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 ‘스포츠 마케팅 열전’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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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2004 후원 현대차, 엄청난 광고 효과 거둬 삼성, 스포츠 마케팅으로 브랜드 가치 크게 올려
지난 6월24일(현지 시각) 잉글랜드와 포르투갈이 유로2004 8강전 첫 경기를 벌인 포르투갈 리스본 루츠스타디움. 전반 3분 잉글랜드 공격수 마이클 오언이 포르투갈 수비수 코스티냐의 머리를 맞고 넘어온 로테이로(유로2004 공식구)를 오른발 아웃프런트로 차 첫 골을 넣고 환호할 때 포르투갈 골키퍼 히카르두 뒤에는 파란 바탕에 ‘HYUNDAI’라고 적힌 흰색 영문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골대 뒤에 설치된 이 입간판은 오언의 골 세리머니 못지 않게 새벽잠을 잊고 텔레비전 생중계를 보던 국내 축구팬의 눈을 사로잡았다. 현대자동차가 경기장 네 곳에 설치한 이 입간판은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벌인 경기 내내 전세계 텔레비전 시청자 눈에 띄었다. 현대자동차는 국제축구연맹(FIFA)과 손잡고 갖가지 축구 행사에 공식 후원사로 참여했다. 단일 경기로는 가장 많은 팬을 자랑하는 축구 경기를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현대자동차 사례처럼 내로라 하는 국내 기업들이 세계 유명 스포츠 이벤트에 공식 후원 업체로 참여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올림픽 공식 파트너 계약을 맺었는가 하면, 기아자동차는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에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후원 비용이 상당하지만 홍보 효과가 엄청나다며 계약 기간을 늘리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유로2004를 후원하면서 7백억원 가량을 썼으나 광고 효과는 20억 달러(약 2조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경기당 시청자 수를 3천5백만명(유럽 7개국)으로 추산하고, 경기당 입간판이 노출되는 시간인 15분을 텔레비전 광고료로 계산해 나온 수치여서 과장된 감이 없지 않지만, 유럽인들에게 짧은 시간 안에 브랜드 인지도를 크게 높인 것은 틀림없다.
현대자동차는 1994년 5월 국제축구연맹과 자동차 부문 공식 후원사 계약을 체결하고 2002 한·일 월드컵, 유로2004, 2006 독일 월드컵, 세계청소년축구대회, 세계여자월드컵을 마케팅에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현대자동차는 한·일 월드컵에서 독점 후원사 자격으로 행사 진행 차량 1천53대(한국 5백31대, 일본 5백22대) 전부를 지원해 행사진행자·선수단·기자단에게 현대자동차를 알리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한·일 월드컵 본선 진출 32개국을 순회하면서 100만명이 넘는 세계 축구팬으로부터 자국팀 승리를 기원하는 굿윌볼 로드쇼와 세계 미니 축구대회를 개최하며 광고 효과를 높였다.

현대자동차는 한·일 월드컵 후원 비용으로 천억원 가량을 사용했다. 국제축구연맹 기부금으로 5백억원을, 갖가지 마케팅 행사 비용으로 5백억원을 지불했다. 한·일 월드컵은 세계 2백개 국가에 중계되어 연인원 6백억명이 시청했다. 현대자동차는 전세계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10% 가량 높아졌고 6조2천억원이 넘는 광고 효과를 올렸다고 자체 분석했다.

현대자동차가 2006년 독일 월드컵 자동차 부문 독점 후원사로 선정된 것은 ‘자동차 강국’을 자부하는 독일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독일 언론들은 자국 업체인 다임러크라이슬러·폴크스바겐·BMW가 후원사가 되지 못한 것을 질타했다. 심지어 한 장관은 ‘독일의 수치’라고까지 표현했다. 이용훈 현대자동차 부사장은 “스포츠 마케팅 전략을 활용해 현대자동차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2010년 세계 5위 자동차 업체에 오르겠다는 목표에 걸맞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축구에 치중하는 현대자동차와 달리 삼성전자는 올림픽 행사를 자사 홍보 마당으로 삼는다. 삼성전자가 올림픽 마케팅에 몰두하는 데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 위원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전자는 코카콜라·코닥·비자카드 등 11개 글로벌 기업과 함께 아테네올림픽 공식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공식 파트너는 2백여 국제올림픽위원회 회원국에서 올림픽 로고나 마크를 활용해 마케팅을 벌일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제28회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있는 그리스 아테네를 삼성 로고와 입간판으로 도배하다시피 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무선 통신 부문 공식 파트너 자격으로 아테네올림픽에 휴대전화 1만4천대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WOW(Wireless Olympic Works)라는 무선 통신 기술을 선보인다. WOW는 올림픽 기간 내내 올림픽조직위원회가 제공하거나 집계하는 갖가지 대회 정보와 함께 경기 일정과 결과를 실시간으로 선수·대회 관계자·기자에게 전송한다.
삼성전자는 후원 비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현대자동차의 월드컵 후원 비용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만큼 삼성전자는 올림픽을 철저하게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올림픽 기간에 세계 주요 거래선을 초청해 아테네에 설치할 삼성홍보관을 견학시킬 예정이다. 또 NBC·CNN·유로스포츠 같은 세계 유명 매체에 브랜드 광고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는 전략이다. 김태호 삼성 구조본 상무는 “이번 아테네올림픽이 브랜드 이미지 증진 차원을 넘어 브랜드 호감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 전략 시장에서 삼성의 무선 통신 마케팅 경쟁력을 높여 글로벌 기업으로 진입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공식 파트너인 것과 달리 현대자동차는 아테네올림픽위원회로부터 공식 후원사 자격을 얻었다. 현대자동차는 전기 자동차 싼타페EV를 대회 운영 차량으로 제공하고 귀빈·선수단·기자를 운송할 차량 5백대 가량을 조직위원회에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 스포츠 마케팅으로 큰 이득을 본 업체는 기아자동차. 이형택 선수가 2004년 1월 호주 오픈 테니스대회 1회전을 통과하자 국내 방송사가 이형택 선수의 2회전을 생중계했다. 호주 멜버른에 있는 경기장 안에 기아자동차 로고와 회사명이 가득해 윔블던·파리 오픈·US 오픈과 함께 세계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 오픈이 국내 대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기아자동차가 호주 오픈의 메인 스폰서로 참여하면서 경기장 안팎을 기아자동차 광고판으로 도배한 것이다. 평소 2%에 머무르던 낮시간 시청률이 이선수의 경기가 중계된 1월13일에 6%로 치솟았다. 기아자동차는 수십억원이 넘는 홍보 효과를 거두었다고 자체 평가했다.

기아자동차는 2001년 11월 호주테니스협회와 공식 후원 계약을 맺고 2002~2008년 호주 오픈을 공식 후원하고 있다. 기아자동차는 공식 명칭과 이벤트 로고 사용권, 경기장 안팎 광고판 설치권, 경기장 주변 프로모션 권리를 갖고 행사 차량 75대(카니발과 쏘렌토)를 지원했다. 2004년 호주 오픈은 세계 1백77개국 5억3백만 가구가 시청했다. 유로스포츠·BBC·ESPN·CCTV·M-net·TSN 같은 유명 방송사가 중계하면서 전세계 시청자들은 기아자동차 브랜드를 1천4백 시간 동안 보게 되었다. 기아자동차는 호주 오픈 광고 효과가 3억3천만 달러(약 4천억원)에 이른다고 자체 분석한다.

기아차, 테니스 대회 후원해 ‘짭짤한 효과’

호주 오픈에서 거둔 성과에 힘입어 기아자동차는 2003~2005년 3년 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 데이비스컵 테니스 대회를 공식 후원한다. 올해 데이비스컵 대회는 전세계 시청자 6억2천만명을 상대로 1천8백 시간 넘게 중계되었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만 54만3천명에 이르렀다. 기아자동차는 경기장내 네 곳에 입간판을 설치하고 데이비스컵 인터넷 사이트에 배너 광고를 실었다. 또 기아자동차를 경기 운영 차량으로 지원하고, 경기장 안팎에 기아자동차 전시 공간도 마련했다. 기아자동차는 데이비스컵을 후원하면서 지난해 2백88만 달러, 올해 5백만 달러에 이르는 홍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했다.

스포츠 마케팅은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시청자나 관중에게 접근할 수 있어 광고를 기피하는 대중에게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장점이 있다. 웬만한 중견 기업은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들지만 이로 인한 효과는 상당하다. 삼성은 1998년 나가노 겨울 올림픽에 참여할 당시 32억 달러에 불과하던 브랜드 가치를 시드니 여름 올림픽, 솔트레이크 겨울 올림픽을 거치며 2003년 1백8억 달러까지 높였다(인터브랜드 사 발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판단 기준 중 하나가 브랜드 가치이다. 국내 기업들이 스포츠 마케팅을 활용한 브랜드 제고 전략을 앞다투어 채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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