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바로 세우기’ 직장인들 앞장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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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무교동 일대 회사원 ‘직장협의회’ 결성…시청 도움 받아 소비자운동 전개
점심이나 저녁을 직장 근처에서 매일 ‘때우는’ 도시 직장인들의 고민 거리 가운데 하나는 음식값이 비싸면서도 질이 낮다는 점이다. 특히 직장이 몰려 있는 중심지에서 더욱 그렇다. 항상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12월19일 서울시청에서는 무교동·태평로 지역 백인 이상 업체 총무부장들이, 인근 요식업소들의 가격 안정과 서비스 개선을 위해 모임을 가졌다.

회사 근처 음식점들의 반복되는 횡포에도 불구하고 매일 바쁜 업무에 파묻혀 지내던 직장인들은 이렇다 할 대책을 세울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이 지역 직장인들이 서비스 업소들의 가격을 적정 수준에서 안정시키기 위해 뭉치기 시작했다. 무교동·다동·태평로 지역 직장인들이 10월13일 ‘직장협의회’라는 단체를 결성한 것이다.

비싼 점심값, 질 낮은 서비스에 불만 고조

그들은 이 날 이 지역 서비스 업소의 가격이 서비스의 질과 맞지 않게 높은 문제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들과 회의를 가졌다. 그런데 이 회의에 서울시 고위 공무원들이 참석하고, 회의 장소가 시청이었다는 점에서 이 단체가 직장인의 자발적인 모임인가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 지역에서 기업체 총무부장들이 자발적으로 직장협의회를 결성했다는 것이 당초 알려진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임은 서울시 김의재 행정 제1 부시장의 제안에 따라 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그같은 제안이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지역 직장인들이 상당 부분 직장 근처 서비스의 가격과 질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부시장의 제안에 따라 무교동 근처 직장인들 간에 직장협의회가 결성되자 서울시청은 이 단체가 활동하는 데 필요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기 시작했다. 직장인들의 가장 큰 불만이 질에 비해 값이 비싼 점심값과, 다방과 같은 서비스 업소의 가격과 질이라는 점에 착안한 서울시 소비자보호과는, 이들 지역의 음식점과 다방 등 2백25개 업소의 가격을 조사했다.

지난 12월19일 열린 ‘직장협의회’ 2차 회의에서도 이 조사 결과를 기초로 해 각종 서비스 업소의 질적 개선 문제를 논의했다.

서울시가 이와 같이 직장인들에게 소비자운동을 부추기고 있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서비스 업소 간의 보이지 않는 가격 담합을 막자는 데 있다. 사실 서울시는 민선 자치단체인 까닭에 과거처럼 일일이 행정 지도를 통해 가격을 규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소 불만을 가진 직장인들을 앞세워 업소 간의 가격 담합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진익철 총무과장은 “서울시는 나름대로 행정 목표를 달성하고, 직장인들은 소비자 주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업소 주인들은 서비스 질을 개선할 기회로 삼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직장인 소비자운동이 서울시의 적지 않은 후원을 업고 이루어지는 까닭에 ‘자유 경쟁’의 시장 논리가 왜곡되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이 협의회에 대한 기초 자료를 확보하고자 각 서비스 업소의 가격을 조사하자 업주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윤창호 교수(고려대·경제학)는 이와 관련해 “경제 전반이 생산자 위주로 돼있는 우리 실정에서 자치단체가 그같은 시민운동을 지원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불균등한 경쟁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지자제 시대 또 다른 소비자운동의 모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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