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화제] F1 그랑프리 유치 나선 이충범 변호사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6.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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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범 변호사,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 유치하려 분주
대통령 만들기와 국제 경기 국내 유치. 어렵기로 치자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 같은 이 두 가지 가운데 어떤 것이 더 힘들까.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92년 자기 아버지를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가 지금 월드컵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李忠範 변호사(39) 역시 같은 질문에 답변할 적임자다. 이변호사는 9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소장파 전문가들을 규합해 김영삼 후보 진영에 가세했던 인물이다. 그는 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사정비서관으로 활동하다가 변호사 수임료를 둘러싼 논란 끝에 물러났다. 그 후 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면서 장애인 복지단체(정해복지)를 이끄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런 그가 요즘은 ‘F1 그랑프리 한국유치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바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F1 그랑프리는 유럽에서는 월드컵이나 올림픽만큼이나 인기 있는 세계 최고의 국제 자동차 경주 대회다. 50년에 처음 열린 이 대회는 해마다 16∼17개 나라를 돌며 경기를 벌인다. 당초 프랑스 귀족들의 스포츠에서 비롯돼 클럽 대항 경기의 성격을 띠게 된 이 경기는 전세계에 중계되어 자동차광들을 열광시킨다. 파리-다카르 랠리,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를 모두 주관하는 국제자동차연맹(FIA) 산하 국제자동차스포츠연맹(FISA)이 이 대회를 주관하는데, 일단 유치에 성공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5년간 이 대회를 열게 된다. 현재 아시아권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일본이 대회를 치르고 있다.
춘천·제주도와 대기업들도 별도 유치 경쟁

F1 대회의 백미는 모나코에서 벌어지는 ‘몬테카를로 서킷’. 시내 도로를 그대로 경주용 트랙으로 쓰는 것으로 유명한 이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는 유럽의 라스베이거스인 몬테카를로가 휘황찬란한 경주용 자동차와 그 굉음으로 뒤덮인다.

자동차 애호가이기도 한 이변호사는 94년부터 이 대회를 국내에 유치하려 애써 왔다. 세계 5위 자동차 생산국으로서 국위를 선양할 수 있고, 부수적으로 관광 수입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6월 막스 모즐레이 국제자동차연맹 회장(국제자동차스포츠연맹 회장도 자동으로 겸직)을 만날 예정인데, 이 만남이 대회를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고비가 될 것으로 내다본다.

한국유치위와는 별도로 몇몇 지방자치단체들과 대기업들 역시 이 대회 유치에 적극적이다. 춘천시와 제주도가 이미 유치 의사를 밝혔는가 하면, 각 기업도 독자적으로 경기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경기 남양주군, 동아그룹은 경기 김포매립지, 세풍건설은 전북 군산 염전을 후보지로 내세웠다. 기업들의 이런 발빠른 움직임은 자기들이 가진 땅에 경기장과 부대 시설을 건립함으로써 개발 이득을 얻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인데, 정부는 아직 대회 유치와 관련해 공식으로 이렇다 할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변호사는, 대회를 유치하려면 경기장 부지를 마련하는 것 이상으로 선수 양성이라든가 대회 홍보 같은 기초적인 일에 더 주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작업의 하나로 유치위는 프랑스의 자동차 경주 선수 양성 학교에 지원자를 보내고, 장기적으로는 국내에도 학교를 세울 계획이다.

F1 그랑프리 대회 유치 여부가 머지 않아 판가름난다 하더라도, 이변호사는 ‘대통령 만들기보다 더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정확히 답할 수 없을지 모른다. 대통령이 되려는 누군가가 그의 경험을 사려 할 테고, 그 때쯤이면 그는 대통령 만들기라는 또 다른 ‘모험’에 여념이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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