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국 자동차산업 제2일본될까 겁난다"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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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동차 협상 ‘미국 속셈’ 분석/제2 일본 우려 ‘싹’ 자르기 나서
지난 9월 초순 미국 포드자동차 토르트만 회장은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자동차는 유럽에서 발명되었으나 자동차산업이 꽃을 피운 곳은 미국이다. 그러나 일본의 도전으로 인해 매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자동차산업에서 급속히 발전을 이루고 있는 한국마저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때문에 제2의 일본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토르트만 회장의 발언은 단순히 미국 자동차 업계의 견해를 반영한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미 자동차 분쟁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데 그의 발언보다 더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이는 클린턴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한국 자동차시장이 폐쇄적이고 불공정하다고 지적하면서 시장 개방을 확대하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기본적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장 개방 압력은 ‘외곽 때리기’

이 점에서 토르트만 회장의 발언은,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현재와 같이 급성장을 지속하면 머지 않아 미국 자동차산업에 결정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는 미국 업계의 우려를 반영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 자동차 업계가 걱정하는 점은, 현대·기아·대우·쌍용에 삼성마저 가세한 한국의 자동차 생산업체가 오는 2000년까지 연간 6백만대에 달하는 생산 능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이다.

미국 자동차 업계는 오늘날 일본 자동차의 도전으로 인해 고전하는 까닭으로 70, 80년대 일본 자동차산업이 급성장할 때 제동을 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미국 업계는 또다시 그와 같은 ‘과오’를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과도한 설비 증설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한국은 가까운 장래에 제2의 일본으로 성장할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것이 미국 업계의 기본 입장이다.
결국 지난 9월19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고 있는 한·미 자동차 협상을 통해 미국이 궁극적으로 관철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내 무역 장벽을 제거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의 ‘야심찬’ 증산 계획을 늦추도록 유도하는 데 있다. 이는 미국 업계의 의도가 한국 업계의 증산 계획을 저지하는 데 있다고는 해도 미국 행정부가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 단도직입으로 한국 정부에 그와 같은 요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전략을 관철할 때까지 한국의 후진적인 자동차 관련 제도 등을 문제삼으면서 한국 정부가 자동차시장 개방을 확대하도록 집요하게 요구할 태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무역협회 성효제 상무는 “미국은 한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과도한 설비 증설을 늦추지 않는 한 계속해서 한국의 관세율이나 자동차 세제 등을 문제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번 한·미 자동차 협상에서 미국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역협회 워싱턴 사무소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성상무는 “미국 정부나 업계 모두 한국에서 미국 자동차가 잘 팔릴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 이유로 그는 미국과 달리 한국의 골목이나 주차장이 좁아 차체와 배기량이 큰 미국 자동차가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점을 들었다. 따라서 미국이 이번 협상에서 배기량이 클수록 자동차세가 누진되는 자동차 세제를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목적은 본질적으로 미국 자동차의 한국 시장 진출을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다.

미국, 자동차 협상 결렬시킬 듯

무엇보다 이번 협상의 쟁점 가운데 하나인 관세율 인하 문제를 미국의 그와 같은 전략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론 미국은 한국에 관세율을 8%에서 미국과 같은 수준인 2.5%로 인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이 관세율을 2.5%로 인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잘 안다. 이는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국가인 캐나다도 각각 8%와 10%에 달하는 관세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관세율을 8%에서 2.5%로 내리는 것이 미국 자동차 업계 처지에서 보면 오히려 불리하다는 점을 미국은 인식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한국 자동차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쪽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연합이나 일본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성상무의 지적이다. 이는 대개 배기량이 2천cc 이상인 미국 자동차에 비해 배기량이 적은 유럽연합이나 일본 자동차가 도로구조상 한국 시장에서 더욱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아예 한국 자동차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는 한국 시장이 신차 규모에서 올해 1백50만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규모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것이다. 따라서 비록 미국 자동차가 배기량이 커서 한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하더라도 미국 업계는 급속히 성장하는 한국 시장을 어느 정도 장악할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실제로 이번 회담에서 한국 시장에서 미국 자동차가 일정한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 자동차를 관용차로 구입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정부가 대기업들에게 미국 자동차를 구입하게끔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펴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이 요구가 자유 무역에 위배되기 때문에 한국에 이면 합의로 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밝혀졌다(78쪽 딸린 기사 참조).

미국은 이러한 요구들을 한국 정부가 수용하든 안하든 이번 회담을 본질적으로는 결렬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그 이유는, 한국 자동차 업계의 증산 계획을 저지하는 것이 이번 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년에 대선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서 미국 행정부는 약3백만에 달하는 자동차산업 노동자들에게 한국 시장을 개방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와 같이 무섭게 성장하는 한국 자동차산업에 제동을 걸어야만 미국 자동차산업의 안녕이 보장된다는 인식으로 이번 협상에 임하고 있다. 때문에 만약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슈퍼 301조를 발동하거나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미국은 자기들의 요구에 타당성이 전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러한 전망은, 미국이 주장하는 한국 시장의 ‘불공정’한 문제점들이 유럽연합이나 캐나다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일본과의 자동차 분쟁에서 보았듯이 미국은 슈퍼 301조를 발동하기 어렵다. 또 만약 미국이 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할 경우 한국이 맞제소하면 조정 기간이 대략 2년 정도 걸려 미국으로서는 섣불리 한국을 제소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이번 협상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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