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로 가자" 높아지는 대기업 관심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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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들, 투자 진출 관심 고조… “정치 안정·성장 잠재력 큰 매력”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LG그룹은 최근 인도를 그룹의 전략 거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올해 이 그룹은 두 차례나 투자조사단을 구성해 인도를 다녀왔다. 현재 사업 분야와 합작선 등에 관해 막바지 검토를 하고 있다. 이 그룹의 한 관계자는, 연내에 화학과 가전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대규모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공략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 그룹의 인도행은 ‘인도에 뭔가 큰 투자 매력이 있구나’ 하는 특별한 관심을 재계에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그룹 차원에서 인도를 점찍은 것은 LG그룹이 처음이지만 삼성·대우 그룹도 관심의 열기에서는 LG에 뒤지지 않는다. 해외 투자에 공격적인 대우그룹은 지난해 인도와 일본의 합작기업인 DCM 도요타로부터 도요타측 지분 51%를 3천 7백만달러에 사들여 DCM 대우로 문패를 바꿔 달았다. DCM 대우는 올 6월 씨에로 승용차를 인도에서 생산할 예정이다. DCM 대우는 인도에 대한 한국 기업의 본격 진출이라는 점에서 재계에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삼성그룹도 경제연구소와 삼성물산이 주축이 돼 인도에 대한 합작 유망 사업 분야를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 그룹의 한 관계자는, 가전 부문의 투자가 머지않아 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일 ‘인도 공략’ 아직 초기 단계

90년대 들어 한국 기업 진출 러시 현상을 보였던 중국은 한국과 문화 전통이 비슷하고 인종적으로 큰 차이가 없어 한국 기업으로서 문화 충격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도는 다르다. 우선 인도인은 피부 색만 다소 검을 뿐 생김새가 유럽인에 가깝다. 힌두교와 카스트 제도라는 사회적 특성도 한국인에게는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일부 재벌 그룹, 특히 해외 공략에 소극적이던 LG그룹의 적극적인 인도 탐구는 예사롭지 않은 ‘향학열’로 받아들여진다. 중국으로 북상하던 투자 바람이 서남쪽(인도)으로 방향을 바꿀 조짐이다.

인도와 중국은 여러 모로 유사점이 많다. 둘 다 대륙이라고 부를 만큼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중국 인구는 11억명이 넘고 인도는 9억명에 육박한다. 인구 수로 세계 1,2위의 국가다. 아직 국민소득은 낮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아 여러 기관에서 21세기에 강국으로 떠오르리라는 기대와 견제를 동시에 받고 있다. 양국 기업가들이 세계적으로 뛰어난 상술을 갖고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우수한 상술을 가진 3대 민족으로 유태인 중국인 인도인을 꼽는데, 유태인은 `‘머리’로, 중국인은 ‘`발’로, 인도인은 `‘말’로 세계 상권을 흔드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차이점도 적지 않다. 인도는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중국은 공산 국가다. 91년부터 집권하고 있는 라오 정부는 최근 정정 불안이 고조되고 있는 중국과는 달리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고 있다. 설령 96년 선거에서 라오 총리가 실각하고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정책 기조를 크게 바꿀 공산은 희박하다. 또 인도는 중국에 비해 법체계가 잘 정비돼 있어 사업을 하는 데 불확실성이 상대적으로 적다.
LG·대우·삼성 그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 열기는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 보따리를 상당히 풀어놓은 데다 갈수록 경쟁이 격심해 돈 벌 여지가 줄어들고 있는 데 따른 일종의 반작용으로 해석된다. 인도는 마지막 남은 거대 시장으로 여겨지리만큼 사업 기회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동틀 무렵에 투자하라’는 증시 격언이 인도 투자에도 적용될 수 있다. 동남아 시장을 다 차지하다시피 한 일본 기업이 아직 인도에 대해서는 주판알을 튕기는 단계이며, 미국과 유럽 기업들의 공략도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LG그룹의 한 관계자는 “해외시장 공략은 선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라오 정부 들어선 후 투자 규제 대폭 완화

86∼92년 6년 동안 인도에 대한 외국인 투자 누적 규모는 25억달러에 불과했다. 93년에는 한꺼번에 24억달러가 몰려들어 확 달아오른 서방의 진출 열기를 느끼게 했으나, 인도는 아직 이들에게 요리된 시장이 아니다. 인도는 93년 현재 외국인 투자 규모가 천억달러를 넘은 중국에 비해 절대 규모가 작은 데다 허가된 투자 역시 실제로 집행된 것은 매우 적다. 실행률은 91년 66%로 꽤 높았으나, 92년에는 17%로 뚝 떨어졌고, 93년에도 20%로 저조했다. 실행률이 낮은 것은 제도가 급변하고 있어 외국 기업들이 구체적인 결정을 늦추고 있기 때문이다. 94년 말에 `‘주요 선진국의 인도 경협 현황과 한국의 경협 방향’이라는 보고서를 낸 대우경제연구소 조충제 선임연구원은 “위험에 적극 맞서지 않으면 큰 이익도 없다”며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 투자를 늘리려 하는 것은 당장 돈이 될 만한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인 미국 매킨지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92년 구매력 기준으로 인도의 국내총생산(GDP)은 1조1천억달러이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중국(2조8천7백억달러)에 이어 2위이다. 멕시코·인도네시아·한국은 각각 5천9백억달러, 5천1백억달러, 3천8백억달러에 불과했다. 따라서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92년 2백95달러)만을 보고 구매력을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

인도처럼 사회주의적 성격을 지닌 국가에서는 주택·교육·의료 같은 공공 서비스를 정부가 보조하기 때문에 물가나 임금 수준이 낮게 나타난다. 시장 환율에 의거해 달러 기준으로 표시한 소득은 구매력을 가늠하는 실제 소득보다 낮게 평가될 수 있다. 매킨지사는 인도의 경우 4.5배 저평가되어 있다고 분석했다. 매킨지 보고서는 내구 소비재를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인도의 중산층 인구를 1억5천만명으로 추산했다.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2천만명은 당장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수준의 소비자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한술 더 떠 인도의 중산층 인구가 매년 5∼10%씩 늘어나 10년 이내에 4억명에 이를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은 73년 인도와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었지만 한국 기업의 인도 진출은 매우 부진했다. 91년 6월 개방 정책을 편 후부터는 직접 투자가 늘고 있지만, 중국·인도네시아·베트남 등에 비해 투자액이 매우 적다. 같은 서남아 국가인 스리랑카에 비해서도 적다.
한국 기업들이 인도를 무관심에 가깝게 대한 것은 폐쇄적이고 전근대적인 인도의 이미지가 큰 역할을 했다. 차도 한복판에서 어슬렁대는 소떼, 거리를 가득 메우는 오토릭쇼(오토바이를 개조한 소형 삼륜차)와 릭쇼(자전거를 개조한 인력거), 도로 뒤쪽이나 빌딩 한귀퉁이 움막집에서 기어나오는 남루한 차림의 사람들, 불결하기 짝이 없는 갠지스 강에서 목욕례를 올리는 사람들, 엄격한 카스트 제도 등이 인도 하면 떠오르는 주요한 풍경이었다.

그러나 투자가 극히 부진했던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인도 정부가 외국인 투자를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1년 6월은 인도의 경제 정책이 급선회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만하다. 나라시마 라오 총리와 만모한 싱 재무장관을 구심점으로 한 개혁 정권이 들어서면서 인도는 변신을 꾀하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미소와 손짓을 보냈다. 이들은 `‘잠자는 대륙’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려 애썼다. 인도인들은 4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후 80년 말까지를 스스로 `‘잃어버린 4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바쁠 것이 없는 것 같은 인도인들에게도 빈곤선 이하 계층이 30%가 넘는 현실이 뼈아프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라오 정부는 개방과 자유화를 통한 경쟁 촉진 정책이 곧바로 빈곤 퇴치를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선택했다. 물이 한 방울씩 여과기를 통과하여 밑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경제발전의 성과가 최하층까지 확산되는 효과인 이른바 `‘점적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이를 위해 라오 정부는 먼저 정부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었다. 비효율투성이인 국영 기업의 민영화 계획도 발표했다. 자본 조달과 고용 창출을 위해 외국인 투자자를 유인하는 정책도 적극 폈다. 계획 경제와 시장 경제를 뒤섞은 이른바 `‘혼합 경제’ 체제였던 인도는 점차 자본주의 체제로 옮아가고 있다.
핵에너지·소프트웨어 기술은 세계적 수준

인도 경제는 91년(91년 4월1일∼92년 3월31일) 경제성장률이 1% 선에 불과했으나 93년에는 4% 선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13%까지 치솟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7% 선으로 떨어졌다. 80년대 중반부터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로 고통을 겪어온 인도 경제는 여전히 적자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 적자 폭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외환보유고는 꾸준히 증가해 94년 4월에는 1백38억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살얼음판을 걷던 외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경제 지표로 드러난 변화보다 인도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게 하는 것은 기업인들의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을 옥죄던 갖가지 규제가 서서히 풀리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층의 경제 의식이 변하고 있는 것도 인도를 자본주의 경제 국가로 만드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고, 돈을 벌어 텔레비전과 같은 내구 소비재와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인도 전문가인 삼성경제연구소 이문봉 선임연구원은 “인도의 자본주의화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은 홍콩의 유선 방송인 스타 TV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스타 TV는 인도 중산층에게 소비붐을 몰고 왔으며,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는 카스트 제도의 위력을 축소시키는 데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집약적 산업부터 최첨단 산업까지 두루 걸쳐 있다는 점도 한국 기업으로서는 매우 좋은 조건일 수 있다. 인도는 1차 산업의 비중(30%)이 높지만 식료품 섬유 금속 기계 석유화학 자동차 등의 산업시설을 비교적 고루 갖추고 있다. 핵에너지·인공위성·유전개발·소프트웨어 같은 부문에서는 세계적인 기술 수준을 갖고 있다. 이미 74년에 핵실험을 한 이 나라는 미국 의회로부터 수소폭탄 제조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인도는 또 이미 세계 2위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인도 남서부 카르나타 주의 벵갈로어 시는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린다. 미국 실리콘밸리와 항공우주국(NASA) 소속 기술진 가운데 30% 이상이 인도인이며, 영국 의료진의 3분의 1 역시 인도계라는 통계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문봉 선임연구원은 “인도가 못산다고 한국 기업이 가르치려 들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인도에서 ‘손’과 ‘머리’를 동시에 빌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역시 외국인 처지에서는 돈을 기꺼이 투자하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요소도 만만치 않다. 사회간접자본이 열악한 점이 우선 꼽힌다. 전력·전화·도로 사정이 특히 좋지 않다.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애쓰지만 과실송금 제한 등 적잖은 규제가 도사리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동조합이 강하며 투자 철수가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한국 기업들은 IBM·코카콜라·제너럴모터스·메릴린치 같은 선발 미국 기업들과 푸조·메르세데스 벤츠 같은 유럽 기업들의 인도행 대열에 곧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에는 타타·비루라·릴라이언스 등 한국의 재벌 그룹과 유사한 대규모 기업집단(인더스트리얼 하우스로 불린다)이 있다. 한국 기업과 이들 그룹 계열사와의 합작 투자가 많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의 인도행은 아시아권에서 교두보를 다지려는 노력의 하나이며 해외 투자의 본격화로 해석된다. 서남아의 거인 인도가 ‘제2의 중국’을 향해 뛰기 시작한 것이 일본 기업에 밀리기만 한 한국 기업에 권토중래의 계기를 마련해 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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