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백화점 줄줄이 도산
  • 羅權一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1997.10.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롯데·신세계 등과 경쟁하다 자금난 못이겨
지방의 중심 도시를 연고로 삼아 ‘경쟁 무풍지대줁에서 순탄하게 성장해 오던 지역 토착 백화점들이 최근 서울에 근거를 둔 대형 유통업체가 지방에 진출하자 경영난으로 줄줄이 쓰러지면서 지방 유통업계가 극심한 구조 조정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부산의 토착 백화점인 태화쇼핑이 부도를 내고 경영주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한 데 이어 8월12일에는 전북 전주의 유명 백화점인 전풍백화점(대표 한준우)이, 9월19일에는 광주의 대표적 유통업체인 화니백화점(대표 이덕룡)이 천억원대에 가까운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백화점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지금까지 부산·광주·전주를 포함해 서울·청주·울산 등지에서 백화점 여섯 개가 부도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올들어 화니·전풍 등 6개 부도

몰락한 백화점들은 재벌 백화점과 대규모 유통업체의 지방 공략에 맞서 매장 규모를 확대하는 등 무리한 ‘몸집 불리기’로 대응하다가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쓰러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부산 태화백화점의 경우 현대와 롯데 백화점의 부산 진출에 맞서서 8백억원을 들여 신관을 개관하고, 천억원을 투입해 2호점을 개설하는 등 매장 확대에 골몰하다 제 2 금융권이 채권을 회수하자 1차 부도를 낸 뒤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광주 화니백화점도 광주 신세계백화점에 이은 나산클레프 등 대형 유통업체의 개장에 대응하기 위해 본점 주변의 토지와 건물을 매입해 매장을 확대하고, 8백여 억원을 들여 본점 매장의 7배가 넘는 1만6천평 규모 ‘화니 주월점’을 신축하다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법원에 화의를 신청했다.

77년 광주 지역의 선발 유통업체로 개장한 화니백화점은 가든백화점과 함께 지역 상권을 10년 가까이 양분해 왔으나 지난 95년 문을 연 송원백화점·광주 신세계백화점과 치열한 4파전을 벌여오다가 극심한 매출 부진으로 인해 끝내 부도를 맞고 말았다.

지난 2년간 광주 신세계(점장 조석찬)는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 지난해 광주 지역 백화점 업계 총매출액 5천5백억원의 50%를 점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가 성공한 것에 자극받은 서울의 롯데백화점도 광주시 대인동에 부지를 확보해 내년 8월 개장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

비단 재벌 백화점만이 아니다. 광주 지역에는 특히 할인매장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져 국내 최대 규모 창고형 할인매장인 나산클레프가 지난 9월9일 개장한 데 이어 프랑스에서 건너온 까르푸가 99년에 광주시 광천동에 개점할 예정이다. 네덜란드계 다국적 기업인 마크로와 미국의 월마트도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해외 유통업체 진출도 임박

지방 백화점들은 이러한 유통업계의 지각 변동에 맞서 다양한 생존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할인점 업태를 겸해 중·소 도시로 진출하는 다점포 전략 △의류 전문매장, 식품·생활용품 전문매장 등으로 차별화 △‘향토 백화점을 살리자’는 구호로 재벌 그룹 백화점이 지역 자금을 바깥으로 유출하는 점을 환기하면서 애향심에 호소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광주 청전가든백화점(대표 이화성)의 경우 유동 인구가 많은 광주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다는 입지 조건을 최대한 활용해 의류·캐주얼·잡화 등 전문 매장으로 승부를 건다는 방침이고, 송원백화점(대표 고경주)은 ‘고향 백화점’이라는 이점을 극대화하되 고급 브랜드를 취급하고 서비스의 질을 높여 고객 차별화를 꾀할 예정이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지방 토착 백화점들의 이러한 활로 개척과 관련해 “지방 백화점의 생존전략은 차별화와 전문화, 영업 제휴 그리고 할인점이 제공할 수 없는 고객 서비스와 생활 편의시설 확보뿐이다. 이제는 굳히 백(百)화점일 필요가 없다. 八十화점이나 五十화점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 토착 백화점들의 살아 남기 전략이 얼마나 먹혀들지 의문이다. 갈수록 유통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재벌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들이 지방으로 대거 밀려드는 현실에서, 재무 구조가 취약한 지방 백화점들은 맨 먼저 휘청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