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경제]회장 교체한 인텔 ‘인사이드 스토리’
  • 成耆英 기자 ()
  • 승인 1998.05.14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때 ‘돈 찍는 기계’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인텔의 1/4분기 순이익은 지난해에 비해 36% 줄었다. 그래서 11년 간 인텔을 이끌어 온 앤드류 그로브 회장의 퇴진이 이와 관련되지 않았느냐는 추측이 나온다.
인텔 사의 최고 경영자(CEO)가 오는 5월20일 주주 총회에서 교체된다. 인텔은 전세계 컴퓨터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의 90%를 생산하는 업체인데다 이번에 물러나는 앤드류 그로브 회장은 지난해 시사 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뽑은 인물이어서, 그가 퇴진하는 이유에 관심이 모아졌으나,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후진에게 길을 터 준다’는‘한국적’표현 이외에 별다른 것은 없다. 그래서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이 후임 최고 경영자로 내정된 크레이그 배럿 사장(아래 사진).

고든 무어 명예회장과 앤드류 그로브 현 회장이 인텔을 창업한 것이 68년이고 후임자인 크레이그 배럿 사장이 인텔에 입사한 것이 74년이니까 두 사람은 지금까지 꼬박 24년간 인텔에서 호흡을 맞추어 온 사이이다. 그로브 회장이 총사령관이었다면 배럿 사장은 별 다섯을 단 원수급 장성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상반되는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 그로브 회장은 반도체 칩밖에 모른다.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다가도 회사 걱정에 1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와서 회사를 둘러볼 정도로 일에만 집착하는 성격이다. 그의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 줄 법한 말은 ‘편집광’이다. 국내에도 번역된 그의 저서 제목 역시 <편집광만이 살아 남는다>였다.

전임·신임 회장, 해외 출장 때 이코노미 클래스 이용

이 편집광으로부터 인텔의 지휘봉을 넘겨 받은 배럿 사장은 금속공학을 전공한 스탠퍼드 대학 교수 출신이다. 학자 출신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배럿 사장의 경영 스타일은 그로브와 달리 신중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전임자인 그로브 회장에 대해 배럿 사장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저돌적이다’라고 평한 적이 있다.

배럿 사장의 꼼꼼한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도 많다. 그가 운영하는 공장에서는 모두 동일한 장비와 제조 공정을 채택해야만 한다. 심지어 벽에도 같은 색 페인트를 칠해야 한다. 사무실 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직접 주워 휴지통에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공격적 스타일인 그로브 회장과 침착한 스타일인 배럿 사장이지만 두 사람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두 사람 모두 현장 중심 경영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마일리지 쌓기 내기를 즐길 정도로 해외 출장을 자주 간다는 것, 또 해외 출장을 갈 때는 꼭 이코노미 클래스만 이용한다는 것 등이다. 당연히 운전 기사나 전용 주차장은 따로 없다. 그로브 회장은 회사에 들어갈 때마다 일반 직원들 뒤에 줄을 서서 일일이 보안 검색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인텔의 1/4분기 순이익은 1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6%나 줄어들었다. 한때 ‘돈 찍는 기계(Profit Machine)’라는 별명까지 들었던 인텔로서는 위기라는 말이 나올 법했다. 그래서 11년 간이나 인텔을 이끌어 온 그로브 회장의 퇴진은 이런 위기에 대한 책임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신중한 새 회장, 언론에 기밀 누설 ‘실수’

그러나 정작 배럿 사장은 항간의 이런 소문을 일축한다. 이미 인텔 창업 이후 부사장·이사회 이사 등을 지내며 착실한 승계 절차를 밟아 왔다는 것이다. 전립선암 증세를 보였던 그로브 회장도 거의 완쾌 상태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배럿 사장의 신중한 성격은 지난 4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드러났다. 이미 대부분의 언론에 보도된, 삼성에 대한 10억달러 투자설을 기자들이 묻자 그는 온화한 미소를 머금으면서‘컨피덴셜(비밀)’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가 기자들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소심하게 행동한 진짜 이유는 96년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내용이 문제되어 회사 경영위원회로부터 달갑지 않은 상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재갈상’이라고 불리는 이 상의 상패에는 개 입막음용 가죽 재갈이 그려져 있다. 기업의 내부 기밀을 언론에 누설한 임원에게 주는 경고용 상이었다. 올해 들어 매출 이익에 재갈이 물린 인텔 사를 그가 어떻게 이끌어 갈지 궁금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