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펼친 ‘마케팅 올림픽’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s.com)
  • 승인 2004.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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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국 대표 참가한 ‘로레알 어워드’ 파리 본선 대회 현장 취재
2004년 1월부터 4월까지 한 조사기관이 유럽의 100개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는 대학생 5천여 명에게 물었다. 가장 가고 싶은 기업이 어디냐고. 그 결과 화장품 회사 로레알(14.75%)이 1위로 나타났다. 매킨지 앤드 컴퍼니·BMW가 그 다음이었다.

마케팅 전공 대학생들에게 1초당 1백30개씩 화장품이 팔리는 세계 최대의 화장품 회사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랑콤·랄프로렌·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로레알 그룹이 가지고 있는 브랜드 17개의 인지도가 높은 것도 한 이유다. 하지만 로레알이 마케팅 전공 대학생들이 선정한 1위 기업으로 오른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지난 6월9일 열린 로레알 마케팅 어워드다.

로레알 마케팅 어워드는 전세계 대학생들이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마케팅 경연대회이다. 1993년 1회 대회가 열린 이래 올해 12회째를 맞고 있다. 올해는 스물여섯 나라의 대학생 3천2백70명(국가별 예선 포함)이 경합했다.

남성화장품 주제로 아이디어·팀워크 경연

이 대회에 참가하는 학생은 다국적 기업의 마케팅 실전을 경험한다. 국가별 예선을 통과한 ‘대학생 국가대표팀’은 2개월 동안 실제로 브랜드 매니저가 되어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과 광고 전략을 기획한다. 이들은 수시로 로레알의 마케팅·인사 담당자로부터 시장 자료를 받고,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회사측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는 스무 팀이 치열하게 경합한 끝에 연세대팀(정정구·정회민·곽지영)이 대표로 파리 본선에 진출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국내에서 예선·본선·결선을 거치면서 8개월 동안 마케팅 실력을 갈고 닦았다.

마케팅 어워드의 주제는 해마다 바뀐다. 올해의 주제는 남성 화장품이었다. 로레알의 남성 화장품 브랜드 비오템 옴므의 신제품을 출시하고 마케팅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정정구(경영 98학번) 정회민(경영 98학번) 곽지영(경영 00학번) 세 학생은 8개월 동안 백화점 화장품 매장을 교실처럼 드나들었다.

세 사람은 우선 자료를 분석했다. 회사측으로부터 받은, 3백여 쪽에 달하는 시장 자료를 꼼꼼히 검토했다. 회사측 자료와 별개로 소비자 선호도와 구매 유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2백 명을 상대로 설문 조사를 하고, 20대 남학생과 30대 남성 회사원을 상대로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했다. 남성 화장품의 75%를 여성이 사서 선물한다는 조사 결과에 따라 추가로 20~30대 여성을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파리 결선을 앞두고 이들은 매주 3~4회씩 모였다. 자연스럽게 각자 역할이 정해졌는데, 정정구·정희민 씨가 전체 시장과 제품 분석을, 곽지영씨가 광고·디자인 부문을 담당했다. 여성의 시각에서 남성 화장품을 분석하는 것도 곽씨 몫이었다(로레알 마케팅 어워드가 팀워크도 채점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고르게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다).

파리 본선은 경쟁이 치열했다. 각국의 프레젠테이션은 흡사 공연을 보는 듯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SWOT 분석을 통해 마케팅 전략을 세웠다. SWOT 기법은 기업의 강점(Strength)과 약점(Weakness), 기회(Opportunity)와 위협(Threat) 요인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기법이다. 연세대팀은 휴대성과 편의성을 강조했다. 지갑에 들어가는 신용카드형 남성 화장품과 볼펜형 화장품을 개발해 이목을 끌었다. 인터넷 마케팅을 특화한 점도 주목되었다.

1등은 캐나다의 요크 대학 팀에게 돌아갔다. 남자들의 피부가 아침마다 되살아난다는(revive) 컨셉트가 높게 평가받았다. 2등은 싱가포르가, 3등은 일본과 네덜란드가 공동 수상했다. 26개국을 3개 조로 나누어 한 팀씩 최종심에 올라가는 방식이었는데, 한국 팀은 아쉽게도 싱가포르에 밀렸다.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던 김동훈 교수(연세대·경영학)는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국가들이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최종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린제이 오웬 존스 로레알 그룹 CEO는 “여기에 참석한 학생들 모두가 승리자다. 이들은 20대 시절의 나보다 훨씬 프로페셔널하다”라고 말했다.

이 행사는 전세계의 유능한 마케팅 인재를 발굴하고 채용하기 위한 로레알 그룹의 중요한 인사 정책 가운데 하나다. 2003년 세계 본선에 참여한 학생 54명 가운데 50%가 채용되었다. 지난해 참가한 독일팀은 각각 프랑스·캐나다·멕시코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 대표 세 사람도 7월부터 2개월 동안 로레알코리아에서 마케팅 부문 인턴으로 근무한다. 정정구씨는 “입상을 못해 아쉽지만 8개월 동안 브랜드 마케팅 매니저가 실제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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