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중국, 부패는 ‘경제학’ 수업료
  • 유리 치가노프 (러시아 IMMEMO 연구실장) ()
  • 승인 1996.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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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시장은 부패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심지어 지방 정부는 해당 지역의 고용을 늘리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지하 경제 활동에 몰두하기도 한다.
 
96년 봄 중국은 8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기간의 실적을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91∼95년 5년간 국민총생산(GNP)은 무려 76%나 성장했다. 지난 80년 중국 정부는 2000년까지 국민총생산을 네배 가량 늘리겠다고 공언한 적이 있는데, 이 목표를 5년 앞서 달성한 것이다. ‘눈부신 성공을 이룬 5년’. 이것이 이 기간을 평가할 때 중국 언론이 곧잘 쓰는 표현이다. 이 시기는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11.8%에 이르는, 중국 역사상 가장 빠른 발전 시기였던 셈이다.

경제 개혁은 부작용을 불러오기도 했다. 국영기업과 금융 분야에서 두드러진 부정 부패와 암시장이 대표적이다. 물론 부정 부패(중국 언론은 `‘푸바이’라고 부른다)나 부정 부패와의 전쟁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94년 중국 정부가 펴낸 한 보고서에는, 21년부터 93년까지의 부정부패 척결 노력과 관련된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치러온 부정 부패와의 전쟁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뜻한다.

중국 정부가 사용하는 푸바이라는 말은 일반적인 부패보다는 더 넓은 뜻으로 사용된다. 통상적으로 부패는 공공재를 사익을 위해 사용하는 공무원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지칭해 왔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푸바이는 통상적인 경제 범죄나 국가 기밀 매매뿐만 아니라 친지나 친구들의 취업·입학·입당에 특혜를 베풀고 공직이나 공금을 남용하는 행위, 매음굴에 출입하는 것들을 모두 포괄한다. 중국의 부패 문제를 고려할 때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사익을 추구할 때만이 아니라 이해집단, 흔히 지방 정부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발생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정부 개입이 부패 근거 제공

부패의 원인을 딱 꼬집어 내기는 힘들다. 관료주의, 폐쇄된 정치 엘리트와 관료, `‘관시’(개인이나 일부 집단이 사익을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개인 혹은 조직 간의 관계), 친척 등용이나 비호 등등. 이런 뿌리 깊은 인습은 경제 개혁 기간에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경제 체제, 특히 합작기업 혹은 사기업의 출현과 맞물려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개입 역시 부패 근거를 제공한다.

 
경제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정부는 경제 전반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개혁 기간에 암시장이 급성장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암시장이 중국 경제의 27%를 차지한다고 평가한다(일부 서방 전문가들은 50%가 넘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암시장은 부패 문제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공직자들의 직접 지원 없이는 그렇게 커질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을 관리가 무허가 담배 생산을 묵인하거나 밀수품 매매를 단속하지 않는 경우가 좋은 예다. 불완전한 법제와 불공정한 경쟁 구조로 인한 부패의 온상은 중국처럼 경제 권력이 분산된 체제에서는 좀처럼 싹을 자를 수 없다. 경제 개혁 기간에 기업을 통제하기 쉬워진 지방 정부가 통제 경제를 철폐한 것이 아니라 이를 더욱 조장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일부 중국 문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중국에서는 ‘지방 `귀족’이 지배하는 일련의 `‘귀족 경제 체제’가 나타나고 있다.

합법적인 경제 활동 하면서 비정상 전략 쓰기도

경제 권력 분산화 정책은 지방 관리가 재산권을 행사하는 데 제한을 없애는 대신 스스로 재정 책임을 지게끔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성장한 중앙의 관리들은 상업화가 진전함에 따라 하급 지방 관리들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주었다. 따라서 지방 정부는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고용을 늘리고 수입을 올리기 위해 지하 경제 활동에 몰두하기도 한다.
중국의 지하 경제는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 기반도 갖추고 있다. 지하 기업들, 그 가운데서도 지방 기업들은 자동차나 컴퓨터 소프트웨어와 같은 첨단 제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90년 중국 푸지안 지역의 샤멘에서 밀수 사건이 적발된 적이 있다. 당시 대만으로 건너가게 되어 있던 밀수품은 반자동 소총들로, 무기 제조업체 사업소장의 지원을 받아 지방 사업자들이 생산한 것이었다.

암시장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는 사형과 같은 과격한 대응책을 동원하기도 하지만, 무허가 생산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무허가 생산 품목도 술·담배·기계·비료에서부터 자동차와 트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94년 `‘동펭’이라는 가짜 상표를 붙인 트럭이 중국 남부에서만 2만여 대나 유통되었다. 가짜 상품이 늘어나는 것은 제조업체들이 부품의 품질이나 조립 상태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어 싼 값에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허가 생산 문제는 중국의 대외 경제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불법으로 생산한 가짜 콤팩트디스크(CD)가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지하 경제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합법적인 경제 활동을 하면서 비정상적인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방 관리들은 예산 지출을 충당하기 위해 특수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기업을 위한 보조금으로 지불하고, 주식을 발행해 얻은 돈은 빼돌린다. 때때로 주식을 발행해 조성한 돈의 70%까지도 해당 민관 합작 주식회사의 설립 취지와는 관계없이 쓰인다. 은행 대출이나 예산 재원과 관련이 있는 부동산과 증권을 거래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업은 세금을 포탈하고 현금 수입을 감추며 불법으로 임금과 보너스를 지불한다. 지방 관리들이 회사 자금을 개인적으로 쓰는 일 또한 흔하다.

부정한 관리들은 자신의 직위를 사업을 하는 데 이용한다. 정부 주요 부처와 세무소, 은행이 회사를 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기업의 자본금은 하위 기업들의 `‘자발적인 증여’로 충당된다. 이들 관리들이 세운 기업들은 사업권이나 특혜 대출, 필요한 자재를 얻기 위해 당과 정부 기구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조직 단순화’라는 미명 아래 행정기구 전체가 기업체화해, 관련 기업들을 모두 자신의 통제권에 두는 경우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가 재산이 불법으로 사유화한다. 합작 주식회사를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지분이 무료 혹은 상징적인 가격으로 관료들에게 넘어간다. 토지의 사유화는 금지되어 있는데, 허가받은 기업이나 개인은 사용 목적에 구애되지 않고 땅을 할당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기 위해 관리들은 자신들이 실질적으로 소유한 회사를 활용하기도 한다. 해외에 자본을 수출하여 해외 기업을 설립한 다음, 이 외국 투자를 다시 국내로 돌리면서 국유 재산을 빼돌리는 비교적 복잡한 방법도 있다.

부정 부패와 암시장 문제는 경제 체제를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중국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다. 러시아 역시 지하 경제 기업들이 국민총생산의 4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문제는 경제 체제를 바꿔 나가는 각국 정부가 문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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