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EU 새식구 동유럽을 내 품에”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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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 유럽연합 확대에 맞춰 ‘동진 정책’ 박차
지난 5월1일, 세계 최대의 경제 블록이 탄생했다. 동유럽 및 지중해 10개국(사이프러스 체코 헝가리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타 폴란드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이 유럽연합(EU)에 새로 가입하면서 회원국이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번에 10개국이 가입함에 따라 유럽연합은 유럽 시장을 거의 포괄하게 된다. 총 인구가 4억5천만명으로 늘어나고, 국내총생산(GDP) 규모도 10조9천억 달러로 증가해 거대한 경제적 ‘슈퍼 파워’로 거듭나 미국과 어깨를 겨루게 되었다.

‘EU 빅뱅’이라고 불리는 이번의 10개국 가입은 역사를 따져보면 1951년 독일·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룩셈부르크·네덜란드가 유럽석탄철강공동체를 창설한 이래 유럽연합의 5차 확대에 해당한다(1973년 덴마크·아일랜드·영국 가입. 1981년 그리스 가입. 1986년 스페인·포르투갈 가입. 1995년 오스트리아·스웨덴·핀란드 가입).

그동안 신규 가입국과 기존 유럽연합 국가는 10년 이상 협상을 진행해 왔다. 1993년 코펜하겐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 가입 조건이 제시되고, 1998년부터 폴란드·헝가리·체코 등 6개국과 가입 협상이 진행되었다. 신규 가입국들도 국내 법령과 제도를 유럽연합의 지침에 걸맞게 일치시키는 준비 작업을 해왔다.

이번 유럽연합의 5차 확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냉전의 잔재를 없애는 역사적 대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세 낮아져 수출에 일단 청신호

EU 빅뱅은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새로 가입한 10개국은 제3국에 대해 공동 관세를 설정하고, 재정·금융·과학기술 등 주요 경제 분야에서 공동 정책을 시행한다. 상품·자본·서비스 등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다. 신규 가입국들은 추가로 1.7~3.2%포인트 가량 경제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10개국이 겪게 될 가장 큰 변화는 관세 인하다. 그동안 동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 관세보다 높은 관세(평균 9%)를 부과해 왔다(헝가리 11.7%, 폴란드 15.2%, 슬로베니아 8.8%). 그러나 유럽연합에 가입하면서 역외 공동 관세 정책에 따라 신규 10개 회원국의 평균 관세율이 기존 유럽연합의 평균 관세율(4%)로 낮아진다. 이같은 관세 인하는 한국 기업이 수출을 늘리는 데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 확대는 관세가 낮아지고 시장이 확대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 측면도 동반한다. 신규 가입한 10개국이 유럽연합의 통상 규범을 채택함으로써 역외국에게 반덤핑 관세와 제품 표준화 기준을 확대 적용하기 때문이다. 신규 가입국들이 유럽연합의 엄격한 환경·노동·식품 위생 등 기술 규정을 내세움에 따라 수출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 유럽연합은 칼라 텔레비전·반도체 D램 등 10개 품목에 대해서 반덤핑 규제 조처를 취하고 있으며, 2004년 들어서는 조선·철강 등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한 상태이다. 이종화 교수(공주대·경제학)는 “가공식품·화학·철강·기계 등은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자동차·의류는 수출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현재 동유럽에서는 서유럽 기업들이 생산 시설을 세우는 직접 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기존 유럽연합 국가에 비해 노동 비용이 낮은 것이 현지 투자를 유인하는 요인이다. 기존 유럽연합 15개 회원국들의 시간당 노동 비용이 22.21 유로인 데 비해, 헝가리는 3.83 유로, 폴란드는 4.48 유로에 불과하다. 임금이 가장 싼 라트비아의 경우는 시간당 2.42 유로로 유럽연합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이번 유럽연합 확대를 계기로 국내 대기업들도 헝가리·슬로바키아 등에 진출하는 ‘동진 정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역외 관세를 우회하기 위해 현지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에 생산 법인을, 폴란드에는 판매 법인을 두고 있다. 동유럽 마케팅도 강화하고 있는데, 체코 프라하 전지역에서는 시내 전차에 광고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불가리아·루마니아 등 동유럽 전지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전자 구주총괄 김영조 부사장은 “유럽연합이 25개국으로 확대되는 것을 계기로 서유럽은 마케팅·연구 개발·디자인 등에, 동유럽은 생산에 역점을 두는 등 유럽 지역의 경쟁력 제고 및 특화에 주력할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슬로바키아에 현지 공장을 세우기로 했고, LG전자는 동유럽에 백색 가전 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2006년 20만대 규모로 생산을 시작할 방침이다. 기아자동차는 슬로바키아 기공식에 이어 현지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기아 페스티벌’을 여는 등 대규모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현재 유럽연합은 이미 한국의 3대 수출 시장으로서 4위의 교역 파트너다. 2003년 기준으로 수출액은 2백49억 달러, 수입액은 1백94억 달러에 이른다. 특히 1998년 이후 매년 50억 달러 가량 무역 흑자를 기록해 유럽연합과의 무역은 외화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유럽연합의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박수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는 투자 환경을 활용해 직접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직접 투자는 동유럽 시장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에 진출할 전진 기지를 구축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는 설명이다. 이종화 교수는 “장기적으로 유럽연합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유럽연합은 산업간 상호 보완성이 높기 때문에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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