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G 자동차 씽씽 달릴까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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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서’ 등 족쇄 풀려고 쌍용·기아 인수 모색… 4대 재벌 중심 자동차산업 재편론 증폭
삼성자동차의 쌍용자동차 인수와 LG그룹의 기아자동차 인수설이 일부 언론에 대서특필된 지난달 중순, 삼성그룹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케케묵은 소재 아닌가.” 이 두 가지 소문은 지난 3년간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나돌던 것이다. 이 기간에 일부 자동차 회사 경영진은 이례적으로 이런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공식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자동차산업 재편과 관련된 보도가 그동안 떠돌던 소문보다 더욱 진전된 몇 가지 사실들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는 것 같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삼성의 기존 자동차 업체 인수 의도이다. 그동안 삼성그룹은 공식으로 기존 자동차 회사를 사들일 뜻을 밝힌 적이 없다. 93년 기아자동차가 삼성의 인수 의도를 폭로했을 때도 삼성그룹은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삼성, 자동차회사 인수 검토팀 가동

이번에는 달랐다. 비록 매수·합병 대상은 바뀌었지만, 삼성그룹이 기존 자동차 회사 인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물론 쌍용자동차 인수를 검토했다는 것뿐이지, 아직 어떤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특히 협상 타결 여부를 좌우할 양 그룹 최고 경영자의 의향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삼성그룹 내부에 기존 자동차 회사 인수를 검토하는 실무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사저널>은 이 팀이 인수 시나리오에 대한 쌍용그룹의 기류를 파악했으며, 그 결과 쌍용그룹 차원에서는 삼성보다는 LG를 선호하나 쌍용자동차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삼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 팀의 조사 결과도 삼성의 희망 사항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의 입장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무노조 원칙을 고수하는 삼성그룹이 인수하는 데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쌍용자동차 노조는 소문이 기사화한 후 경영진을 만나 진의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에 관해 정통한 삼성그룹의 한 소식통은 “삼성자동차 조기 정상화가 그룹 경영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으며, 기존 업체 인수가 가장 좋은 방법인 것만은 분명하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쌍용자동차 인수가 그런 차원에서 검토된 것일 뿐 최선책은 아니라면서, 아직도 기아자동차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반도체 값이 하락해 그룹 전체의 경영이 예전 같지 않은 삼성그룹이 자동차사업이 수익을 낳을 때까지 필요한 투자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그룹 안팎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98년 1월 승용차 생산을 개시해 2002년 50만대 양산 체제를 갖출 때까지 필요한 총 투자액은 4조3천억원. 그 이듬해부터 흑자로 전환해 2005년께 주식을 상장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자금 문제말고도 삼성자동차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또 다른 장애가 있다. 94년 승용차 시장 진출 당시 기존 업체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차원에서 당국에 제출한 각서가 그것이다(표 참조). 이 각서의 내용 가운데 수출 비율을 정한 조항이 부담스럽다. 이에 따르면, 98년 생산 개시 연도에는 30%, 양산 체제를 갖추는 2002년에는 50%를 수출해야 한다. 현재 기존 자동차 업계의 수출량은 전체 생산량의 40%를 갓 넘긴 상태다. 따라서 시판과 동시에 삼성자동차가 수출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수출 비율을 달성하기 위해 선진국 자동차 업체들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동남아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더욱이 이곳은 가전제품 덕분에 삼성의 지명도가 상당히 높은 곳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삼성경제연구소는 ‘`동남아시아 자동차 시장 평가’라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으며, 여기에 생산과 판매 거점으로 태국이 적당하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기존 업체들은 아무리 삼성의 이미지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이곳 소비자들이 가전제품보다 10배 이상 비싼 자동차를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각서 가운데 기존 업체로부터 인력과 부품업체를 빼오지 않겠다고 한 조항도 삼성자동차의 조기 정상화를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자체 인력 양성을 위해 지금까지 엔지니어 6백명을 제휴선인 일본의 닛산에 파견했고 88개 부품 업체 모임인 지성회(志星會)를 결성했지만, 이것으로는 태부족이다. “결국 각서를 스스로 파기하든지, 각서의 조항을 뛰어넘는 매수·합병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기다.” 앞의 소식통의 말이다.

따라서 삼성자동차가 기존 업체를 인수할지 여부는 궁극적으로 정부의 의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삼성그룹의 승용차 시장 진출에 여전히 부정적인 경제 관료들이 많은 상황에서는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최근 경제팀의 실세로 꼽히는 한 관료는 “그동안 잘해온 전자산업을 토대로 정보통신산업 쪽으로 매진해야 할 삼성이 자동차산업에 뛰어든 것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자동차산업 재편의 핵으로 떠오른 기아자동차는 일부 경제학자들에 의해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사회적 여론도 이를 쉽게 용인해줄 리 없다. 93년 말 매수·합병을 허용하는 조처로 도입할 예정이던 ‘상장기업 주식 소유 10% 상한제’가 사실상 철회된 것도 기아그룹처럼 주식이 잘 분산된 기업들은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기 때문이다.
LG 계열사, 자동차 부품·소재 생산

LG그룹 역시 단기간에 자승자박 형국을 빠져나올 길이 없다. 취임 후 기자들을 만나 ‘짝사랑’이라는 전제 아래 기아자동차 인수 의사를 강력히 표명했던 구본무 회장이 ‘자동차사업을 할 의사가 없다’고 자신의 말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의 발언에 대해서는 정보통신산업 진출을 위한 사전 정지 차원에서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어쨌든 그의 발언은 삼성그룹의 각서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적 약속인 셈이다. 이 때문에 LG그룹 관계자들도 하나의 가상 시나리오로서 기존 자동차 업체 인수 방안을 검토해볼 수는 있겠지만, 현실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다만 일부 계열사의 경우 이미 자동차 관련 부품이나 소재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성차 제조업 진출의 교두보는 확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외부의 시각이 있기는 하다.

그렇다면 끊이지 않는 자동차산업 재편 소문의 진원지는 어디일까. 이런 소문으로 피해를 보는 업체들이 생각하듯이 일부 불순 세력이나 주식시장은 아니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그 배경이 점차 어두워지는 자동차산업의 미래라고 보고 있다.

애당초 우리나라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수입차와 비교적 경쟁이 덜한 내수 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고, 해외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력에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에 이익률이 상당히 낮다. 예를 들어 전체 매출액에서 경상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인 매출액 경상 이익률은 1%가 채 안된다. 그런데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만 한다.

93년까지 두 자리 수를 유지했던 내수 시장 증가율이 4% 선으로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부 개발도상국에서 수출이 호전되고 있다는 징후가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해당 지역을 집중 공략한 결과일 뿐 수익성에 보탬이 되지는 않는다. 그 결과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올해 적자를 우려해야 할 상황까지 이르렀다(캐나다 브로몽 공장 폐쇄에 따른 손실을 연차적으로 상각해 나갈 수 있어 회계상으로는 적자 우려가 없다).

이런 상황이라면 자금 동원력이 크고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거대 기업들만이 살아 남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결국 기존 자동차산업 구도가 장기적으로 4대 재벌 중심으로 재편되지 않겠느냐는 소문은 상당 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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