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넓은 의미의 적극적 애국이 되는 것이다. 여행 수지 적자 문제 역시 국내인의 해외 여행을 규제하기보다는, 국내 관광산업을 제대로 육성해 해외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여행 수지를 개선하는 올바른 방향이 될 것이다.

국민소득이 만달러를 넘어서고 자동차 생산량이 세계 5위인 나라에서 도로에 외제 수입차가 보이는 것이 하등 이상한 현상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무역 적자를 보는 견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적자의 원인과 처방을 밖에서 찾기보다는 투자와 저축의 대내 불균형을 시정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쪽으로 인식 전환을 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없다면 한국 경제는 외국 선진국의 눈에 늘 폐쇄적인 시장으로 비칠 것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성숙한 선진국 경제로 진입하기가 요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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