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뱅크,비리 뱅크인가 희생양인가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9.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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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조작·해외전환사채 헐값 발행 의혹 ‘진상 추적’
코스닥 시장의 기린아로 불리는 인터넷 업체 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즈(골드뱅크)는 ‘비리 뱅크’인가, 아니면 성공을 시샘하는 적들로부터 억울한 모함을 받는 것인가? 이번 국정 감사에서 국회의원 4명은 골드뱅크가 주가를 조작했으며, 해외전환사채를 발행해 정치 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골드뱅크의 사업 목표는 사이버 공동체 건설. 97년 2월 창업한 뒤 ‘광고를 클릭하면 돈을 준다’는 아이디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급성장했다. 인터넷 쇼핑몰과 각종 정보 제공 서비스가 주요 사업 분야로, 창업 2년 반 만에 회원 수가 1백25만명으로 무섭게 불어났다. 골드뱅크는 이미 골드상호신용금고·동부창업투자·지비캐피탈·이지오스·나산플라망스 농구단 등 관계사 및 출자 회사를 13개나 거느린 ‘그룹’으로 떠올랐다.

시세 조종 의혹의 여러 가지 물증

골드뱅크는 무서운 확장 속도 탓인지 여러 구설에 시달렸다. 특히 현정부 유력 인사가 뒤를 봐준다는 설과 시세 조종 혐의가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골드뱅크 주가가 지난 1년간 급등한 것은 사실이다. 98년 10월12일 코스닥 시장에 등록했을 때 골드뱅크 주가는 8천원. 12월 말까지만 해도 대체로 만원대 안팎에서 움직였다. 그러다 올해 들어 이 주식은 심상치 않게 움직였다. 1월12일 1만3천원대이던 골드뱅크 주가는 2월2일 6만3천원대로 급등했다. 15일 동안(영업 일수 기준) 5배 가까이 뛴 것이다. 이사철 의원(한나라당·정무위)은 이 때가 1차 시세 조종기라고 지목했다.

이의원이 2차 시세 조종기로 꼽은 4월9일∼5월20일의 골드뱅크 주가 움직임은 더욱 예사롭지 않다. 4월9일 3만7천5백원이던 것이 5월17일에는 30만7천원(종가 기준)까지 올랐다. 26일 동안(영업 일수 기준) 무려 718%나 오른 것이다. 골드뱅크 주가는 5월20일 장중 한때 연중 최고가인 31만2천원까지 치솟았다.

물론 주가가 급등한 것만 가지고 시세 조종이라고 몰아갈 수는 없다. 증권거래법이 금한 행위를 한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의원은 시세 조종 혐의로 몇 가지 근거를 들었다. 우선 코스닥 종목의 매매 심리를 맡고 있는 증권업협회가 98년 10월13일부터 99년 1월29일까지 골드뱅크 주가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직전 가격 대비 고가 매수 혹은 대량 매수 계좌 가운데에는 ㅎ증권 영업부 계좌 5개가 포함되어 있다. 이 계좌를 통해 ㅎ증권은 1월13일 전체 시장 매수량의 62%, 18일 58%, 21일 43%, 25일 43%, 28일에는 무려 75%나 사들였다. 2차 급등기에도 비슷한 거래 유형을 보였는데, ㅎ증권은 이 기간에 하루 시장 거래량의 평균 30%를 집중 매수했다. 증권업협회가 9월16일 금융감독원에 통보한 1월4일∼6월18일의 ‘이상 매매 심리 재조사 결과 보고서’에도 상호 담합 혹은 특정인이 주도해 거래가 이루어진 혐의가 지적되었다. 이사철 의원으로부터 주가 조작 창구로 지목된 ㅎ증권 영업부는 이렇게 사들인 골드뱅크 주식을 5월7일과 5월17일 모두 팔아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ㅎ증권 영업부 이사가 골드뱅크 전환사채 투자자인 신 아무개씨와 형제라는 사실이다. 또 증권업협회는 김 아무개 등 투자자 12명이 ㅎ증권 계좌 등을 통해 개장 직전 상한가 주문을 냈다가 다른 투자자들이 덩달아 상한가로 사자 주문을 내면 취소하는 수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은 주가 조작 자체가 없었다고 펄쩍 뛴다. 주가가 자신도 놀랄 만큼 뛴 것은 사실이지만, 주가 급등은 골드뱅크뿐만 아니라 인터넷 관련 주식 모두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주장이다. 김사장은 또 인터넷 기업에 제조업체에 적용하는 주당 순이익 같은 잣대를 들이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김사장은 올해 흑자를 낼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골드뱅크가 올 상반기 14억원 적자를 내는 등 한 번도 흑자를 낸 적이 없어 재무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사이버 증권사 설립에 관한 의문점

사이버 증권사 설립 건도 의혹을 받는 대목이다. 수수료 0%인 사이버 증권사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김사장이 주장하듯이 지난해 말부터 알려진 사실이다. 중앙종합금융과 함께 그럴 계획이 있다는 공시도 여러 차례 냈다(그러나 중앙종합금융은 사석에서 오간 얘기라고 일축하며 합작 사실을 부인한다). 그런데 골드뱅크가 5월10일 3백35억원을 유상 증자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낸 ‘유가 증권 신고서’에는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 항목에 ‘상반기에 별도 법인 설립 후 7월 중 영업 개시를 목표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5월20일 금융감독원은 머지 않아 골드뱅크가 증권업에 진출하는 것처럼 투자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다며 정정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금감원이 정정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열흘 동안 주가가 파죽지세로 올라갔다. 골드뱅크는 5월30일 정정보고서를 내면서 금감원이 요구한 사이버증권사 설립 계획서를 제출하지 못했다.

이사철 의원은 “영업 개시를 불과 한달 앞두고 계획서조차 내지 못했다면 애초에 계획 자체가 없었던 일 아닌가. 주가를 띄우기 위한 사기극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주장한다. 김진호 사장은 물론 상반된 주장을 한다. “사이버 증권사 설립 계획은 여전히 유효하다. 당시에는 금감위의 인허가 기준 자체가 마련되지 않아 세밀한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고, 합작선이었던 중앙종합금융 김석기 사장이 구속되어 차질이 빚어졌을 뿐이다(김석기 사장은 5월28일 외화 밀반출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6월1일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또 광고를 못하게 하는 등 여건이 달라져 상황을 지켜보는 중인데, 일단 사이버 증권사를 설립하는 데 필수 조건인 전산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이지오스라는 회사를 이미 만들었다. 이래도 사기인가?”

골드뱅크 주가 조작 의혹은 다른 회사의 경우와 달리 단순하지 않다. 감독 당국 연루설이 제기되고 있으며, 심지어 국부 유출과 정치 자금 조성설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이사철 의원은 금융감독원이 지난 2월 시세 조종 혐의를 조사하고도 혐의 사실을 축소·은폐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 정정 명령을 내리고도 유상 증자가 계획대로 진행되게 했으며, 골드뱅크가 전환사채 발행 신고서를 내지 않았는데도 전환사채를 증권예탁원에 늑장 예탁하게 함으로써 전환사채 인수자들이 주식 3백51만 주를 불법 취득하게 했다는 것이다. 유상 증자분에 해당하는 이 주식을 7월15일과 16일 대량 매도해 4백27억원의 부당 이득을 취하게 했다는 주장이다. 마침 지난 4월 금융감독원 직원 2명이 골드뱅크와 관계사인 동부창업투자에 이직해 ‘봐주기 설’에 힘을 얹었다.

골드뱅크가 사이버 증권사 설립과 액면 분할 (5월 액면 가격을 10분의 1로 낮춤) 같은 재료를 일부러 흘려 주가를 고의로 띄우려 했다는 일부의 주장이 맞다면, 골드뱅크는 왜 그런 일을 꾀했을까. 우선 연속 적자로 경영 위기에 봉착한 골드뱅크로서는 순조로운 자금 조달이 절실했을 것이다. 골드뱅크는 98년 11월20일부터 올 1월26일까지 열아홉 차례 전환사채를 발행해 65억원을 끌어모았다. 99년 6월 유상 증자에서도 3백35억원을 조달했다. 신주가액이 4천6백원으로 당시 주가(2만3천원대)에 비해 거저나 다름없었으니 실권이 발생할 리 없었다.
라시·드렉슬러 펀드의 실체

총 6백45억원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올 3월17일부터 4월29일까지 1천2백만 달러(1백44억8천만원)어치 해외전환사채를 발행한 대목이다. 이 전환사채를 산 곳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라시 펀드와 드렉슬러 펀드. 이 거래는 이번 국감에서 국부 유출과 정치 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부분이기도 하다. 우선 헐값 발행 의혹. 세 차례(20∼22회) 이루어진 해외전환사채는 발행일 당시 주가보다 5분의 1이나 낮은 가격으로 발행되었다. 이에 대해 골드뱅크는 두 달 전에 계약이 이루어졌으므로 계약 당시 주가에 비해 전환 가격이 낮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계약한 뒤 ‘우연히’ 주가가 뛰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해외전환사채는 국내에서 발행된 전환사채와 달리 전환 즉시 주식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다. 실제로 라시·드렉슬러 펀드는 1개월 뒤 주식으로 전환해 엄청난 시세 차익을 남겼다. 드렉슬러 펀드는 6월14일 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18일과 21일에 3백31만5천주를 몽땅 팔아 두 달도 채 안되어 시세 차익 6백60여억 원을 챙겼다. 라시 펀드도 1백47만주를 팔아 시세 차익 2백30여억 원을 얻었다.

골드뱅크는 돈을 구해서 좋고 투자자는 시세 차익을 얻어 좋은, 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래를 주선한 사람은 중앙종합금융 김석기 시장이다. 그런데 김사장은 거래를 주선하고도 이득을 얻기는커녕 손해를 보았다. 드렉슬러 펀드가 쏟아낸 주식 가운데 1백60만주를 주당 2만8백원에 사들여 2백억원 가량 평가손을 입은 것이다. 그래서 당시 중앙종합금융 내부에서는 투자를 잘못했다는 내부 비판이 나돌았다.

그러나 지난 10월7일 국감에서 김민석 의원(국민회의·정무위)이 라시·드렉슬러 펀드의 돈이 김석기 사장 돈이고, 김사장이 골드뱅크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중앙종합금융은 10월8일 해명서를 냈다. “드렉슬러 펀드가 실현한 이득을 당사 이득으로 콜백할 수 있는 옵션을 갖고 있었다. 6백60억원이 이미 당사의 이익으로 잡혀 있다. (평가손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4백50억원 이익이 발생했다.” 국부 유출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골드뱅크 의혹은 밝혀지지 않는다?

국부가 유출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맞는다 해도 도대체 이런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드렉슬러는 시세 차익을 얻으려고 투자를 했을 텐데 왜 시세 차익의 99%를 중앙종합금융(혹은 김석기 사장)에게 준다는 ‘이면 계약’을 맺었을까. 김민석 의원이 주장한 것처럼 드렉슬러 돈이 김석기 사장 돈이거나,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는 의혹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언론과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는 김석기 사장을 대변해 중앙종합금융 윤승진 이사는 “내용을 잘 모르겠다. 국제 금융 거래에는 당사자만 아는 계약 내용이 많다. 친분 때문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도 “자금 조성은 전적으로 김석기 사장이 맡아 처리했다”라고 말할 뿐이다.

김민석 의원의 주장이 터무니없는 설이 아니라는 정황 증거는 또 있다. 두 역외 펀드와 맺은 전환 사채 발행 계약서를 보면,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의 직인과 함께 라시 펀드 쪽은 김석기 사장, 드렉슬러 펀드 쪽은 중앙종합금융 상무 최재영씨의 서명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계약서에는 두 사람이 위임을 받았다는 표현이 없다. 또 3월23일 라시 펀드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주식 등의 대량 보유(변동) 보고서’에도 보고자 서명 난에 역시 김석기 사장 서명이 있다(5월6일 드렉슬러가 제출한 같은 보고서에도 보고자 난에 최재영 상무의 서명이 있다). 라시 펀드의 업무 연락처가 김석기 사장 소유인 홍콩 소재 킴바코 사와 같다는 점도 석연치 않다. 이에 대해 윤승진 이사는 명확하게 대답하는 대신 “골드뱅크와 김석기 사장을 억지로 얽어매려는 불순한 세력의 음해 공작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 중앙종합금융은 해명서에서 김석기 사장이 라시 펀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김사장이 라시 펀드의 비상임 이사라는 사실은 김사장도 시인한 부분이다. 라시·드렉슬러 펀드가 아예 실체가 없는 유령 회사이거나, 이 펀드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김석기 사장이라는 일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는 대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중앙종합금융은 6월 말 현재 골드뱅크의 2대 주주(6.01%)인데, 만약 김사장이 비상임 이사 정도가 아닌 라시 펀드의 실질 지배자라면 라시 펀드가 골드뱅크의 최대 주주(17.97%)이기 때문에 김사장이 골드뱅크의 실제 주인이라고 보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골드뱅크 김진호 사장은 누구로부터도 경영 간섭을 받은 적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골드뱅크 주가는 세간의 의혹처럼 조작된 것일까. 라시·드렉슬러 두 해외 펀드는 급조되거나 들러리를 선 것일까. 또 이 거래에서 얻어진 돈이 로비 자금으로 정치권에 흘러들어간 것일까.

이 모든 의혹들이 이번 금융감독원 2차 조사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 증권가에는 벌써부터 냉소적인 시각이 팽배하다. “금감원이 의지를 갖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일일이 법률 자문을 받아 금융 거래를 한다는 김석기 사장이 꼬투리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의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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