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본주의 원조는 개성 상인"
  • 金芳熙기자 ()
  • 승인 1997.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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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들, '전통 상인 정신' 재조명 활발…경제난 극복 대안 모색
한 개성 상인 일가의 역사를 다룬 박완서씨의 원작 소설을 극화한 MBC 드라마 <미망(未忘)>. 이 드라마를 즐겨보는 시청자라면, 극 흐름으로 보아 꽤 중요했던 한 대목을 기억할 것이다. 할아버지 전처만이 후계자로 지목한 전태임은 개성에 은행을 세워, 개성 상인들이 해외에 지부를 설립하는 데 쓸 자금을 모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전씨 집안과 철천지 원수였던 일본인 자본가 하야시의 공작으로 좌절된다. 하야시가 총독부를 움직여 은행 설립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절망한 태임은 눈물을 머금고 분을 삭인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은 당연히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마련이다. ‘과연 개성 상인들은 한일합병 이후 일본 자본가들에 맞서 은행을 세우고 해외 지부를 둘 만큼 막강했던가. 만일 그런 계획이 실현 되었더라면 우리 자본주의 역사는 완전히 바뀔 뻔했던 것이 아닐까.’

적어도 학문적으로 개성 상인이 특별히 주목되었던 적은 거의 없다. 경제학자들이 이 상인 집단에 관심을 가져본 적은 더더욱 없다. 다만 개성 상인이 남긴 세계 최초의 복식 회계 장부라는 송도사개치부(松都四介治簿) 정도가 회계학자들의 관심을 끌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개성 상인 정신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표적인 곳이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부설 국민경제교육연구소. 이 연구소는 ‘개성 상인의 정신을 계승한 한국 자본주의 모델 연구’라는 방대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으며, 최근 1단계 연구가 마무리 되었다(<초기 한국자본주의의 형성 과정과 발전에 관한 연구:개성 상인을 중심으로 한 일고찰)>.
이 연구를 담당하는 김영수 연구위원은 “우리에게도 전통적인 상인 문화가 있었다는 점을 밝혀내면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에 참여하고 부를 축적하는 데 관심을 가지는 것을 단순히 구미 천민자본주의의 한 단면으로만 치부하는 세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막스 베버가 구미 자본주의의 정신적 근간을 청교도주의(프로테스탄티즘)에서 찾았듯이, 우리도 개성 상인 정신에서 한국고유의 자본주의 정신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조선 왕조에서는 사회 활동의 신분적 구분을 강조한 사농공상(士農工商) 전통 탓에 엘리트들의 상업 활동이 드물었던 것은 사실이다. 개성 지역이 유일한 예외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고려 시대 수도였다는 역사 배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왕조로부터 중용될 수 없었던 그곳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장 높은 지식 수준을 갖춘 상인집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개성 상인, 해외 시장 개척에도 관심

특히 개성인들은 일찍이 지금의 상공회의소와 같은 구실을 하는 도가(都家)를 두어 상호 친목을 도모하고 권익을 보호하면서 상권을 발굴해 나갔다. 그들은 고려 시대 전반에 걸쳐 해외 무역을 활발히 벌였던 고려 상인의 핵심 후예답게 국내 각 지방뿐만 아니라 중국 등지에 해외 지부인 송방(松房)을 두고 해외 시장 개척에도 관심을 가졌다.

더욱이 자본이 없는 개성 사람들 가운데 전주(錢主)에게 돈을 빌려 지방에 내려가 사업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개성 상인 조직은 은행이나 신용조합 성격까지 띠고 있었다. 이런 전통 때문에 광복 후에도 개성 출신 상인 가운데 누가 가게를 열면 개성 사람 모두가 자본을 대주는 예가 잦았다. 비록 개성 상인들응 밀려오는 일본 자본 앞에 역부족이었지만, 드라마 <미망>에서 태임이 짰던 계획은 ‘가능한 허구’였던 셈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상인 정신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보이는 관심은,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위해 ‘잊지 말아야 할’ 미덕이 무엇인가를 탐색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근면·저축·검소·협조. 이는 68년 개성 시민회가 발행한 친목도모용 책자에 선명히 찍혀 있는 ‘개성인의 신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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