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조작 사건, 몸통은 수사 못한다?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9.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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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빅딜과 주가 조작, 미묘한 함수 관계… 검찰, ‘몸통’ 수사에 한계
“알려고 하지 마, 다쳐!”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린 어떤 국회의원 운전 기사가 했다는 말이다. 김정은을 광고계의 스타로 떠오르게 한 말. ‘성역’을 암시하는 이 말에 시청자들은 폭발적인 호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은 성역 없이 수사가 이루어지고 있을까. 현재 검찰은 실제로 주가 조작이 이루어졌는지, 이루어졌다면 누가 했는지, 또 어떻게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아서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현재 검찰의 수사 방향이 현대전자와 관련한 민감한 사항을 비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검찰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주가 조작 사건은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이 현대증권을 위해 현대중공업·현대상선 관계자들을 끌어들인 범법 행위다. 이것이 사실로 판명되면, 검찰은 이익치 회장과 몇몇 관련자를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공산이 크다.

그런데 여기서 빠진 부분이 있다. 반도체 빅딜과 현대전자와의 관계이다. 현대전자는 주가 조작설로 곤욕을 치르기 전만 해도 김대중 정부로부터 최대 혜택을 받은 기업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5대 그룹 빅딜 가운데 제일 중요한 것이 반도체 빅딜이었고, 여기서 승리를 거둔 기업이 현대전자였다. 그런데 그 회사가 주가 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현대전자 주식을 집중 매집한 기업은 현대그룹 자금줄로 널리 알려진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다. 두 회사 모두 환율이 급등해 특수를 누렸고, 현대중공업은 특히 조선 경기 호황으로 돈을 긁다시피했다. 그 돈으로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집해 주가를 띄웠다는 의혹을 사는 것이다. 검찰은 현대증권만 그 혜택을 보았고, 이익치 회장 개인이 이를 주도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이 ‘현대전자 주가 조작설’의 전모일까. 혹시 진짜 ‘몸통’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닐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LG반도체와 벌인 ‘빅딜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룹 계열사들을 동원해 주가를 올린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얘기만 나오면 현대그룹 관계자들은 펄쩍 뛴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상선이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집한 것은 지난해 5월 말∼7월 초이므로 반도체 빅딜 논의가 나오기 한참 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빅딜 논의는 98년 1월 포스코 경영연구소(회장 황경로)가 5대 그룹 간의 ‘5각 빅딜안’을 내놓으면서 시작되었다. 황경로 회장은 박태준 자민련 총재의 최측근이고, 따라서 황경로-박태준 라인이 빅딜 초안을 마련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반도체의 경우 LG가 현대보다 우세하게 나왔다는 사실이다.

박태준 총재는 이 방안을 갖고 5대 그룹 관계자들을 만났고, 5월에 들어서는 ‘3각 빅딜안’으로 수정되었다. 현대가 석유화학을 LG에 주고, LG가 반도체를 삼성에 주고, 삼성이 자동차를 현대에 주는 시나리오였다. 처음에 반발했던 LG그룹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혀 성사될 듯하던 3각 빅딜을 최종적으로 무산시킨 것은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다. 석유화학을 포기하고 삼성자동차를 받는 것이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이다. 그 후 다시 협상이 진행되었고, 8월 초에는 반도체산업을 삼성전자와 현대+LG의 양사 체제로 간다는 데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전자, 반도체 빅딜 ‘역전승’의 비밀

현대전자의 대규모 유상 증자는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현대전자는 그 해 6월과 11월께 유상 증자를 단행해 1천8백75억원과 4천6백11억원을 조달했고, 5∼11월에 현대그룹 계열사가 현대전자 주식을 대량 매집했다. 유동성이 풍부한 그룹 계열사가 주가를 올리고, 유상 증자를 단행해 투자자에게도 이익을 안겼던 것이다. 그 덕에 연초 LG반도체에 뒤지는 것으로 평가되던 현대전자가 12월24일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부채 비율 934.7%였던 기업이 부채 비율 617.4%인 기업을 누른 것이다. LG는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올해 1월6일 구본무 회장이 청와대에서 30분간 김대중 대통령을 만난 뒤 모든 경기가 종료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검찰이 바로 그 시기, 즉 김대중 대통령까지 가세했던 반도체 빅딜의 핵심 시기를 수사하는 것이다. 과연 검찰이 반도체 빅딜과 절묘하게 결합된 현대전자 주가 조작 사건의 몸통을 소상히 밝혀낼 수 있을까. ‘묻지 마, 다쳐!’라는 광고 대사를 연상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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