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절약, 기술이 ‘명약’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8.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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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절감 엔진·에너지 초절약형 건물 등 잇달아 국내 개발…기름값 장벽, 기술 투자로 넘어야
‘한번 기름 넣고 서울∼부산 왕복 성공’. 지난해 12월 중순 현대자동차는 각 일간지에 1500cc급 뉴엑센트 판매 광고를 실었다. 자체 개발한 ‘린번(lean burn) 엔진’을 장착한 덕분에 동급 다른 차량에 비해 20% 가까이 연비를 개선했다는 것이 광고의 요지였다.

ℓ당 휘발유값이 막 천원대를 돌파한 시점이었던 만큼 이 광고는 소비자들의 눈길을 강하게 끌었다. 현대자동차의 계산에 따르면, 한 달 평균 주행 거리를 1천5백㎞로 잡았을 때, 린번 엔진을 장착한 자동차를 타는 운전자는 동급의 다른 자동차를 타는 운전자에 비해 월 1만9천∼2만1천 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휘발유 값 ℓ당 1천2백원 기준). 1년이면 최대 25만7천원 가량을 아끼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린번 엔진을 개발한 실무진은 광고가 나가는 순간에 남몰래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55쪽 상자 기사 참조). ‘기름값 2만원쯤이야’ 하는 소비자에게는 이 정도 절감 비용이 별 다른 유인이 되지 못하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용을 최우선으로 따지는 소비자라면 차라리 경차를 선택할 것이다. 사실상 출고 가격(에어컨 포함 가격)으로 따졌을 때 린번 엔진이 장착된 뉴엑센트는 6백70만원 정도여서 경차(티코SL 기준)보다 2백50만원 가량 비싸다. 기름값을 따져 보아도 한 해 1만5천㎞를 탄다고 할 때 경차에 드는 기름값은 약 98만8천원으로 뉴엑센트(1백17만원)보다 18만5천원 가량 적다(ℓ당 1천2백원 기준).

그럼에도 린번 엔진은, 이것을 상용화했다는 것만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사실 현대자동차가 린번 엔진 설계를 끝내고 양산 가능성까지 확인한 것은 96년 9월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넘도록 ‘ℓ당 휘발유값이 천원대가 되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전제가 붙었다. 이쯤 되면 에너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과 소비 행태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제가 그것이다.

국내 승용차종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96년 현재 57.6%)을 차지하고 있는 1500cc급 이하 승용차에 린번 엔진을 장착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고유가 시대에도 안전성 등을 이유로 경차보다 1500cc급 이하 승용차를 선호하는 소비자는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것이 현대자동차의 예측이었다. 이들 또한 고유가 시대가 본격적으로 닥치면 ‘동급 최강’ ‘최고 속도 220km/h’따위 선전에 이끌리기보다 연비를 꼼꼼히 따지게 되리라는 계산이 있었던 것이다.

린번 엔진 상용화를 둘러싼 우여곡절은 한국의 에너지 소비 행태가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따지고 보면 ‘동급 최강’ 내지 중·대형 차에 이끌린 것이 소비자들의 허영심 탓만은 아니었다. 정부가 아무리 ‘석유 소비 세계 6위, 석유 수입 세계 4위’(95년 기준)임을 역설해도 기름값이 다른 나라 절반 수준인데야 이를 아낄 동기가 소비자들에게 부여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의 휘발유값이ℓ당 8백원 수준이던 두 달 전 영국과 프랑스의 휘발유값은 각각 1천90원, 1천50원이었다.

값이 싸기는 전력이나 도시 가스도 마찬가지였다(표 참조).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고 물가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추진된 에너지 저가 정책은 한국을 에너지 소비량 세계 11위, 에너지 소비 증가율 세계 5위로 만들어 놓았다. 85년 이래 지난 10년간 연평균 에너지 소비 증가율은 10.3%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8.9%를 크게 앞질러 왔다.
“아껴 쓰기만으로는 근본 해결 안돼”

그러나 상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요즘 주유소를 찾는 승용차 운전자들은 계량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IMF 한파 직후인 지난해 12월 초만 해도 ℓ당 9백23원이던 휘발유값이 한 달 만에 1천2백17원으로 30% 가까이 올랐기 때문이다. 2월에 유가 사전 보고제가 폐지되고 석유값이 완전 자율화하면 기름값은 또 한바탕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각종 요금 고지서를 받아든 가정 주부 또한 억장이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도시 가스와 전기 요금은 최근 22.8%와 6.5%가 각각 인상되었다.

IMF 위기가 없었다 해도 정부는 본래 2001년까지 국내 에너지 가격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산유국 수준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현실화할 방침이었다. 가격이 갖는 수급 조절 기능을 살려 에너지 다소비형 산업 구조를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 구조로 유도한다는 것이 최근 몇 년간 정부의 정책 기조였다. 다시 말해 소비자들은 좋든 싫든 머지 않아 에너지 고가격 시대를 맞이하게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의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삼키게 된 ‘쓴 약’에 소비자들이 겪는 고통은 훨씬 큰 듯하다. 에너지 값이 급등하자 정부와 언론 매체는 ‘에너지는 곧 달러입니다’‘달러가 타고 있습니다-한 등 끄기 운동’ 류의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에너지를 아껴 쓰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신성철 통산부 에너지관리과장은 지적한다. 소비를 적게 하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에너지 절약 정책과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안이라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태양광·연료 전지·태양열 같은 대체 에너지가 거론되고는 있지만, 이것은 현실에 응용되기에는 아직 많은 제약이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06년까지 에너지 절약 기술을 개발해 최종 에너지 사용량의 10%를 절감할 계획이다. 같은 기간 에너지 총사용량의 2%는 대체 에너지를 통해 공급하게 된다.

린번 엔진도 이같은 정부 방침에 따라 G7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로 연구·개발된 기술이다. 수송 부문은 국가 최종 에너지 소비량 가운데 22.6%를 소비하고 있는 만큼(96년 기준) 정부는 고효율 차량·엔진 기술 개발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자동차 제조 회사들은 이밖에도 알루미늄으로 차체를 가볍게 만들어 연료를 절감하거나, 전기·천연 가스처럼 대체 연료를 이용한 자동차 등을 거의 개발한 상태인데 아직 상용화하지는 않고 있다.

최근에는 건물 부문에서도 에너지 절약 기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건물 부문에서 소비하는 에너지 양은 국가 최종 에너지 소비량의 약 25%로, 수송 부문보다 많다. 태양열 온수기, 고효율 조명기기 등은 이미 일반 가정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이중창보다 단열 기능을 대폭 강화한 ‘고기밀 단열 창호’ 또한 신도시 단독 주택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연말에는 벽산건설이 전기를 통하면 열을 내는 이른바 ‘발열 콘크리트’를 아파트 시공에 적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흑연과 콘크리트를 적절히 배합한 이 콘크리트를 바닥재로 쓰고 심야 전력을 이용하면 기존 도시 가스에 비해 난방비를 30% 가까이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 벽산건설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사무·공공용 건물에 이르면 사정이 약간 달라진다. 사실상 건물 부문에서 에너지를 크게 소비하는 것은 이들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통산부 조사에 따르면, 연간 전력 사용량 천만㎾가 넘는 건물 92동이 한 해에 사용한 전력 소비량은 같은 기간 일반 주택 59만 호가 사용한 전력 소비량과 거의 맞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92동 건물 가운데 일부는 지난 1월13일 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겨울철 실내 난방 온도 실태조사’에서도 ‘IMF 시대와 동떨어져 에너지 과소비가 심한 건물’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국회 의원회관·롯데호텔·63빌딩 등이 그것이다.
대형 건물 92동이 주택 59만호 전력 소비 맞먹어

문제는 새로 짓는 사무·공공용 건물조차 에너지 절약 기술을 적극 도입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서항석 박사는 그 주된 이유를 건축 분야의 뿌리 깊은 보수성에서 찾았다. 건물은 수명이 길고 한번 짓고 나면 고치기가 복잡한 만큼 설계사들이 건축 현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을 채용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항석 박사 팀이 오는 3월께 대덕의 한국에너지기술연구소 안에 착공할 예정인 ‘에너지 초절약형 건물’은 이들 기술을 보급하기 위한 ‘임상실험용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서박사 팀은 지상 3층에 3백30평 규모로 짓게 될 이 건물 설계에 건축·설비·전기 부문에 걸쳐 건물 에너지 절약 요소 기술 74가지를 적용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개발된 1백50여 가지 절약 요소 기술 가운데 상용화에 적합한 기술만을 선별한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54쪽 그림 참조).

우선 건축 부문에는 이중 외피·광선반 등 23가지 기술이 적용된다. 이중 외피(double skin)는 건물 남쪽 이중창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청록색 유리벽을 한겹 더 설치해 일종의 ‘온실 공간’을 만든 기술이다. 이 공간은 여름에는 통풍 기능, 겨울에는 단열 기능을 담당하면서 냉난방 부하를 줄인다. 광선반은 건물 남측 개구부에 붙여 빛을 사무실 천장으로 반사하게 만든 장치로, 낮 동안 조명 에너지를 절약하게 한다.

둘째, 기계설비 부문에는 대체 에너지 활용·쿨 튜브 시스템(cool tube system) 등 35가지 기술이 적용된다. 이 건물은 대형 태양전지판이 지붕이나 진배없으며, 건물 전면의 좌우 양쪽 벽에는 태양열 집열판이 세로로 설치되어 있다. 이는 태양광 발전을 이용해 전력을 자체 생산하고, 태양열 집열판을 통해 달군 뜨거운 물을 흡수식 냉동 시스템에 끌어들여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국내 기술로는 처음 개발한 쿨 튜브 시스템은 땅속 온도가 섭씨 13∼16도로 사시사철 거의 변함이 없다는 데 착안한 기술이다. 곧 뒷산에서부터 건물까지 스테인레스 관을 땅 속 3m 깊이에 묻은 다음, 여름철에는 이 관을 통과하면서 시원해진 외부 공기가,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데워진 외부 공기가 건물에 유입되게끔 함으로써 냉난방비 절감을 꾀한 것이다.

셋째, 전기설비 부문에는, 사무실 안에 사람이 없을 경우 자동으로 전원을 차단하는 조명 자동제어 시스템 등 16가지 기술이 적용되었다.

에너지 초절약형 건물은 한 나라의 에너지 절약 기술 수준을 총망라해 보여주는 결정체이기도 하다. 미국의 플로리다 태양에너지센터가 96년 연구소 사옥으로 완공한 뉴에너지센터, 일본의 대림조(大林組) 기술연구소가 80년 완공한 초에너지 절약형 건물은 그 대표 격이다.

이들 건물이 애초에 목표치로 설정한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량은 각각 1백50Mcal, 98Mcal였다. 그러나 지은 지 오래된 일본 대림조 연구소의 경우 92년에는 이 목표치를 단위 면적당 1백80Mcal로 올려 잡았다. 현재 서박사 팀이 목표치로 삼고 있는 에너지 소비량은 단위 면적당 78Mcal. 이는 국내 보통 사무용 빌딩의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량(3백∼3백50Mcal)의 25%에 불과할 뿐더러 세계적으로도 단위 면적당 에너지 소비가 가장 적은 수준이다.
한국, 기술개발 투자비 5백억원 불과

수송·건물 부문 가릴 것 없이 에너지 절약은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이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97%)뿐 아니라 국제간 환경협약 때문에도 그렇다. 지난해 선진국들은 기후변화협약 제 3차 당사국 총회(교토회의)에서 2010년까지 온실 가스 배출량을 90년 기준으로 평균 5% 감축한다는 의정서를 채택했다. 당시 한국은 운좋게 의무 감축국 명단에서 빠졌지만, 빠르면 오는 11월 열릴 제4차 총회에서 의무 감축국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이 85년 수준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LG경제연구소는 전망했다. 다시 말해 2010년에 온실 가스를 90년 수준으로 줄이려면 국내총생산이 85년 수준인 1백16조원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제철·석유화학처럼 에너지를 다량 소비하고 온실 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부문이 큰 타격을 입는 데 기인한다.

에너지 절약 기술이 절실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앞서의 린번 엔진은 동급 다른 엔진에 비해 배출 가스 양을 크게 줄였다. 연료가 적게 드는 만큼 탄화수소나 일산화탄소 배출량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에너지 초절약형 건물 또한 ‘그린 빌딩’을 짓기 위한 기반을 제공한다. 그린 빌딩이란 에너지 절약·고효율 설비·자원 재활용·환경 공해 저감 기술을 동시에 적용해,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하는 차세대 개념의 빌딩이다.

이같은 필요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절약을 위한 기술개발 투자비는 97년 현재 5백억원에 불과하다. 이는 연간 에너지 수입액(21조6천억 원)의 0.23%에 해당한다. 미래학자 윌리엄 카노크는 70년대 초 오일 쇼크의 본질을 이렇게 간파한 바 있다.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사실 기름값 인상이 아니었다. 문제의 본질은 사회가 낮은 원유가라는 전제 하에 움직였다는 점이었다.” 한국 사회는 지금 이같은 잘못된 전제를 무너뜨려야 할 전환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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