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며 돈 버는 개그맨 사업가들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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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큰 밑천… 아이디어 탁월, 근면·성실 겸비
만일 작전 중인 비행기 안이나 울릉도 앞 바다까지 자장면을 배달하는 중국집이 있다면, 이용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물론 실제 상황은 아니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신세기통신 광고에 관한 얘기다. 이 시리즈 광고에서 늘 ‘북경반점’이라는 상호가 찍힌 철가방을 들고 등장하는 개그맨 이창명씨가 실제로 북경반점을 차린다면?

이보다 더한 상승 효과는 없을 것이다. 이씨는 언젠가 그럴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는 그의 고민도 덧붙였다. “혹시 광고에서처럼 ‘나, (주문) 방금 취소했어’라든가 ‘나, (울릉도에서) 마라도로 옮겼어’라고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물론 이건 웃자고 하는 얘기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인기를 사업으로 연결하는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연예인도 많다. 방송가에서 알짜배기 사업가로 알려진 코미디언 조정현씨(38)는 돌이나 회갑 잔치 사회를 보면서 사업을 구상한 경우다. 잔치나 모임이 많은 우리 정서상 뷔페 식당을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94년 실천에 옮겼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3동에 빌딩 3층을 세내, 뷔페 식당과 예식장(정현뷔페·정현예식장)을 차린 것이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연예인들이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되는 이유를 특유의 ‘명퇴론’으로 설명한다. 일반인들에게는 IMF 사태를 전후해서 명예 퇴직이 성행했지만, 연예인들에게는 진작부터 명예 퇴직 제도가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연예인들은 방송국에서 연락이 끊어지는 때가 명퇴 시점이라고 말한다.

명퇴 위기 몰린 조정현 ‘뷔페 재벌’로 우뚝

그가 사업을 구상하던 무렵, 그도 명퇴 위기에 처했다. 당시 열린 대전 EXPO(세계 무역박람회)에 석 달 동안 자원 봉사를 하고 귀경하니, 방송 일이 거의 다 끊겼다. 그래서 평소 생각해 두었던 뷔페 식당을 개업했다. 내친 김에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예식장업에도 손을 댔다. 그가 직접 목도 골랐고 인테리어도 했다.

다행히 그는 8년간 문화방송(MBC) 코미디언실 총무와 실장을 하면서, 동료들의 경조사에는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인간 관계가 좋았다. 폭넓은 인간 관계에다가 그동안 모은 약간의 돈. 이것이 사업 밑천의 전부였다. 여기에다 자신의 인지도를 적극 활용한 광고 전략으로, 뷔페와 예식장업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그는 요즘도 눈을 뜨자마자 전날 인사를 나눈 사람들의 명함을 뒤적여 전화해서 회사를 홍보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에 접어든 후에는, 매일 저녁 뷔페 식당에 들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점차 외식을 줄이고 있는 고객들을 조금이라도 즐겁게 해주어야 다시 찾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기자와 만난 지난 7월23일에도 그는 뷔페 식당을 오르내리면서 노래 부르랴, 개그 하랴 정신이 없었다.

조씨는 연예인이 사업을 할 경우 광고 효과가 크다는 것을 제일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러나 나쁜 소문이 남보다 빨리 난다는 단점도 있다. 그는 지금도 가끔씩 ‘유명한 양반이 사업은 왜 그렇게 빡빡하게 해’하면서 음식값을 깎아 달라는 손님과 부딪치곤 한다고 한다.

사업가로서 자리를 굳건히 잡은 그는 빚을 얻어 사업을 무리하게 벌리는 데는 반대한다. 비록 뷔페와 예식장 체인점을 늘려 가고는 있지만, 다른 업종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특유의 성실함과 근면함 때문에 연예인이 아니었더라도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을 것이라는 평을 듣는 조씨는, 지금은 문화방송의 ‘조정현의 트로트 가요앨범’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 방송 분야에서도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감각의 주병진, 뚝심의 심형래

주업과 부업이 헷갈릴 정도로 대규모 사업을 벌이는 연예인으로는 조정현 외에도 주병진 김형곤 심형래 김 용 전철우 이경규 등이 꼽힌다. 하나같이 개그맨 혹은 코미디언 출신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 가운데서도 사업 규모가 크기로는 내의업체인 (주)좋은사람들을 운영하고 있는 주병진이 꼽힌다. 신세대 감각의 내의를 선보여 온 이 회사는 경쟁 내의업체들의 몰락까지 겹쳐 졸지에 내의업계 2위 자리를 거머쥐었다. 주씨는 지난해 말 자신의 기업을 주식 장외 시장에 등록하면서, 당시 기준으로 3백70억원의 거부가 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제작자로 자리를 굳힌 심형래씨의 경우도 이에 못지않게 급성장하고 있다. 93년 영구아트무비를 설립해 주로 어린이 영화를 제작해 온 심씨는 지난 5월 칸 영화제에 참석해서, 13개국과 2백70만달러(32억원)의 판권 계약을 맺었다. 현재 <용가리>라는 영화를 기획하고 있는 그는 이 영화로 3천만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두 사람의 성공은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주씨의 경우는 내의업체를 하기 전에 손댔던 카페만 해도 아주 감각적이었다. 반면 심형래씨는 고집스러우리만큼 밀어붙이는 뚝심이 대단했다.” 두 사람을 잘 아는 한 방송국 프로듀서의 평이다. 다만 방송가에서는 두 사람의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어떻게 사업체를 적절히 관리하느냐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고 본다.

귀순자 출신 개그맨 김 용·전철우 씨는 북한 음식 전문점 붐을 조성한 주인공들. 96년 모란각과 모란봉이라는 북한 음식점 체인을 창업한 김씨는 현재 체인점이 27개가 될 정도로 사세를 확장했다. 전씨의 경우도 지난해 5월 일산 신도시에서 ‘고향랭면’을 개업해 1년 만에 체인점을 20개로 늘렸다. 식도락가들 사이에서 맛깔스런 북한식 음식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였다. 외식업계에서는 요즘 북한 음식 전문점이 크게 느는 것도 이 두 사람 때문이라고 본다.

김형곤 왈, “주병진이 하는데, 나라고 못할쏘냐”

이들의 성공에 자극된 연예인 사업가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경규씨가 서울 압구정동에 ‘압구정김밥’과 즉석탕수육 체인점 ‘차우차우’를 개업했고, 김형곤씨도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특히 승부사 기질이 다분한 김씨는 공격적인 사업 전략으로 화제를 뿌리고 있다. 그는 지난 4월 서울 양재동에 ‘곤이랑타워’를 건립하고, 여기에 외식 체인점인 ‘곤이랑식품’을 창업했다.

김씨는 왜 사업가의 길을 택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농반 진반으로 ‘주병진씨가 성공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느냐’고 말문을 열곤 한다. ‘요즘같이 어려운 때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줘, 사람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겠다’는 진지한 대답은,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을 때에나 돌아온다. 이 사업 외에 이미 벌여 놓은 일식당과 연극 전용 극장, 엔터테인먼트 회사 운영도 그의 몫이다. 인기 코미디 <회장님, 우리 회장님>에서 회장 역을 했던 그는 최근에 자신이 진짜 회장이 되었다는 광고도 냈다(당시 이사 역으로 출연했던 동료 엄용수씨는 김씨 회사의 홍보이사로 위촉되어 있다).

김씨는 이미 사업가 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한 적이 있다. 90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장르인 성인용 코미디 무대와 레스토랑을 겸한 코미디클럽을 창업하면서였다.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던 시원시원한 입담을 들을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당시 코미디클럽은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곧 코미디클럽 옆에 역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게이 쇼 전문 바를 열어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그러다 불법·변태 영업 단속으로 제동이 걸렸다. 그는 지금도 당시의 단속이 그가 코미디클럽에서 대통령의 여자들을 소재로 삼아 개그를 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그는 그 일로 정보기관에 붙들려 간 적이 있다. 코미디클럽이 무너진 후에 손을 댄 연극 제작에서도 그는 사업가 기질을 유감 없이 발휘해, ‘연극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신화를 창조했다.

자민련에 입당해 정치 입문도 꿈꾸고 있는 그의 사업 목표는 간단하다. 5년 후 곤이랑식품을 상장사로 키우는 것. 그는 그 꿈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5년 전 강남 한가운데 내 빌딩을 짓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때 그 목표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 그 목표를 이루었다. 5년 후라고 지금 계획한 것을 못 이룰 이유가 있을까?” 마음의 위안을 삼자고 술집이나 음식점 같은 부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이름만 빌려주는 사람과 달리, 개그맨과 코미디언 들은 다른 연예인보다도 사업에 필사적으로 달려든다는 것이 김씨의 평가. 누가 이들을 ‘웃기는 사람들’이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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