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경제 브레인, 누가 떠오르나
  • 金芳熙 기자 ()
  • 승인 1998.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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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근·김용환·최수병 중용 가능성…임창렬·김철수는 ‘복병’
“김태동이 때문에 다 글러먹었어.” 과거 경제 관료 출신으로 청와대 경제수석 후보로 거론되던 한 인사가 사석에서 내뱉은 말이다. 물론 김태동 교수(성균관대·무역학)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확정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이 말은 청와대 수석 인선을 둘러싸고 물밑에서 전개된 신경전을 함축해 표현한 말이었다.

‘구시대 인물 중용론’은 차기 정부의 경제팀 구성을 둘러싼 논란의 핵이 되어 왔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외환 위기를 수습하는 데 과거 경제 관료 출신 인사들을 대거 활용하면서, 이들을 중용할 것이 점쳐졌기 때문이다. 5공 때 상공부 차관을 지낸 김기환 경제순회대사, 재무부장관 출신 정인용 특사,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박영철 금융연구원장,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김만제 포항제철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들이었다.

DJ “천하의 인재를 구해 쓰겠다”

일부 언론은 이들이 경제수석에 기용된다고 기정 사실화하다시피 했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후보로 거론되었던 김태동 교수를 비롯한 소장 교수들의 이름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이 언론의 검증을 받겠다며 내놓은 경제수석 후보 두 사람은 예상과 전혀 딴판이었다. 김태동 교수 외에 이 선 교수(경희대·경제학) 역시 초기에 거론된 소장 경제학자였던 것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 사건이야말로 김대중 정부의 경제팀이 어떤 면면으로 구성되고, 어떻게 운영될지를 잘 보여주는 예다.” 한때 경제수석 후보로 거론되었던 한 경제학자는 김대중 차기 대통령이 다양한 인물을 구해 쓰되, 중심축만큼은 자신과 자신의 오래된 경제 두뇌로 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일부 언론이 점쳤던 구시대 인물 기용이 빗나가게 된 것은,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일부 측근이 그 아이디어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외환 위기 수습 과정에서 이들의 역할이 컸다고는 하지만 다소 부풀려진 면이 많고, 이들이 한국 경제가 부도 직전까지 몰리게 된 상황에 전혀 책임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주장이었다. 특히 소장 경제학자들의 반발이 심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김태동 교수를 중심으로 해 김대중 차기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렸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대선 6개월 전부터 명망 있는 경제학자를 대거 동원해 경제 정책을 세웠던 김영삼 대통령과 달리 김대중 차기 대통령 주변의 경제 두뇌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있을 새 정부의 경제팀 인선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김 차기 대통령이 당선 연설에서 자신의 주변 인물 외에도 ‘천하의 인재를 구해 쓰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영삼 정부의 경제팀 인선이 예측하기는 더 쉬웠다. 경제 분야만은 YS식 파격 인사에서 예외였던 셈이다. 이는 김영삼 대통령 주변에 경제 두뇌가 ‘질서 정연하게’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초 박재윤 초대 경제수석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른바 ‘12인의 사도’와 그들이 다시 분야 별로 작업을 맡겼던 40여 경제학자가 가용 집단이었다. 여기에 김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으로 그의 주변에 머물렀던 전·현직 관료와 실물 경제인들이 주된 발탁 대상이었다.
반면 김대중 차기 대통령은 대선 전까지 당선 가능성이 낮은 야당 후보였던 탓으로, 경제학자나 경제 전문가가 그의 주변에 많이 몰려들지 않았다. 92년 대선 때부터 그를 도운 10명 안팎의 소장 경제학자들이 고작이었다. 이 ‘정책팀’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외교안보·통일 등 각 분야의 정책을 개발했던 그룹으로, 공식으로는 김원길 국민회의 정책위 의장의 지휘를 받았다.

경제수석으로 발탁된 김태동 교수와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이 선 교수는 정책팀 경제분과의 좌장 격이었다. 두 사람 외에 윤여진 전 모건그렌펠 한국지점장, 이진순 교수(숭실대·경제학), 윤원배 교수(숙명여대·경제학)가 이 그룹에 속해 있는데, 이들의 이름은 앞으로 여러 자리 하마평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유종근 전라북도지사는 재계에서 통하는‘신실세’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인물이다. 95년께 김 차기 대통령이 <대중경제론>을 고쳐 <대중참여경제론>을 집필하면서 인연을 맺었으나, 외환 위기 수습 과정에서 영향력이 급증했다. 정치적 언행에 약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정작 김 차기 대통령은 그의 그런 솔직함과 소신을 좋아한다는 후문이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신임이 여전해, 김태동 교수에게 경제수석 확정 사실을 통보하면서 유지사와 호흡을 맞추라고 강조했을 정도다. 입각 여부와 상관없이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대외 경제 창구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 같다.

가장 강력한 재경부장관 후보로 거론되어 왔으나 본인이 고사하는 김용환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위원장도 김대중 정부에서 영향력 있는 경제 두뇌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기자 간담회에서 ‘30대에 재무부장관을 한 사람으로서 (자리에) 미련이 없다’고 한 말에서 느낄 수 있듯, 그 자신은 정작 대통령의 경제 두뇌보다는 정치인 경력에 관심이 많은 눈치다. 최수병 특보는 김영삼 정부의 한이헌씨에 비유되는 인물. 경제기획원과 보사부 차관을 거쳐 김대중 후보 진영에 가담한 후 김후보에게 경제학을 강의했다. 이밖에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경제통 정치인’들 역시 언제든 중용될 수 있는 경제 두뇌 가용 집단에 속한다.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 의장과 장재식 의원, 자민련 허남훈 정책위 의장과 지대섭 의원이 그들이다.

최고의 경제 두뇌는 바로 DJ 자신?

경제수석 임명 과정에서는 배제되었지만, 과거 경제 관료 출신 인사들도 대통령 경제 특보와 장관 후보로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실무에 밝은 이들은 대부분 대구·경북과 부산 출신이어서 화합 이미지에 부합하는 인사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외환 위기 수습 과정에서 소리 없이 활약한 김기환 대사와 증권관리위원회 비상임 이사를 역임한 이헌재 비대위 실행위원장을 중용할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아직까지 언론이 자주 거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외의 ‘복병’도 많다. 임창렬 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좋은 예다. 그는 외환 위기 실상을 솔직하게 보고해 김대중 차기 대통령에게 높은 점수를 받아 둔 상태이다. 게다가 김대중 차기 대통령 진영과 폭넓게 교류하고 있는 부인 주혜란씨의 내조 덕도 기대해 볼 만하다. 재경원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은행 총재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김영삼 정부 초기 상공부장관을 지낸 김철수 국제무역기구(WTO) 사무차장과 그 밑에서 차관을 지낸 박운서 한국중공업 사장, 문희갑 대구시장도 복병에 해당한다. 김대중 차기 대통령은 이들과 개인적으로 인연이 없으나, 이들의 소신과 경험을 높이 살 가능성이 있다. 이 중 김철수 사무차장은 2월 초 김대중 차기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이 장관일 때 추진했던 신산업 정책(신재벌 정책)에 관한 경험을 들려 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 개인적인 인연은 전혀 없지만 일반인과 학계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는 정운찬 교수(서울대·경제학) 등 명망 있는 경제학자들이 중용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김대중 차기 정부의 경제팀 면면이 하나 둘 확정되면서, 일각에서는 경제팀 운영에 구심점이 없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을 축소하고 재경원이 재경부로 격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통령 경제특보까지 설치될 예정이어서, 과거와 같은 부총리-경제수석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각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한 측근 인사는 이런 우려를 한마디로 일축했다. “경제팀 운영의 구심점은 당연히 대통령 본인이다.” 그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김대중 차기 대통령에게 최고의 경제 두뇌는 그 자신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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