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금 ‘전주민의 상인화’
  • 장영희 기자 (view@sisapress.com)
  • 승인 1996.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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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지하 경제는 국민 경제의 몇%가 아니라 몇배에 달한다. 김만철씨 가족과 윤 웅·고청송·박수현씨 등 귀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주민은 생필품의 80%를 암시장에서 구한다. 암시장이 없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들은 직장에서 훔치거나 밀수를 통하여 중국 등 외국에서 들여오는 경우와, 권력을 활용해 국영 상점에서 싸게 사거나 외화 상점에서 구한 귀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암시장에서 가장 많이 유통되는 단일 품목은 옥수수이다.

암시장 가격은 대체로 국영 상점의 10배 정도인데, 품목에 따라서는 백배까지 올라간다. 그런데도 거래가 활발한 것은 월급만 갖고 사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세대주가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70원 정도인데, 주부가 암시장에서 장사를 해 얻는 수입은 3백∼4백원이나 된다. 공식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도 부업을 한다.

보따리 밀수가 북한 경제 젖줄

지금 북한에서는 ‘전주민의 상인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전지역이 식량 및 물물교환 장터로 변했다. 암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은 세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전체 인구의 3∼4%를 차지하는 전문 장사꾼이다. 이들은 퇴직자, 병 때문에 노동불능자로 판정 받아 사회보장을 받도록 되어 있는 사람, 가정 주부 등이다. 국경 지대에 나가서 중국 장사꾼들로부터 양말·신발·시계 등을 사들여 북한 전역에서 약 2배 값으로 파는 이들은, 지역의 안전원이나 보위부원 등에게 뇌물을 써 규제를 당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집단은, 직장에 다니면서 틈틈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인데, 전체 인구의 50%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인정 받아 출세하기보다는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을 중시한다.

세 번째 집단인 나머지 40% 정도는 북한 체제에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드러내놓고 장사를 하지는 않아도 권력을 이용하여 음성적으로 시장에 참여한다.

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는, 심각한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북한이 버티고 있는 것은, 중국과 북한 국경을 오가며 이뤄지는 보따리 장사 교역이 주민 생활에 젖줄 구실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박사는 이런 경로로 이루어지는 무역액이 북한·중국간 공식 무역액(5억5천만달러)의 55%나 되는 3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계획 경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지하 경제가 창궐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북한의 경우는 다르다. 민족통일연구원 서재진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암시장은 계획 경제를 보완하기보다 대체하는 성격이 강하다’라고 지적했다.

경제가 침체해 배급 경제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하자 생필품을 구해야 하는 절박함에서 암시장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북한은 장사꾼 증가와 암시장 성행이라는, 사회주의 체제에 유해한 자본주의 행위를 틀어막으려 애쓰고 있지만, 바로 이 점에서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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