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파는 '사설 기상청' 뜬다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7.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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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민간 기상 예보 사업 개시…시장 활성화하려면 시간 걸릴 듯
LG전자 허인구 공조기상품기획팀장은 출근하자마자 온도계부터 확인한다. 에어컨 상품 기획팀을 이끄는 허팀장은 올해 이 회사가 에어컨을 몇 대 생산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지난해는 기상 이변에 따른 폭서로 생산량이 수요량을 따르지 못해 에어컨 품귀 현상을 빚었다. 허팀장은 올해도 기상청으로부터 기상 관련 자료를 챙겨왔지만, 변덕스러운 날씨를 예측할 분석 기술이나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 수요량을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허팀장의 날씨 고민은 내년 여름부터 다소나마 줄어들 듯하다. 올해 7월부터 국내에도 산업체나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맞추어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속속 생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기상 예보를 독점해온 기상청은 7월1일부터 일정 자격 요건을 충족하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 업체에게도 기상 예보 서비스를 허가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민간 업체가 기상 예보를 할 수 있는 분야는 해상 기상 분야에 국한되었다. 국내 날씨 업체들은 바다로 나가는 국내 선박에게 해양 기상을 예보하고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로 허가되는 분야는 육상과 공중 기상 예보이다. 기존 예보 업체들은 해상 예보를 통해 얻은 기상 분석 기술과 영업 전략을 발판으로 삼아 새로운 영역에 도전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통신·항공·가전 등 대기업도 관심 집중

현재 날씨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업체는 20여 개이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회사는 웨더뉴스·한국기상협회·진양을 비롯해 대략 5개 업체이다. 현재 4백여 회원사에 기상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기상협회는 영리 법인으로 탈바꿈해 날씨 예보 사업에 뛰어들 예정이다. 또 기상 예측 장비를 생산하는 진양은 2백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해 예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회사는 웨더뉴스이다. 전세계 체인점 형태로 구성된 네트워크 조직인 웨더뉴스는, 오래 전부터 일본이나 미국에서 기상 예측 사업을 하는 협력 회사로부터 기술과 마케팅 방법을 이전받아 민간 부문에서 가장 앞선 회사로 평가받고 있다. 다른 민간 회사는 어떻게 상품 개발을 해야 할지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기상협회 전영일 사장은 “7월에 민간 기상 예측 사업이 시작되면 곧바로 사업을 개시할 수 있는 회사는 웨더뉴스밖에 없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현재 웨더뉴스는 해상 기상 예보 시장의 80%를 점유하고 있다.

날씨 정보를 파는 새 업종에 기존 날씨 업체만 관심을 쏟는 것은 아니다. 내로라 하는 국내 대기업들도 날씨 사업을 주목하고 있다. 지난 6월11일 기상청이 주관한 민간 예보 사업 제도 설명회에 LG텔레콤·SK텔레콤·한진정보통신 등 대기업 관계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그만큼 기상 예보 사업이 기업 활동에 주는 직·간접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다. 시장 규모는 대략 70억원이라서 대기업이 관심을 갖기에는 크지 않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기상 변화가 상품 개발과 판매에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날씨 사업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대한항공을 거느린 한진그룹은 항공기 안전 운항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상 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LG전자나 삼성전자처럼 가전산업을 주력 업종으로 하는 업체들은 제품 생산량을 책정할 때 날씨 예보팀이 전망한 기상 변화를 가장 중요한 변수로 삼고 있다. 따라서 이런 대기업들은 보유하고 있는 날씨 예보 인력과 장비에 전문 인력과 최신 프로그램만 보충하면 날씨 사업에 뛰어들 수 있다고 한다.

외국 업체 지원받아야…시행 착오 예상돼

기상청은 7월부터 기상 예보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지만, 날씨 산업이 본격화하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우선 기상청이 신청 업체에 대한 서류 심사와 실사를 벌이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린다. 날씨 사업자가 심사에 통과하려면 일정 자격을 갖춘 기상 예보 관련 분야 고급 인력을 2인 이상 채용해야 한다. 하지만 기상청 인력 외에는 그 자격 요건을 갖춘 인력을 찾기 힘들다.

어렵게 인력을 확보한 업체가 넘어야 할 다음 단계는 상품 개발과 영업 전략이다. 처음 시작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어떤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영업을 해야 하는지 충분한 지식과 경험이 없다. 현재 잠재 고객으로 예상되는 업체들은 가전제품·술·음료수 생산 회사에서부터 이벤트 업체, 프로 야구를 주관하는 한국야구위원회까지 다양하다. 예보 업체는 다양한 고객의 입맛에 딱 맞는 날씨 예보 상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업체로서는 벅찬 일임에 틀림없다. 결국 외국 기상 예측 업체로부터 상품 개발과 영업 전략을 전수해 국내에 적용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시행 착오가 많을 듯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가량 되어야 기상산업이 활성화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은 만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따라서 아직은 시장 형성기로 보아야 한다. 기상청 산업기상과 김진배 사무관은 “날씨 예보 사업이 부가 가치가 높은 업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업체들이 초창기부터 큰 이익을 보려 해서는 안된다. 우선 잠자고 있는 시장을 깨우는 작업에 매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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