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산업이 살아야 한국 경제가 산다
  • 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승인 2004.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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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성장·고용 안정의 관건…시장 개방·대형화 유도해야
한국 경제가 갈림길에 서 있다. 제조업 위주 산업 구조에서 탈피해 서비스산업 경쟁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느냐 재도약하느냐가 결정될 것이다. 제조업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성장한 반면 서비스산업은 낙후 상태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재도약을 꾀하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서비스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고부가가치화·대형화·개방에 과감하게 나서야 한다.

제조업은 지금까지 수출·고용·부가가치 창출에서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성장 엔진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제조업에서 갖춘 산업 역량은 정보기술(IT) 산업까지 확대되어 ‘수출 한국’을 이끌어오고 있다. 수출이 늘면 국내 업체들은 투자를 늘리고 고용을 확대한다. 중소기업체로 구성된 부품업체들도 활황을 맞는다. 고용 확대와 중소기업 활성화는 내수 소비를 진작해 호황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수출 증가→투자 확대→고용 창출→소득 증가→내수 호황→투자 확대→수출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깨지고 있다. 수출 기업체들이 투자를 확대하지 않고 고용 창출 능력도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출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소득 양극화와 내수 침체도 극심해지고 있다.
국내 서비스산업 생산성은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 한국 서비스산업 생산성을 100으로 했을 때 미국 228, 일본 200, 독일 187이다. 반면 제조업 노동생산성(한국 100)은 미국 154.4, 일본 108.8, 독일 89.7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 탓에 서비스 수지는 만성 적자를 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서비스 수지는 33억9천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도표 참조). 상품 수지가 1백90억6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한 것과 크게 비교된다.

서비스 수지 가운데 운수 부문은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고 있으나 나머지 수지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유학 연수 비용이 포함된 여행 수지가 20억1천만 달러, 기타 서비스가 23억7천만 달러 적자를 내어 운수 수지 흑자 18억5천만 달러를 모두 까먹고도 적자를 낸 것이다.

항공·해운·건설로 구성된 운수 수지가 흑자를 낸 것은 외국에 개방을 요구할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의료·법률 분야는 갖가지 규제로 경쟁력이 취약해 유학·의료·골프·관광으로 구성된 여행 수지와 컨설팅·특허권료가 포함된 기타 서비스 수지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서비스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46.7%에서 지난해 50.5%로 늘어났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1991년을 정점으로 지난해까지 95만 명이 감소했으나 서비스업 취업자는 5백만명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증가 인원 2백90만명보다 훨씬 많은 규모다. 제조업과 농림어업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양산된 잉여 인력을 서비스업이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또 소득이 늘고 산업 구조가 고도화하면서 서비스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다. 민간소비지출 가운데 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1990년 48.85%에서 2000년 65.1%로 크게 증가했다. 생산과 고용 측면에서 서비스업 비중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아직 낮아 성장 잠재력이 풍부하다. 2001년 기준으로 국내 서비스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에 불과하다(미국 77%, 일본 69%). 고용 비중도 한국(63%)이 미국(79%)과 일본(65%)에 못 미친다.

무역 장벽이 없어지고 지역 별로 자유무역지대가 확대되어 국내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제조업 분야 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남아도는 인력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이 활성화해야 한다. 최희남 재정경제부 정책기획과장은 “서비스산업 활성화와 고부가가치화 없이는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과 고용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서비스산업이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서비스산업의 고급화와 고부가가치화를 이루어야 한다. 서비스산업 고급화를 막는 것은 국민 의식 속에 자리 잡은 고급화에 대한 거부감이다. 교육·의료·보육 분야는 공공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산업이라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공교육비 지출 규모가 GDP 7.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5.5%보다 훨씬 높지만 대학 교육 경쟁력은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 국가 경쟁력 조사 대상 60개 국가 가운데 59위를 차지했다. 의료 서비스는 이윤 추구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질적으로 수준이 낮고 산업으로서 경쟁력이 취약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조사한 보건의료체계 성취도는 전체 1백67개 국가 가운데 58위에 그쳤다. 보육 분야 공급은 수요의 57%밖에 되지 않고 보육 시설 서비스 수준도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서비스 경제(The Service Economy)’라는 보고서에서 ‘대외 개방과 진입 장벽 철폐가 서비스산업 발전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제조업은 개방된 시장 환경에서 전세계 기업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성장했다. 또 항공·해운·건설 분야도 선진국 수준으로 개방되어 있어 국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하지만 교육·의료·법률 분야는 형식적으로 개방되어 있으나 갖가지 규제가 남아 있어 사실상 미개방 상태이다.

해외 여행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시장 보호 장벽은 아무 효과가 없다. 국내 교육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해마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까지 외국으로 떠나는 조기 유학 열풍이 불고 있다. 골프 클럽을 메고 외국으로 나가는 골프 관광객도 급증하는 추세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보는 “골프장을 크게 늘려 골프를 즐기는 이들을 국내 골프장으로 유인하면 외국에서 쓰는 돈이 국내에 남아 고용과 소득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국내 서비스 분야 기업은 고용의 3분의 2를 차지하지만 영세하기 그지없다. 국내 임금근로자 비율은 62.4%로 미국 92.7%, 일본 83.7%와 비교해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자영업자 비율은 28.9%로 매우 높다. 영세 독립 자영업자들은 생산성이 낮은 업태라도 유지하기 위해 대형 자본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고 있다.

정부는 서비스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갖가지 규제를 없애고 시장 개방과 대형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실행하고자 하지만 번번이 넘을 수 없는 장벽에 좌절하고 있다. 서비스산업 고부가가치화를 가로막는 ‘평등 의식’과 눈에 보이는 밥그릇만 챙기고자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업종 이기주의’가 그것이다. 이성용 베인앤캠퍼니 한국 대표는 “한국 대기업의 9% 정도는 지속 성장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은 상당한 위기 의식을 느껴야만 한다. 서비스산업과 같은 중장기 성장 동력을 찾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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