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기고 보자" 섹스 어필 광고 급증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6.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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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어필 광고 급증…광고와 섹스 전략적 연대, 稅收 노린 정부 용인도 한몫
최근 남자라면 누구든지 한번 보면 바로 눈길을 거두기 어렵게 만드는 광고가 나왔다. 미국 아이스크림업체인 웰스사가 개발한 아이스크림 블루바니의 광고이다. 짧은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담은 이 광고는 나오자마자 남성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젊은 여자의 두 다리가 속옷이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여자의 속옷은 보이지 않는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시선을 카피로 옮긴다. 도대체 이 광고가 무슨 제품에 관한 것인지 알기 위해서다. 이로써 승부는 났다. 이 광고는 단지 여자로 하여금 두 다리를 벌리게 한 것만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제작비를 별로 들이지 않고도 말이다. 이희연씨에게는 모델료로 고작 1백50만원만 주었을 뿐이다.

최근 들어 블루바니 광고와 같은 ‘섹스 어필’ 광고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끄는 것이 광고의 최고 목표라면 성(性)만큼 효과적인 소재도 없다.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고와 성의 전략적 연대가 가능한 것이다.

나체·성기 엿보려는 남성의 관음증에 편승

이제는 예전과 달리 남자 누드를 이용한 광고도 심심찮게 나온다. 그럼에도 섹스 어필 광고는 거의가 여전히 여자들의 벗은 모습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이는 남녀 공용 제품에 대한 섹스 어필 광고가 대개 여자 누드를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방편으로 이성의 나체나 성기를 엿보려는 남자들의 관음증에 의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남자들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광고로는 핀란드 통신업체인 노키아사의 휴대폰 광고가 있다. 완전 나체인 외국인 여자가 등을 보이면서 속옷을 손에 들고 둔부를 살짝 가린 채 서 있는 모습이 뇌쇄적인 광고이다. 휴대폰과 여자 누드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럼에도 여자 누드가 남자의 관음증을 자극하기 때문에 노키아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이는 휴대폰과 여자 누드가 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여자 누드에 연대를 요청한 제품으로는 컴퓨터와 VTR도 있다. LG전자의 그린 PC 광고는 완전 나체인 여자가 등을 보인 채 컴퓨터 자판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삼성전자의 VTR 광고에도 완전 나체인 여자가 등장하는데 젖가슴이 드러난다. 이로써 이들 상품도 성능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결국 이들 광고는 여자 누드와 연대하지 않고는 어떤 상품도 광고 효과를 보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여자 누드를 보여줌으로써 남자들의 관음증을 자극하는 광고들은 프로이트적이다. 남자는 관음증에, 여자는 노출증에 걸려 있다는 말을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했다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들로 이루어진 카피만으로 섹스 어필하는 광고는 라캉적이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은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카피만으로 섹스 어필하는 광고는 전통적인 누드 광고보다도 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카피로 섹스 어필하는 광고는 여자 누드를 등장시킨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여자 누드를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는 반면 이중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들로 섹스 어필하는 카피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와 같은 광고 카피는 대부분 짤막하고 재미도 있어 한동안 유행되기 때문에 여자 누드를 동원한 광고보다 효과가 크다고 볼 수 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나오는 롯데제과의 아이스크림인 더블 비앙코 광고가 라캉적인 광고의 대표이다. 바로 ‘줘도 못먹나’라는 카피 때문이다. 물론 이 카피는 더블 비앙코를 한 병사가 제대로 먹지 못하자 조교인 탤런트 이상아가 내뱉는 말로서 평범하다. 그러나 ‘주다’와 ‘먹다’라는 동사들이 은어적으로 남녀 간의 성관계를 의미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카피는 사실 엄청나게 섹스 어필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다’와 ‘먹다’라는 동사보다 더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동사는 바로 ‘하다’라는 동사이다. 이는 최근 개봉된 이탈리아 영화 <올 레이디 두 잇(All ladies do it)>에서도 확인된다. 결혼한 모든 여성들은 외간 남자들과 성관계를 갖는다는 내용인 이 영화의 제목에서 ‘하다(do)’라는 동사는 바로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을 상징한다. ‘하다’를 카피에 넣어 섹스 어필하는 광고가 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라미화장품의 야채 베타라는 화장품 광고의 카피가 ‘하다’라는 동사를 동원해 섹스 어필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문제는 광고 서두에서 탤런트 김희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벗고 할까? 입고 할까?’라는 질문이다. 이것만 가지고는 그녀가 옷을 벗은 채 성관계를 할 것인가, 아니면 입은 채 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좀더 지켜보아야만 화장품 광고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화장품의 이드라 루즈 광고도 정도는 덜하지만 ‘하다’라는 동사로 섹스 어필하여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한 광고이다. 올봄에 히트한 이 광고의 카피는 짧게 입고, 깊게 하고, 프렌치 핑키만 바르는 것이 여성들이 봄에 튀는 법 세 가지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깊게 한다’는 것은 프렌치 키스를 의미하는 것으로, 제품명인 프렌치 핑키 & 오렌지의 ‘프렌치’와 교묘하게 연결되는 말이다.

어떻게든 상품 소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

몇몇 광고를 제외하고 제품의 특성상 전혀 관계 없는 여자 누드와 자극적인 섹스 어필 카피가 광고에 등장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 버린 까닭은 물론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광고의 궁극적인 목적은 제품을 많이 파는 데 있다. 그래서 섹스 어필 광고가 유행하게 된 배경에는 광고를 통해 제품을 많이 팔고자 하는 광고주들의 요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광고대행사 대보기획 정유정 과장은 광고주가 섹스 어필 광고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잘만 만들면 섹스 어필 광고는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쉬울 뿐만 아니라 제품 판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화장품 이드라 루즈 광고의 카피를 직접 쓴 그는, 광고주들이 섹스 어필 광고를 선호하는 까닭에 카피 라이터가 원하지 않는 광고 카피가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인다.

섹스 어필 광고가 제품의 이미지 구축과 판매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LG전자의 그린 컴퓨터가 완전히 옷을 벗은 젊은 남녀 한쌍을 내세워 광고한 결과 매출이 급신장했다는 점에서 섹스 어필 광고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광고가 나온 94년 초 한 달 평균 컴퓨터 판매 대수는 만대를 훨씬 넘어섰다. 93년 말에는 한 달 평균 5천대였다.

게다가 얼마 전 <월간 현대경영> 조사부가 30대 그룹 홍보부장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섹스 어필 광고의 효과가 만만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 20명 중 15명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고작 3명만이 ‘그렇지 않다’라고 응답했다. 그리고 전체 응답자 중 80%가 섹스 어필 광고가 상품 광고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것을 인정했다.

섹스 어필 광고의 효과가 이와 같이 크기 때문에 생활 필수품마저 기계적으로 성적 의미를 부여받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타이어든 관(棺)이든 어떤 신제품이 시장에 내보내질 때에는 항상 똑같은 장소를 겨냥해서 고객을 획득하려고 한다. 그 장소란 대개 여자의 벨트 아래 부분이다. 성 자체가 소비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광고에서 개발되지 않은 여성의 성감대는 이제 1㎜도 남지 않은 실정이다.

결국 오늘날의 광고는 엘리트에게는 에로티시즘이고 일반 대중에게는 포르노인 셈이다.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자인 장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섹스 어필 광고가 이와 같이 자유롭게 범람할 수 있는 것은 성을 이용하는 광고업자들의 배후에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성의 상품화를 용인해서라도 기업들이 생산한 상품이 소비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의 의무인 것이다.

보드리야르의 통찰은 한국에서도 관철되고 있다. 블루바니 광고와 같이 노골적인 섹스 어필 광고가 버젓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정부가 광고 규제를 거의 안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일기획 제작1팀 최인아 부장은 현재 텔레비전·라디오를 통해 방송되는 광고와 식품·의약품 광고를 제외하고는 규제가 거의 없는 형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정부가 광고주들로 하여금 성을 이용해서라도 상품을 팔 수 있게끔 보이지 않게 도와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국가와 기업의 결탁은 기업이 상품을 많이 팔수록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성을 이용해서 소비자들로 하여금 상품을 소비하게끔 하는 것이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건전한 소비 사회 건설을 위해서 상품의 특성과 전혀 상관없이 성을 파는 광고는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최인아 부장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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