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자본 투자 유치, 영국에게 배운다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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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개발청, 파격 지원으로 외국 기업 유치… 일자리 창출이 목표
“정말 파격이군요. 그 정도 조건이면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96년 가을, 런던발 서울행 여객기 안. 3박4일 일정으로 영국 남서부 웨일스 지방을 둘러보고 돌아오던 중소기업체 사장 20여 명은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웨일스개발청이 제시한 투자 조건은 매력적이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흐른 지금, 이들 가운데 다섯 업체가 웨일스에 투자했거나 투자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LG반도체에 산업용 특수 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성원에드워드(주)는 직원 1명을 이미 웨일스에 파견했고, 머지 않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설 방침이다. 이 회사 김중조 사장은 “한국에서 공장 하나를 지으려면 얼마나 번거롭고 힘이 듭니까. 그런데 웨일스에서는 신경 쓸 일이 없어요. 땅값과 인건비가 싼 데다, 공장 건설과 기계 설치에 드는 비용까지 개발청이 지원해 줍니다. 직원들의 주택 구입과 자녀 취학은 물론이고, 가구 장만까지 신경 써주는 데 저절로 입이 벌어지더라고요.”
공장 부지·건설 비용 절반 떠맡기도

지난 2월24일 웨일스개발청 한국사무소 황재필 소장과 주한 영국대사관 팀 플리어 상무관이 감사차 회사를 방문하자, 그는 고마워할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라며 방문객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웨일스개발청이 설립된 것은 80년대 초. 영국 산업개발청(IBB) 산하에 설립된 이 기구는 상대적으로 낙후한 웨일스 지역에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웨일스에 본사를 두고, 9개국 15개 지사에서 모두 3백50명이 근무하고 있다. 한국에 지사가 설립된 것은 90년대 초. 사령탑을 맡고 있는 황소장이 대기업을 전담하고, 장준혁 부장이 중소기업 투자 담당자들을 만나고 있다. 여기에 업무를 보조하는 여직원까지 합해서 3명이 일한다.

하지만 외곽에서 이들을 돕는 사람이 2명 더 있다. 대외 홍보를 맡은 박광두 이사와 웨일스에 투자할 만한 국내 기업을 물색해 보고하는 박유하씨다. 이들은 웨일스개발청으로부터 외주를 받아 수시로 돕고 있다. 이들이 성가를 드높인 것은 96년 한라중공업에 이어 LG그룹 투자 유치를 성사시킨 일이다. 26억달러 규모인 LG그룹 투자는 단일 프로젝트로서는 유럽 최대 규모였다.

자신들을 ‘웨일스라는 상품을 팔러 다니는 세일즈맨’이라고 소개하는 이들이 하는 일은, 기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이다. 이들이 제시하는 조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파격적이다. 공장 부지·공장 건설·기계류 설치에 드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낮추고, 그마저도 절반 가량을 그들이 떠맡는다. 웨일스 주민을 몇 명 고용하느냐에 따라 추가로 보조금을 지급하고, 세금도 유럽에서 가장 싼 금액을 매긴다.

경제적 지원만 파격적인 것이 아니다. 기업이 투자 계획서를 제출하면, 개발청은 즉시 담당 책임자를 지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처리해 준다. 공장 건설과 제품 생산·판매는 물론이고, 직원들의 숙식·자녀 교육 등 시시콜콜한 사항까지 챙긴다. 한국에서처럼 인·허가권을 거머쥔 관련 부처를 찾아다니며 통사정 할 필요도 없고, 말이 통하지 않아 고생할 필요도 없다. 진정한 의미의 ‘원 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드는 비용은 대부분 개발청이 부담한다. 따지고 보면 이 돈은 웨일스 주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다. 그런데도 지역 주민이나 정부는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외국 기업을 더 많이 끌어들이지 못해 안달이다. 이처럼 주민들이 기꺼이 비용을 부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팀 플리어 상무관은 “실업의 고통이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웨일스 주민들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비중을 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컨대 LG그룹이 얼마를 투자했느냐보다 일자리가 얼마나 늘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외국 기업 유치해 실업률 절반으로 낮춰

이 점은 정부로서도 마찬가지이다. 80년대에 한때 12%에 이르렀던 실업률은 사회 불안은 물론이고, 정부에 엄청난 경제 부담을 강요했다. 실업 수당 등 사회보장비로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어야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명했다. 실업난을 해소할 수 있는 외국 기업을 유치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 기업에 특혜를 베풀더라도, 그쪽이 훨씬 돈이 덜 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이같은 판단은 주민들도 공유했다. 그 결과 80년대에 12%까지 치솟았던 웨일스의 실업률은 6%대로 뚝 떨어졌다.

황소장의 올해 목표는 웨일스 주민에게 일자리를 백 개 제공하는 것. 이렇게 하려면 중견 기업 2∼3개를 웨일스에 유치해야 한다. IMF 한파로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목표를 이루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성원에드워드(주)가 투자한 데 이어, 4월이면 삼우내외산업(주)도 투자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목표 달성에 서광이 비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에서 한국 기업의 자국내 투자 유치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기관은 많다. 웨일스개발청이나 북아일랜드개발청·스코틀랜드개발청처럼 투자 유치만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을 파견한 곳도 있지만,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투자 유치의 첨병 구실을 떠맡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보다 잘사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파격 조건을 내세우며 치열한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북아일랜드 산업개발청의 김완규 소장은 “우리가 선진국민이 된 것처럼 뻐기고 있을 때, 그들은 한국 기업 투자 유치에 열을 올렸다. 한국인들은 IMF 사태를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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