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당 경쟁 이동통신, 합병·도산 위기
  • 李哲鉉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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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당 경쟁 ‘업보’에 수요 감소 덮쳐, 1~2개 업체 합병·도산 가능성
이동전화 서비스 사업에 대한 구조 조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된 데다,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의 과잉 시설 투자와 치열한 가입자 유치 경쟁 때문에 사업의 채산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SK텔레콤·신세기통신·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LG텔레콤 가운데 1∼3개 업체가 경쟁에서 도태하거나 경쟁 업체와 합병·매수(M&A)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동전화 분야에서 구조 조정이 불가피한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부가 개인 휴대통신(PCS) 3개 사에 서비스 사업권 허가를 내줄 때만 해도 국내 경제 여건은 좋았다. 국민소득이 만달러에 이르고, 선진국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국민 개개인이 이동통신 단말기를 1대씩 가지게 되리라는 장밋빛 환상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화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져 실질 국민소득이 6천달러에 불과하고, 소비 심리도 얼어붙었다. 이동전화는 사치품으로 여겨져 실질 소득 감소에 따른 수요 감소 폭이 커졌다.
“1월 PCS 가입자, 지난해 말의 20~30%”

이같은 경제 여건이 이동전화 서비스 업계에 미친 영향은 치명적이다. 기존 이동전화와 개인 휴대통신을 포함한 이동전화 서비스 업체의 지난 1월 영업 실적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SK텔레콤의 지난 1월 말 가입자 수는 4백57만명이다. 이는 지난해 12월 말과 비슷한 수준이다. 디지털 이동전화 가입자 수는 8만5천명 가량 늘었으나, 아날로그 가입자가 떨어져 나가면서 개인 휴대통신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신세기통신의 1월 말 가입자는 1백14만명을 밑돌고 있다. 신규 가입자 수가 지난해 9월 한 달에 16만명을 기록한 이후 큰 폭으로 떨어지다가, 올해 1월에는 1만4천7백명에 그쳤다. 2월 들어 다소 회복하고 있으나 외환 위기의 여파가 심각했던 지난해 12월 수준인 3만명 선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초 서비스를 시작한 개인 휴대통신 업체들이 겪는 어려움은 더 심각하다. 개인 휴대통신 3사의 실가입자 수는 지난해 하루 5천∼2만 명이었던 것이, 올해 1월 하루 8백∼1천5백 명으로 뚝 떨어졌다. 전속 대리점 한 곳당 하루 가입자가 1명도 채 안되는 실정이다. 경제 위기에 따른 소비 위축이라는 직격탄을 맞은 데다, 예약 가입 같은 새 마케팅 방식의 약효가 바닥 난 것이 그 이유다. 개인 휴대통신 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하루 평균 5천명에 이르던 실가입자 수가 1월 들어 8백명∼1천5백명으로 줄어 지난해 가입자 수의 20%∼30% 정도에 머물렀다. 따라서 단말기가 없어 가입자를 못받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에는 단말기를 덤핑 판매하는 사례가 많다”라고 말했다.
불황 2년 이상 지속되면 구조 조정 불가피

개인 휴대통신 사업자들은 올해 실가입자 목표를 백만∼1백20만 명으로 세웠으나 1월 영업 실적이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30만∼40만 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누적 가입자 수가 70만∼80만 명이어서 손익분기점인 2백만 명과 크게 차이가 난다. 또 개인 휴대통신 사업자들은 가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장려금 명목으로 1인당 4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런 판에 가입비 5만원을 요구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한국 경제가 겪는 어려움이 2년 이상 계속된다고 전제하면, 이동통신 업체도 당분간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이동통신 업체의 구조 조정은 피할 길이 없다. 자금난과 영업난이라는 이중고로 인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면 이동통신 업체 가운데 견디기 힘든 업체가 한두 곳 생겨날 것이다. 어려움에 처한 업체들은 경쟁 업체나 외국 투자가에 합병되든가 아니면 도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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