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동대문 ‘시장의 왕’ 쟁탈전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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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신상권 파상 공격에 남대문 ‘흔들’…첨단 빌딩 건설 등 재개발 경쟁도 치열
서울 남대문시장은 조선 왕조 같은 서글픈 종말을 맞을 것인가. 조선 태종 14년(1414년)에 개장한 남대문시장은 5백80여년 동안 재래 시장의 맹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마치 구한말과 같은 내우 외환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남대문시장 역시 스스로 안고 있는 한계와 급격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내 최대 시장이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남대문시장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남대문시장 안에서 건물주에게 보증금을 내고 입주한 공식 점포는 5천8백여 개나 된다. 한 점포를 여러 상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공식 점포까지 합치면 1만2천 개를 웃돈다. 상주 종업원 수는 5만여 명으로, 세계 제2위의 제철회사인 포항제철 사원보다 많다. 하루 유동 인구는 20만~5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주차 능력은 주차장 9개를 모두 합쳐 7백45대밖에 안된다. 매일 새벽 남대문시장 일대가 지방 상인들이 몰고온 차량들로 뒤엉켜 극심한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상이다.

신용금고·상인, 남대문 버리고 동대문으로

주차 공간 문제는 지방 상인들로 하여금 남대문시장에 등을 돌리고 동대문시장으로 발길을 옮기게 만든다. 올해 2월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STD유통경제연구소가 지방 상인들을 대상으로 시간대별 유동 인구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방 상인들은 밤 11시부터 밤 1시까지 동대문종합운동장을 중심으로 한 신상권에서 물건의 대부분을 구입한 후, 밤 2시께 2차 구매를 위해 남대문으로 이동한다(81쪽 도표 참조).

동대문시장은 동대문주차장 1천1백60대, 축구장 부설 주차장 1백30대, 현대주차장 백대 등 모두 1천6백25대를 주차시킬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지방 상인이 몰리는 심야 시간에 이용할 수 있는 청계천 대로변의 임시 주차 능력까지 감안하면, 동대문시장은 새벽 도매 시장의 필수 조건인 주차 문제를 거뜬히 해결한다.

남대문시장의 위기를 드러내는 조짐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예컨대 상호신용금고들이 남대문 상권을 떠나고 있다. 명동에 본점을 두고 남대문시장 상인을 주고객으로 영업해온 신중앙상호신용금고는 최근 을지로 3가로 사옥을 이전했다. 진흥·해동·신신 상호신용금고도 남대문을 떠나 동대문 등지로 영업 지역을 바꾸고 있다. 권리금을 비교해도 남대문 시장의 위축을 쉽게 알 수 있다. 남대문시장 삼익패션프라자 1층의 권리금이 1억5천만원 정도인데 동대문시장 아트플라자 1층 권리금은 4억원을 웃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민심 이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누죤(서황개발)·우노꼬레 등 일곱 업체가 동대문시장에 지상 14~33층짜리 대형 의류도매센터를 건설하고 있는데, 동대문의 신상권 개발업자들은 남대문시장에서 활약한 맹장들을 입점자로 끌어들이고 있다. 남대문 남성복 상가인 시티보이에 입점한 모든 점포가 동대문시장의 우노꼬레로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거평그룹도 동대문에 도매센터를 건설하고 있는데, 이 회사 유통사업부 이민수 대리는 “거평도매센터에 입주하기로 되어 있는 상인의 50%가 남대문 시장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계무역기구(WTO) 개방 일정에 따라 96년부터 세계 모든 나라의 의류가 국내에 아무런 제한 없이 수입된다. 내년부터 중국·동남아 등지에서 생산되는 값싼 의류들이 강력한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남대문시장을 비롯한 국내 의류 도소매 시장을 잠식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하다.

대기업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중·저가 의류 시장에서 남대문의 독주를 묵과해 왔지만 지금은 중·저가 브랜드를 개발하여 남대문시장의 영지를 변방에서부터 야금야금 잠식하고 있다. 현재 대기업들은 전국에 전문 대리점 체제를 구축하고 중·저가 의류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관련 업계의 분석에 따르면 95년 국내의 패션 의류 시장 규모는 약 13조원이다. 2000년에는 3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기업이 이처럼 끊임없이 새 수요를 창출하는 패션산업을 놓칠 리 없다.
수십만 잠재 고객·교통 요충이 남대문 특장

동대문시장은 이러한 시장 환경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해 왔다. ‘가격은 저렴하게, 디자인 감각 품질은 남대문 수준으로’라는 캐치플레이즈를 내건 아트플라자는 동대문의 가격 경쟁력과 남대문의 품질을 결합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 94년 8월에 개점한 디자이너클럽은 입점 상인 차별화, 상품 고급화, 점포 대형화에 역점을 두어 신흥 상권으로 급속히 떠오르고 있다.

남대문시장도 뒤늦게나마 변신하려는 몸짓을 보이고 있다. 94년 7월 본동에 땅을 가진 지주 2백64명은 비상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지은 지 50년이 넘은 본동상가 건물을 허물고 지하 7층 지상 15층짜리 대형 인텔리전트 빌딩을 신축하기로 결정했다. 본동상가는 96년 가을부터 재건축에 들어가 늦어도 3년 안에 완공할 예정이다. 주차 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해야 했던 뼈아픈 과거 때문인지 본동상가는 5개 층에 9백41대분 주차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재건축이 완료되면 본동상가는 하루 24시간 내내 의류·잡화·액세서리 도소매가 가능한 종합물류센터로 발돋움하게 된다. 남대문본동상가재건축위원회 김철영 상무는 “이것은 전체 남대문 상가 재개발의 첫 걸음이다. 본동상가 개발이 끝나면 점차적으로 주변 상가를 재개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내우외환에 시달려 극도로 침체돼 있지만 남대문시장은 막강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지리적으로 남대문시장은 비즈니스 중심 지역(CBD)에 자리잡고 있어 인근 대형 빌딩에서 근무하는 모든 샐러리맨을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남대문시장처럼 주변 5km이내에 잠재 고객이 수십만 명이나 밀집되어 있는 상권은 세계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드물다.

남대문시장은 또 사통팔달의 교통 요충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하철·철도·버스 등 모든 지상 교통 수단으로 접근하기 쉽다. 게다가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전국 각 지역의 중소 상인들은 남대문시장에서 지금보다 휠씬 빠르고 편하게 새벽 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를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라고 비판하는 유통 전문가도 있다. STD유통경제연구소 김성준 주임연구원은 “남대문시장의 의류 산업은 사양 산업이다. 남대문 본동상가 재건축 지역에서 의류 사업를 벌이면 십중팔구 실패할 것이다”라고까지 말한다.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본동상가 재건축이 방향을 잘못 잡으면 남대문시장의 위기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통 전문가들은 남대문시장 본동상가를 액세서리·잡화 품목을 특화하거나, 수입품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가로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남내문시장은 조선 왕조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느냐, 아니면 ‘영원한 제국’의 꿈을 이룰 것이냐하는 기로에 서 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여 일찌감치 내부를 개혁한 동대문시장과, 뒤늦게나마 전력을 재정비하고 있는 남대문시장 간의 대회전은 2~3년 안에 결판날 것이다. 그 때쯤에는 쌍방의 신상권 건축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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