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 'CDMA 신천지' 중국 진출 경쟁
  • 張榮熙 기자 ()
  • 승인 200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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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통신 강자들의 집결지 ··· 한국 기업, CDMA 사용화 기술 무기로 승부수 던져
삼성·LG·현대·SK 그룹 정보통신 관련 회사들의 새 천년 키워드는‘중국’이었다. 중국에 또 하나의 본사를 구축하겠다는 의욕도 보였다. 물론 이들의 무기는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 상용화 기술. 한국이 거의 유일하게 종주국 소리를 듣는 기술을 중국이 지난해 채택했으니 중국 비즈니스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한껏 기대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밖에서 찬물을 끼얹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2월24일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이 중국이 CDMA 방식 이동 통신망 구축 사업을 돌연 연기했다고 타전해온 것이다. 이 보도는 1주일 전에 중국이 미국 퀄컴(원천 기술 보유 기업)과 체결한 CDMA 기술 도입 계약의 파기 혹은 연기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이 사업을 맡고 있는 중국의 제2통신 사업자이자 CDMA 주관 사업자인 차이나유니콤(聯合通信)과 미국 모토로라, 한국 삼성전자 등 10개 장비 제조 업체와의 입찰도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 이 소식을 접한 삼성전자·LG정보통신 등 장비 제조업체들은 아연 긴장하며 진위를 파악하느라 한차례 소동을 벌였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중국 현지 법인 직원을 총동원해 중국 정부가 입장을 바꾸었는지 탐문했지만 아직 변화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라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김원식 협력기획담당관도 “이와 관련해 중국 정부가 한국 정부에 입장을 전달한 것은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유니콤과의 최종 입찰과 관련해 남궁석 전 정보통신부장관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2월28일 중국에 보내려 한 계획은 중국측 요청으로 연기되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속도 조절’을 하려는 것일까. 대부분의 중국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정치’에서 찾고 있다. 최근 미국 의회 움직임이 심상치 않고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 행사 언급과 관련해 미국내 반중국 정서가 확산되자 중국이 대응 차원에서 CDMA 사업 동결이라는 압박용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중국이 CDMA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장 이 사업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이 될 것이지만, 중국 자체의 현실적 필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동 통신 분야에서 유럽 방식(GSM)을 채택해왔으나 남(서방 외국 통신 회사) 좋은 일만 시키자 절치부심해 왔다. CDMA 방식 병행 추진 전략은 중국으로서는‘GSM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돌파구인 셈이다.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고 싶은 외국 기업은 핵심 기술을 이전해야 한다는 조건도 달았다. 따지고 보면 대국인 중국이 동이(東夷)라고 폄하했던 소국 한국에 눈길을 보내는 것도, 이동 통신에 뛰어든 시점(1996년)이 같은데도 한국이 CDMA 상용화에 놀라운 성취를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에 명함을 내미는 나라치고 예외가 없지만 중국 역시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주룽지 총리는 이미 1998년 정보통신산업을 21세기 중국의 ‘중핵 산업’으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후 천문학적 규모의 통신망 확충 계획과 통신 사업자 경쟁력 강화 방안이 잇따라 나왔다. 1998년 3월 옛 우전부에서 우편 분야를 털어내고 한국의 정보통신부에 해당하는 정보산업부[信息産業部]를 새로 발족한 것도 중국 수뇌부가 얼마나 정보 통신 산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지난 50년간 중국의 통신 사업을 사실상 독점 운용해온 회사(국영)는 중국전신공사(차이나텔레콤). 지난해부터 중국에는 차이나텔레콤을 네 갈래로 찢는 혁명적 조처가 단행되고 있다. 중국은 통신 사업의 경쟁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1994년 7월 제2 통신 사업자인 유니콤을 만들었는데 아직까지 차이나텔레콤과는 게임이 안되는 약체 사업자다. 하지만 유니콤이 CDMA 주관 사업자로 지정된 데다 차이나텔레콤이 쪼개짐으로써 앞으로 판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 기업들의 관심이 유니콤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중국 정보통신 수요 폭발적

세계 정보통신 기업치고 중국 시장에 ‘미치지 않는’ 회사는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1990년대 들어 현기증이 날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999년 말 중국의 유선 전화 가입자 수는 1억1천만명. 1990년보다 무려 15배나 늘어났다. 이동 전화의 신장세는 더 놀랍다. 1996년 6백85만명이던 이동 전화 가입자는 1998년 8월 2천만명을 돌파하더니 1999년 말 4천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추산은 7천만명.

전화뿐이 아니다. 중국 인터넷정보센터에 따르면, 1999년 중국 본토의 인터넷 사용 인구는 천만명을 넘어섰다. 1998년보다 2배나 늘어난 것이다. 인터넷 인구가 이처럼 급증한 것은 그만큼 컴퓨터가 많이 보급되었다는 얘기다. 1999년 말 컴퓨터 시장 규모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6% 성장한 1천7백억 위안(24조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2천50억 위안(28조7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전자 상거래 분야도 빼놓을 수 없다. 1999년 말 거래 총액이 8백만 달러에 그쳤으나 올해는 4천만 달러, 2003년에는 1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웬만한 나라에서 이런 성장세를 보였다면 당장 시장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13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는 이런 논법이 통하지 않는다. 중국의 정보통신 분야는 이제 걸음마를 뗀 데 불과하다. 유선 전화 보급률이 10%도 안되며 더더구나 이동 전화 보급률은 3%에 그친다. 지금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이며, 얼마 안가 미국과 어깨를 견줄 것이라는 중국 시장. 이 시장에 세계의 통신 강자들이 다투어 몰려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그만큼 중국 통신 시장은 살벌한 경쟁 시장이기도 하다. 당장 삼성전자·LG정보통신·현대전자 같은 시스템 제조업체들은 모토로라·루슨트테크놀로지·노텔·에릭슨·노키아·NEC 같은 거인들과 격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물심 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대당·중흥·금봉·상해벨 같은 중국 기업들과도 싸워야 한다.
한국 기업 가운데 중국 시장 공략에 한 발짝 앞서 있는 곳은 삼성전자. 이미 삼성전자는 허베이 성 쓰자좡 시와 상하이 시 CDMA 시범 서비스 사업에 시스템을 공급했다. 중국측 서비스 사업자는 제3 통신 사업자인 세기이동통신유한공사(옛 長城통신)와 유니콤. 삼성전자는 미·중 간의 신경전으로 비화하고 있는 이번 유니콤의 시스템 공급 업체 입찰에도 한국 기업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하고 있다.

이번 시스템 입찰에는 배제되었지만 LG정보통신도 중국 공략에 열심이다. 지난해 쓰촨 성 청두 시 CDMA 무선가입자망(WLL) 시스템을 구축하는 개가를 올렸다. 역시 상대는 유니콤. LG는 광저우에 설립한 합작 법인 LG-TOPS를 통해 전국적인 판매망을 구축함으로써 중국 시장을 선점할 작정이다.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유니콤의 2차 입찰권은 무난히 따낼 것이라는 자신감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 “시장 줄 테니 핵심 기술 달라”

시스템 업체들이 악전고투하며 중국 시장을 뚫고 있는 것과 달리 서비스 사업자의 중국 진출은 아직 시작도 안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통신 장비 생산은 중국측 합작선을 잡으면 허용하고 있지만 통신 서비스 분야는 빗장을 완전히 닫아 걸고 있는 것이다. 최근 SK텔레콤이 베이징에서 유니콤과 포괄적 통신 협력 협약을 체결한 것 역시 장기 포석일 뿐 당장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SK텔레콤 중국사업팀 김석동 부장은 “지금은 무지하게 공을 들이고 있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중국을 도우면 언젠가 열릴 서비스 시장 개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중국 비즈니스와 관련되어 있는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중국 시장이 무척 까다롭고 공략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토로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데다가 중국 정부가 유난히 자국 중심의 고난도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기술 이전을 외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 문서에도 ‘시장으로써 기술을 바꾼다’는 표현이 들어 있다. 중국 시장을 내줄 테니까 기술을 성의껏 내놓아라, 핵심 기술을 주지 않으면 배제하겠다는 배짱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외국 업체로부터 기술을 배워 자국 통신 사업자의 경쟁력을 높이고 더 나아가 정보통신산업을 비롯한 하이테크 산업의 도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사실은 서방 제국들의 중국 공략 역사가 웅변한다. 20년이 되었는데도 재미를 보기는커녕 본전을 찾지도 못한 기업이 수두룩한 것이다. 중국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중국 비즈니스 성공학은 두 가지였다. 열심히 오랫동안 공을 들여 신뢰를 쌓아야 하며, 철저하게 윈윈(상생) 거래라는 점을 확신시킬 것. 신사업인 정보통신 분야는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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