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와 재정자립도
  • 南裕喆 기자 ()
  • 승인 1995.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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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제도에선 지역 격차 더 심해질 수도…중앙정부 권한 과감히 이양해야
미국의 서부 관문으로 통하는 샌프란시스코는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도시이다. 세계 각지는 물론 미국 내에서도 구릉과 케이블카, 금문교와 베이브리지를 보려는 인파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찾아든다. 미국 서부의 금융 중심지이기도 한 샌프란시스코는 이렇게 몰려드는 관광객 덕분에 미국 전역이 불황에 시달릴 때도 경기 침체의 충격을 비교적 덜 받는다.

반면 샌프란시스코 주변 도시들은 샌프란시스코 경제의 화려한 위세에 눌려 구조적인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비즈니스가 금융·관광이어서 중심 도시의 경제력이 주변 도시로 확산되는 이른바 `‘스필 오버’ 효과가 작은 탓이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주변 지역 자치단체들은 늘상 샌프란시스코의 경제적 부를 `‘훔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한다.

91년 미국 전역이 전후 최악의 불황에 허덕이고 있을 때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베이브리지를 넘어가면 맞닥뜨리는 가난한 도시 오클랜드 시 정부는 시 재원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세를 대폭 내리는 용단을 내렸다. 혹독한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샌프란시스코 경제의 일부라도 훔쳐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이들은 ‘관광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쇼핑은 오클랜드에서’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일반 소비재 구입에 부과하는 세금을 대폭 인하한 것이다.

상품의 값에 소비세가 원천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상품을 구입할 때마다 지역 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소비세를 별도로 계산한다. 이 때문에 샌프란시스코를 찾는 아시아 관광객들이 판매원의 계산을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0달러 정가가 붙은 셔츠를 사면 점원이 정가에 소비세를 더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사거나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항상 소비세가 얼마라는 것이 영수증에 나타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만큼 지역 자치단체가 부과하는 소비세율에 민감하다.
과세권 가진 미 지방정부 ‘세금 전쟁’ 예사

오클랜드 시 정부가 소비세를 `‘파괴’하자 흥미로운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의 지방세율에 둔감한 관광객들이 아닌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이 오클랜드로 몰려가 쇼핑하기 시작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언론들이 이를 대서특필하자 오클랜드로 쇼핑 가는 시민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들은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가 오클랜드 시 정부보다 높은 소비세를 부과하는 이유를 따지기 시작했다. 사태가 이렇게 확산되자 애초 오클랜드의 `‘세금 공세’를 묵살하던 샌프란시스코 시 정부도 소비세 인하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몰리게 되었다.

소비세율을 가지고 지방 정부 간에 벌이는 ‘세금 전쟁’은 지방자치의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미국 지방 정부의 세수입에서 소비세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뿐만 아니라 지방 정부가 지방세율을 자율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88~89년 미국 지방 정부의 세수입 중 소비세가 차지한 비중은 21.9%에 달했다. 반면 지역내 기업들로부터 거두어들이는 법인 소득세는 3.4%에 불과했다. 한국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중앙 정부의 지원금, 즉 연방 정부 보조금도 16.6%에 그쳤다.

이번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를 기점으로 한국에서도 근 30년간 미뤄 오던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린다. 형식적으로 보자면 91년 기초 의회와 광역 의회 선거를 필두로 지자제가 부분적으로 시행되기는 했으나 단체장 선거가 지금까지 미루어져 온 탓에 실질적인 지자제는 이제야 비로소 출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 나타나는 지방 정부간 경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태로까지 지자제를 발전시키는 데는 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 제도는 한동안 선진국형 지방자치와는 너무 동떨어진, 중앙 정부의 조정에 의존하는 형식적인 지방자치 수준에 머물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간 재정자립도 편차 해결 급선무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 시 정부 간에 벌어진 자치 단체간 세율 경쟁은, 지방자치가 구현하고자 하는 지역 경제의 생산성 향상이 지방 정부간 경쟁을 통해 나타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지방 정부간 `‘세금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은 아직 없다. 한국은 조세 명목과 세율은 법으로 정한다는 조세법률주의를 택한 나라이므로 지방 정부의 과세권이 사실상 박탈되어 있다. 지방 정부가 스스로 과세할 수 없다는 것은,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로부터 재정적 자립을 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의미한다. 제도적으로 지방 정부가 설립된다 하더라도 자율적 과세 권한이 없는 지방 정부의 역할은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은 물론 일본의 경우에도 지방자치단체가 과세권을 확보하고 있어 지역 특성에 따라 세원을 창의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세금의 대부분은 중앙 정부가 징수하고 관리하는 국세가 차지한다. 전체 조세 수입에서 지방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30.8% 캐나다는 45.5%에 달하나 한국은 21.1%밖에 안된다(58쪽 도표 참조). 지방세에 대한 세율을 자율 조정할 수도 없는 데다가 지방세가 지방 정부의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낮다 보니 한국 자치단체는 필연적으로 중앙 정부의 지원금에 의존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재정의 구조적 의존을 그대로 두고는 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는다고 해도 자율적인 지방자치는 요원하다고 지적한다.

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관심은 어느 정당의 어떤 인물이 단체장에 당선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또한 단체장 선거가 한국 정치권에서는 여야의 힘겨루기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이다. ‘자치단체장 선거는 지방의 살림꾼을 뽑는 일에 불과하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발언은, 단체장 선거의 정치적 의미를 희석하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다. 하지만 한국의 지자제를 형식 논리로만 이해하자면 대통령의 말은 백번 옳은 말이다. 한국 지방자치법은 지방 자치단체와 그 장의 역할을 오로지 비정치적인 행정 관리 업무에만 한정해 놓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방 의회를 포함한 지방 정부가 비교적 창의적인 자율권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면, 그나마 지역 경제개발이나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을 개발하기 위한 지방 정부 차원의 경제진흥책에 국한한다. 30년 만에 지자제를 실시하다 보니 정치적인 의미만 전적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의 지방자치는 경제적 의미가 더 크다.

지금 여론은 단체장 선거의 정치적 의미에 편향되어 있다. 단체장 선거 결과에 따라 중앙 정계의 재편도 예상되고 있지만, 지방자치제도의 본격 실시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장은 경제계의 정서를 “지방자치제도의 본격 실시와 관련된 걱정은 경제계에서 제일 많이 하는 편이다”라고 표현했다. 기업들은 지자제 실시로 기업 활동에 간섭하는 정부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중앙 정부 내에서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되고 있는 부처 할거주의에다 지방 할거주의까지 더해질지 모른다는 염려이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자치단체에 대한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막강한 현행 지방자치제도에서 지역간 경제력 격차가 지자제 실시 이전보다 오히려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한국의 지역간 경제력 격차는 선진국에 비해 상당히 크다. 지역별 소득 수준을 보여주는 1인당 지역내총생산(Gross Regional Product)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은 경상남도로, 92년 주민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7백89만원에 달했다. 반면 가장 낮은 지역인 대구직할시는 그 절반 정도인 4백18만원으로 나타났다(59쪽 도표 참조). TK 세력의 본산인 대구가 오히려 경제적으로 가장 피폐하다는 것을 지역내총생산 지수가 실증해 주고 있다.

지역별 경제력 격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각 지방 정부간 재정자립도에 현격한 편차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 정부의 재정자립도가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지적이 최근 정치 쟁점으로까지 등장했으나, 재정자립도란 산출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질 뿐만 아니라 외국과 단순 비교하기가 어려운 지수이다(61쪽 기사 참조). 행정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지방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점보다는 지역간 편차가 크다는 점이 더 큰 걱정거리라고 지적한다. 95년 예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서울의 재정자립도는 98%에 달하는 반면 전라남도의 재정자립도는 서울의 4분의 1에도 못미치는 23.4%였다(59쪽 도표 참조). 시·도 간에도 격차가 두드러져, 경기도를 제외한 모든 도의 재정자립도가 전국 평균인 63.5%를 밑돈다.
“중앙정부, ‘돈과 규정’ 고리 함께 풀어라”

지방 재정의 지역적 편차를 방치한 상태에서 지자제를 실시하게 되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재정이 풍부한 지방 정부는 더욱 많은 기업을 유치하고 창의적으로 지역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반면 자체 재정 수입이 낮은 지방 정부는 중앙 정부의 재정 지원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역적 재정 편차를 시정하기 위해 도입된 지방재정조정제도를 단체장 선거를 계기로 크게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 지원하는 지방재정조정제도는 크게 지방교부금·지방양여금·국고보조금으로 나뉜다. 그러나 내국세의 13.27%로 규정되어 있는 교부금을 제외하고는 중앙 정부가 목적하는 데 따라 지원되고 있고 그 금액도 극히 미미하다. 전문가들은 세원의 지역 편재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국세를 지방세로 이양해 지방세의 비중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지방자치를 실시하는 경제적 목적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지역간 균형 발전을 유도하자는 데 있다. 한국의 경우 지역 개발 계획이 중앙 정부에 의해 주도되어 왔고, 지금도 그 결정권이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도시계획의 경우 특별시·직할시·시·군은 계획을 입안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정 및 변경권은 상급 자치 단체나 건설부가 행사하도록 도시계획법에 규정되어 있다. 통상 지방자치 단체가 도시계획을 입안할 경우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기까지 1년 이상 걸리는 비능률이 발생한다. 반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지역 계획에 관한 전권이 지방자치 단체와 지방 의회에 귀속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재정과 법적 권한이 모두 중앙 정부에 집중되어 있다. 지방자치를 통한 지역 경제 활성화를 기대하려면 중앙 정부에 걸려 있는 돈과 규정의 양고리를 동시에 풀지 않으면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한국 경제가 선진 경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와 정부의 생산성 향상이 선결 과제이다. 지방자치제 실시는 중앙 정부에 집중된 관료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시킴으로써 규제 완화를 달성하고, 지방 정부간 경쟁을 유도해 정부의 생산성을 향상시키자는 데 있다.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심해진 지역간 경제력 격차도 해당 지방 정부에 개발권을 주고 재정 조달이 가능토록 뒷받침해 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지방자치의 경제 승수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에 국민의 관심이 높아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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