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력 보여준 야심의 컨셉트카
  • 玄永錫 교수(한남대·경영학)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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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독일 등 선진국이 국제 과점 생산체제를 이루고 있는 세계 자동차산업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고유 모델을 개발했다. 이제 한국은 세계 6대 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95 서울 모터쇼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지난 30년 동안 세계에서 기술 자립 전략이라는 독특한 접근 방법으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성원해준 소비자에게 감사하고, 21세기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과 노력을 보여주는 잔치 성격을 지닌 자리이기도 하다.

세계 유명 모터쇼로는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시카고, 일본 도쿄, 독일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파리, 스위스의 제네바, 이탈리아의 토리노 모터쇼가 있다. 모터쇼는 이와 같이 주로 자동차 생산 대국에서 매년 또는 격년으로 열면서 자국 및 세계 자동차산업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고 있다.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는 1897년에 시작되어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가 세계 모터쇼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출품한 토리노 모터쇼였다.

의류 패션이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패션쇼에서 시작되듯 자동차산업의 기술·디자인 및 신제품 개발 동향은 자동차 전시회를 통해서 나타난다.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쇼를 자사 상품 및 기술을 과시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국제 모터쇼에 선보이는 제품이 각국 자동차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면 그 회사 또는 해당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 각 자동차 회사가 모터쇼에 들이는 정성은 대단하다. 각사 신제품개발팀은 해마다 어디에선가 열리는 모터쇼를 항상 준비하고 있다.

국제 모터쇼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 행사 기간에 자동차와 관련한 여러 가지 세미나가 열려 자동차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넓히기에 주력한다는 점이다. 자기네 기술과 상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 및 첨단 전시 기법도 동원한다.

국내외에서 2백2개 업체가 참여한 95 서울 모터쇼의 경향은, 최근 세계 자동차 전시회와 유사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이 모터쇼를 신차 발표장으로 활용했으며, 환경 중시 저공해 자동차 개발, 레저용 자동차 강화, 고유 플랫폼(Platform : 하체·현가장치·제동장치 등으로 구성되는 자동차의 기본 골격으로, 신차종 개발의 요체임) 자동차를 기반으로 하는 차종 다양화 및 미래형 컨셉트카를 많이 선보여 기술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국내 자동차 각사는 미국에서 98년부터 실용화하기로 되어 있는 전기 자동차를 출품하여 미래에 대응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컨셉트카 형태, 또는 거의 실용화 단계에 도달한 전기 자동차를 회사들마다 경쟁적으로 출품해 한국 자동차 회사들의 공해 방지를 위한 전기 자동차 개발에 대한 노력을 잘 보여주었다. 전기 자동차가 국내에서 광범위하게 실용화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겠다. 태양광 자동차는 물론 무공해 자동차의 전단계로 전기와 가솔린 엔진을 겸용한 ‘가변 연료 전기 자동차’ 출품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800cc급 미니카 개발도 눈여겨 볼 만

모델 다양화로 고객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수요를 창출할 만한 기술 능력도 보여주었다. 이는 90년대부터 각사가 개발하고 있는 외국 모델 변형 방식의 신제품이 아니라, 자사가 개발한 고유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 다양화에 성공했음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기존 플랫폼을 기본으로 하는 왜건·쿠페·컨버터블카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는 시장 수요에 대응하거나 시장 수요를 적극 창출하려는 노력이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매년 1~2개의 고유 모델을 계속 선보이면서 국내외 시장에서 고유 모델로 이른바 풀라인을 갖추는 제품 경쟁을 가속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00년에는 승용차 모델 수가 40개를 훨씬 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레저용 자동차 및 스포츠카와 같은 다양한 용도의 자동차가 많이 등장한 것도 서울 모터쇼의 한 특징이다. 4륜 구동 레저용 차가 등장한 이후 캠핑카·밴·스포츠카는 물론 휠체어를 손쉽게 실을 수 있는 특수 용도의 차도 선보였다. 최근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800cc급 미니카 개발도 눈여겨 볼 만하다.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자동항법장치·에어백·ABS(미끄럼 방지 제동 장치)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외국 자동차 회사는 충돌했을 때 승객이 안전하게 보호된 자동차를 그대로 보여주어 자사 자동차의 안전성을 강조했다.

현대·기아 등은 다투어 2~3개의 미래형 자동차 모형을 제시했다. 이는 자동차 회사의 기술 개발 목표와 의지를 과시하는 것으로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이번 서울 모터쇼에서는 다른 국제 모터쇼에서와는 달리 최근 선진 자동차업계에서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저원가 고가치’ 소형 자동차(lowcost high value small car)가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이는 벤츠·BMW 등 외국 업체들이 한국의 주요 수입차 시장인 대형차를 중심으로 전시했고, 일본 자동차가 전시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95 서울 모터쇼가 갖는 의미를 자동차 생산자와 소비자 처지에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생산자에게는 자동차 업체의 상호 학습 및 상호 경쟁의 장을 제공했다. 회사마다 기존 상품은 물론 신제품을 발표하기도 하고, 미래에 개발할 컨셉트카를 선보여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자사의 기술 발전 방향 및 기술 능력을 과시하는 공개 마당을 마련한 것이다. 이는 각 회사가 국민에게 기술 목표를 공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스스로 기술 개발 약속을 지켜야 하고, 또 경쟁사와 구체적인 목표를 놓고 경쟁해야 하므로 기술 개발 노력을 가속화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주요 자동차 회사들은 2000년까지 각각 3조5천억~7조원에 이르는 기술 개발 투자 및 신제품 개발 청사진을 이번 전시회를 통하여 발표했다.

한편 소비자에게는 국산 자동차를 외국 자동차와 한자리에서 비교할 수 있게 함으로써, 기존 자동차와 신제품은 물론 미래 상품에 대한 정보를 광범위하게 제공하여, 상품 선택 기회를 확대하고 자동차산업에 관한 관심을 높이는 기회가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번 서울 모터쇼에 참가한 외국 자동차 회사들은 국내 독점 공급업체가 주도하여 기존 판매용 자동차를 전시하는 데 치중했다는 점이다. 판매를 목적으로 한 전시회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참여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이는 이번 전시회가 초기에는 국내 자동차 회사만 참여하는 모터쇼로 구상되다가 나중에 통상 압력 등으로 국제 전시회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2회 서울 모터쇼부터는 외국 자동차 회사들의 새로운 기술 동향 및 컨셉트카와 같은 미래 자동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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