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경제] 프랑스 ''실업자 위해 근로자가 손해 보라''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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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주페 총리는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줄어든 시간만큼 고용을 창출하자는 실업률 감소 정책을 제시했다.
어떠한 아이디어가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그것을 둘러싼 시대 환경에 맞지 않으면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도 한다. 이는 예전에는 인기를 얻지 못했다가 요즘 새롭게 등장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그리움만 쌓이네>와 같은 가요가 성공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이와 같은 ‘리메이크 경향’이 경제 정책 부문에까지 나타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프랑스 알랭 주페 총리가 지난 연말에 제시한 실업률 감소 방안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제안한 방안의 골자는 근로자들의 노동 시간을 줄이고 줄어든 시간만큼 고용을 창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경제 정책은 주페의 창작물이 아니다. 80년대 말 서독 사민당(SPD) 당수이던 오스카 라퐁텐이 당시 서독의 실업률을 낮추는 방안으로 제시한 정책이었다.

폴크스바겐, 라퐁텐 방안 채택해 성공

라퐁텐의 아이디어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높은 실업률을 해소할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이던 기민당(CDU)이 정책으로 채택하지 않아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그러다가 매출액 감소에 시달리던 독일의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이 지난해 라퐁텐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대규모 인원 감축 위기를 넘겼다. 그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획기적인 것인지 증명된 것이다.

폴크스바겐이 라퐁텐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대규모 해고 사태를 모면하기는 했지만 이는 민간 기업 차원의 일이다. 다시 말해서 라퐁텐의 아이디어가 한 국가 전체의 실업률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라퐁텐의 아이디어를 빌려 11.5%에 달하는 프랑스의 실업률을 해소하려는 주페 총리의 노력이 전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페 총리가 그와 같은 실업률 감소 정책을 추진하게 된 까닭은 물론 프랑스의 실업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유럽연합(EU)의 단일 통화를 위해 각 회원국이 정부 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데 있다. 프랑스가 복지 예산을 삭감키로 결정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파업 사태가 빚어지자 그는 실업자 수당을 삭감하는 대신 라퐁텐의 아이디어로 실업률을 과감히 낮추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프랑스 ‘실업과의 전쟁’ 승리할까

정부 지출과 부채를 삭감해야 하는 유럽연합은 급격한 실업률 증가 위협에 처해 있다. 미국과 일본도 미미하나마 실업률이 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주페 총리의 실업률 감소 방안이 관심을 끄는 까닭은, 실업률 증가가 이처럼 선진 각국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주페 총리가 추진하는 이 정책이 성공할 수 있는가 여부는 근로자들이 과연 총리의 실업률 감소 정책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있다. 만약 그와 같은 정책을 수용하면 근로자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 자기의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하고, 줄어든 시간만큼 임금을 손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라퐁텐이 처음 그와 같은 정책을 제안했을 때 서독 정부가 이 안을 채택할 수 없었던 이유도 바로 이같은 문제 때문이었다.

근로자들을 위해 줄어든 노동 시간의 2분의 1 정도는 임금을 지불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1주 노동 시간을 39시간에서 32시간으로 줄인다면 임금은 35시간 일한 것으로 계산해 지불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혁신적인 정책은 현실성 여부를 떠나서 근로자들이 노동 시간을 줄여 실업자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경제가 어려운 국가일수록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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