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 만만한 국산차' 서울 모터쇼 관람기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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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서울 모터쇼 참관기/출품작 수준·운영 미숙 문제
어린이 날인 5월5일, 한국종합전시장(KOEX) 모터쇼장.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과 연극 <피터팬>, 마임이 공연되고 11t 윙바디 트럭 위에서 에어로빅 쇼가 펼쳐진다. 아슬아슬한 초미니를 입은 미녀가 댄싱 쇼와 내레이션 쇼를 선사한다. 고막이 찢길 듯한 음악과 컴퓨터를 이용한 현란한 특수 조명이 어지럽게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고, 안개와 비누방울이 뿜어져 나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동차 전시장이 아니라 문화 행사장에 온 착각이 들었다.

5월4~10일 열린 ‘95 서울 모터쇼’. 한국에서 한 곳에 자동차 2백여 대가 전시된 것을 처음 보았다. 서울 모터쇼가 그동안 보아온 단순한 자동차 전시회가 아니라 모터쇼 대열에 진입한 인상을 갖게 했다.

어느 전시회에서나 제품 설명과 안내를 맡은 ‘컴페니언 걸’이 등장하지만 서울 모터쇼에는 서울 시내 이벤트 업체의 컴페니언 걸이 총동원된 것 같았다. 자동차 회사들은 관람객의 관심을 자기네 차로 끌기 위해 ‘미인계’를 쓰는 셈이지만, 잃는 것도 있다. 차보다 선정적인 미녀에게 눈길이 고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음악 소리가 크고 컴페니언 걸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서 서울 모터쇼는 자동차의 기술과 디자인에 중점을 두는 유럽풍보다 흥행 위주의 일본풍에 가까운 편이다.

관람객들의 관심을 모은 곳은 현대·기아·대우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집결된 승용1관이었다. 돈을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대형 멀티큐브 화면에서 질주하는 차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았다. ‘세계화’를 전시 주제로 잡은 대우자동차는 내세울 차가 신통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부스를 가장 잘 꾸몄다. 대우차와 함께 세계를 여행한다는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부스의 크기나 차량 수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압도적이었다. 자동차의 디자인 및 생산 기술을 강조한 매장 설계가 눈길을 끌었다. 멀티큐브 화면이 뿜어내는 컨셉트카(자동차 회사의 기술 수준과 신모델의 개발 방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일종의 시험 차량) HCD 시리즈 광고는 강렬하고 세련되었다.
기아는 4년여 고심한 끝에 개발했다는 콩코드 후속 차종 크레도스(프로젝트명 G카) 발표회장으로 서울 모터쇼를 적극 활용한 듯했다. 크레도스는 양감과 곡선미가 강조돼 보였다. 멀티큐브 화면과 두 컴페니언 걸이 조화를 이룬 크레도스의 내레이션 쇼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쌍용관은 무난한 인상을 주었는데, ‘네 바퀴 굴림형(4WD)역사관’ 설치는 유익했다.

‘모터쇼의 꽃’ 컨셉트카에 관람객 몰려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컨셉트카 앞이었다. 컨셉트카가 ‘모터쇼의 꽃’이라는 사실이 서울 모터쇼에서도 확인됐다. 현대자동차는 국내 최초의 컨셉트카인 HCD-Ⅰ을 비롯해 아반떼의 모태가 된 HCD-Ⅱ, 신예 HCD-Ⅲ을 전시했다. 기아는 차세대 레저차량인 KMX-3과 하이브리드카(두 가지 이상의 연료를 쓸 수 있는 가변 연료 차량)인 KEV-4를 컨셉트카로 내놓았고, 대우는 부클레인·DACC-Ⅱ·넘버원 3종의 컨셉트카를 출품해 현대에 지지 않으려는 인상이 역력했다. 승용차 시장 진입을 앞둔 쌍용자동차는 전기 자동차 CCR-Ⅰ과 모던 클래식 스타일의 CRS, 스포츠카 솔로Ⅲ을 컨셉트카로 출품해 잠재력을 과시했고, 아시아자동차는 8인승 다목적 차량인 네오마티나를 출품했다.
컨셉트카는 우선 외관이 독특해 눈길을 끌지만 이번에 전시된 컨셉트카 가운데 아주 새로운 것은 거의 없어 신선감이 떨어졌다. HCD-Ⅲ과 넘버원은 올해 초 각각 디트로이트 모터쇼와 버밍엄 모터쇼에서 선보인 차로 지상에서 본 적이 있다. 실물을 볼 수 있다는 의미를 줄 뿐이었다.

이번 쇼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차는 현대의 왜건형 승용차 넥스트원, 기아의 크레도스, 아시아의 네오마티나, 쌍용의 솔라Ⅲ 정도여서 다소 실망했다.

부서진 경주용 차 그대로 전시

서울 모터쇼에서 자동차 회사들은 하이브리드카인 전기 자동차와 태양광 자동차를 선보였다. 환경 중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지만 언제 실용화될지 궁금했다. 또 항공기와 선박에서 유래한 내버게이션(자동항법장치)을 장착한 차와, 임펙트바 같은 승객실의 안전을 강조한 절개 차량도 볼거리였다. 흙이 묻고 부서진 상태 그대로 전시된 경주차들도 관심을 끌었다. 시승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 차는 지붕이 열린 컨버터블형 스포츠카였다.

경품을 내걸어 분위기를 한껏 돋군 한국 차와는 달리 외국관은 ‘흥행’에 실패했다. 에어돔이 설치된 옥외 전시장에 간신히 비집고 들어앉은 외국관은 우선 가보기에 불편했고 볼거리인 컨셉트카도 없었다. 외국 차의 침투를 염려한 국내 업계의 ‘텃세’를 엿볼 수 있었다.

외국 회사 가운데 미국의 ‘빅3(제너럴 모터스·포드·크라이슬러)’는 한국에서 팔고 있는 95년형 모델을 3~4대씩 내세워 이번 모터쇼를 단기적 판매 확대에 주력하는 인상이었지만 유럽 업체들은 조금 달랐다. 벤츠·BMW·푸조·시트로엥·볼보 등은 안전성과 편리성을 강조한 전시품을 따로 마련해 미국 업체보다 숨이 좀 길다는 인상을 주었다.
대림자동차의 50cc 스쿠터 윙크와 100cc 알티노, 효성자동차의 125cc 신형 오토바이 엑시브는 스피드를 즐기는 젊은층의 발길을 붙잡았다. 레이저빔 쇼와 시승감을 주는 시뮬레이션 부스 설치가 주효한 것 같았다. 엔진·전장부품·동력전달장치·조향부품 등이 전시된 부품관은 승용차관보다 인기가 적었지만, 독일의 보쉬사가 꾸민 부스와 10개 업체를 묶어 마련한 호주관은 볼 만했다.

서울 모터쇼는 아쉬운 점도 많았다. 컨셉트카와 신차 데뷔 무대인 외국 모터쇼에 비해 서울 모터쇼는 질적으로 빈약했다.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차도 많았다. 처음이지만 주최측이 ‘3년여 치밀하게 준비’한 것 치고는 허술한 점도 눈에 띄었다. 우선 관람 환경이 열악했다. 즐기며 관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것은 관람객이 폭주한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운용상의 허점도 보였다. 입구와 출구가 적어 들어가고 나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짜증스러웠다. 본관·별관·외국관에서 각각 입장표를 받는 방식도 혼잡을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쉴 공간이 거의 없어 관람객들이 전시장 구석 곳곳에 앉아 쉬는 모습도 볼썽사나웠다. 전시장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97년에 열릴 2회 서울 모터쇼도 종합전시장에서 개최해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전관을 써도 1만6백평 남짓해 좁았다. 전시 기간도 13∼17일인 외국의 모터쇼에 비해 7일에 불과했다. 주최측 예산만도 22억원이 들었고, 참가 업체들이 최고 1백50억원까지 투자해 부스 치장에 돈을 쓴 것을 감안하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터쇼는 자동차 발전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그런 점에서 한국 자동차의 ‘과거’가 빠진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하지만 한국 차의 역량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울 모터쇼의 의미를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자동차는 한 나라의 경제력과 기술력을 대변하는 이미지 상품이 아닌가.

서울 모터쇼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세계 유명 모터쇼에 근접하기까지 서울 모터쇼의 여정은 험난해 보였다. ‘자동차! 움직이는 생활공간, 풍요한 삶의 실현’이라는 슬로건으로 열린 서울 모터쇼는 한국 차의 빛과 그늘이 공존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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