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땐 휴게소 이권 굴뚝에 연기 나랴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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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운영권 입찰 의혹 갈수록 커져… ‘권력 실세 개입’ 풍문 끊이지 않아
김영삼 정부 들어 진행된 사업 가운데 재계가 가장 많이 의혹을 제기해온 사업으로는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권 입찰 △지역 민방 사업자 선정 △유선 방송 사업자 선정을 꼽을 수 있다. 김현철씨 비리 수사 과정에서도 이와 관련해 일부 기업이 청탁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은 광주 라인건설과 대전 삼정건설이 김현철씨의 측근인 박태중 (주)심우 대표에게 고속도로 휴게소 허가와 지역 민방 사업자 선정에 대한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를 준 혐의를 포착했다. 검찰은 또 김현철씨의 자금 관리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성호 전 대호건설 사장이 소사 휴게소 운영권을 따낸 경위도 수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서도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은 김현철씨 비리 폭로의 물꼬를 텄던 박경식씨가 휴게소 입찰과 관련해 청탁을 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문민 정부의 상징적인 의혹 사업이 되었다. 박씨가 김현철씨 몰래 녹화하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의해 공개된 비디오 테이프에는, 그가 고속도로 휴게소를 하나 했으면 한다고 밝히자, 김씨가 필요한 자료를 갖다 달라고 말한 장면이 들어 있다.

그 후 박씨는 국회 한보 청문회에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대한 청탁을 왜 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신임을 확인하기 위해 아무 거나 요구해 보았다’고 얼버무렸다. 그러나 숱한 이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휴게소였을까. 혹시 휴게소 사업에 김영삼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풍문을 들었던 것은 아닐까.

연 매출액 40억원에 이르는 ‘현금 장사’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이란 95년 2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주요 고속도로의 휴게소와 주유소 운영권을 민간 부문에 임대하기 위해 실시한 입찰을 말한다. 정부가 공기업 민영화 차원에서, 이전까지 직영하던 휴게소와 주유소 운영권을 5년간 중소기업에 임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1단계 입찰에서는 휴게소 25개와 주유소 19개가 낙찰되었으며, 2단계에는 휴게소 10개와 주유소 13개가 입찰 대상이 되었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가 뭐 그리 대단한 이권이겠느냐 하겠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전국 64개에 이르는 휴게소 한 군데의 연평균 매출액은 40억원에 육박하고, 주유소 47개는 각각 50억원에 달한다(94년 기준). 일단 임차만 하면 특별한 설비를 더하지 않아도 영업을 할 수 있고, 꾸준히 현금이 들어온다는 점도 좋은 조건이다. 이 때문에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공개 입찰의 평균 경쟁률은 100 대 1에 이르렀다.

재계에서는 휴게소 입찰 전부터 외부 세력이 이 사업에 개입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이 소문에 대해서는 이 입찰 건을 주관한 한국도로공사측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도로공사가 휴게소와 주유소 입찰 지원자들에게 배포한 입찰 유의서 말미에는 이와 관련한 경고 사항이 담겨 있다. ‘근거 없는 말과 자료를 믿지 마시고 상세한 내용은 본 책자에 수록된 자료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아래 자료 ①)

그렇잖아도 고속도로 휴게소 민영화 방침만 정해지고 입찰 결정이 내려지기 전부터 이 이권 사업과 관련해서 소문이 무성한 터였다. 정부가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전부를 김영삼 정부와 관계가 원만했던 ㄹ그룹에 넘겨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해서 휴게소와 주유소를 각기 개별 임대하는 공개 입찰을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는 정부가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의혹이 일까 봐 염려한 결과였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이례적인 낙찰 결정 방식 때문에 의혹 증폭

설상가상으로 재계의 의구심이 크게 증폭된 것은 유례 없는 낙찰 결정 방식 때문이었다. 도로공사가 한 연구기관에 의뢰해 만든 이 방식은, 통상 최고가를 써넣으면 낙찰되는 정부 입찰 방식과 크게 달랐다. 도로공사측이 미리 정한 예정가 이상을 써넣은 입찰자를 대상으로 하되, 최고가를 써넣은 입찰자를 기준으로 하여 15%까지 입찰 대상자를 자른 후, 이들이 써낸 금액의 평균가 바로 위 금액을 써낸 입찰자를 낙찰자로 정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고안해낸 연구기관이 내건 명분은, 중소기업 입찰자 간의 과열 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정답(적정가)을 아는 한 업체만을 낙찰시켜 주기 위한 방식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행해지는 최고가 입찰이라면 입찰자들이 최고가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지만, 이런 방식에서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낙찰가는 사후 평균치에 의해 결정되므로, 입찰 전에 어떻게 해볼 여지가 전혀 없는 셈이다.

입찰을 앞두고 도로공사 사장이 전격 경질된 일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신임 사장은 민주산악회 출신으로 도로공사 감사로 있던 ㅂ씨. 공기업 감사가 사장으로 간 예도 드물었지만, 전임 사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교체된 사실이 눈길을 끌었다.

95년 2월의 1차 입찰 직후 소사 휴게소에 낙찰된 세미냉장(대호건설의 계열사) 외에도 3∼4개 업체가 입방아에 올랐다. 그 가운데 한 업체인 ㄴ사 ㄱ 사장은 당시 입찰 과정을 캐묻는 취재진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그런 얘기를 어디서 들었느냐”라고 묻기도 했다.

정작 더 큰 의혹은 1차 입찰이 끝나고 나서 생겨났다. 일부 기업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되사주겠다는 제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제안은 휴게소와 주유소 입찰 참여가 원천 봉쇄된 대기업(2차 입찰에서는 허용)에도 쏟아져 들어왔다. 당시 제안을 했던 당사자와 직접 접촉한 한 대기업 비서실 관계자의 말을 들어 보자. “이미 낙찰된 휴게소를 되사줄 수 있다고 하기에, 민주산악회 출신이라는 한 인사를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의 설명인즉 입찰은 끝났지만, 휴게소 낙찰 업체 가운데 몇 개는 몇몇 휴게소를 민주계 몫으로 남겨놓기 위한 위장 회사이므로 웃돈만 약간 얹어주면 이를 다시 살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인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단순히 허풍이었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실치 않다. 입찰 유의서에 따르면, 낙찰되어 임대 계약을 체결한 후에는 운영권을 제3자에게 재임대하거나 대여 또는 양도할 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위 자료 ③).

그러나 여기에는 정해진 날짜까지 낙찰가를 납입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한 상세한 규정이 없어, 논리상으로 낙찰된 업체가 임대권을 포기하고 이를 다른 기업이 인수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실제로 그런 경우가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의 대기업 관계자는 “휴게소 입찰과 관련한 악성 유언비어가 끊이지 않아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접촉을 중단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추악한 뒷거래가 이루어진 것일까. 정부 관계자들은 일단 그랬을 가능성을 부인한다. 당시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 입찰 과정을 내사한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하도 말이 많아 조사를 해 봤는데 입찰이 조작됐다는 근거가 없었으며, 감사원과 검찰도 별 문제가 없어 내사를 종결한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아직까지는 고속도로 휴게소와 주유소의 운영권 입찰과 관련해 조직적인 이권 개입과 같은 부정이 저질러졌는지 여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것은, 단지 여러 기업이나 사람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의 운영권을 얻기 위해 김현철씨와 그의 측근들에게 청탁을 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휴게소 입찰과 관련해 기업들이 먹히지도 않을 청탁를 하고 다녔을 만큼 무모했을까. 그렇다면 실제로 문민 정부의 핵심 세력들이 개입하려고 시도하다가 말이 많아지자 포기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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