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의 거인들⑤] AOL-타임워너 스티브 케이스 회장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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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가장 싫어한 과목은 컴퓨터. 직원들이 '벽'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늘 무뚝뚝한 표정에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조용한 성격과 소심함. 여기까지만 보면 AOL-타임워너 스티브 케이스 회장은 세계 최대 미디어 제국의 '황제'로 어울리지 않는 인물일지 모른다.

사진설명 ⓒAP연합

반면 그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만사를 제쳐놓을 만큼 강한 집중력을 지녔다. 게다가 그는 '꿈을 먹고 사는' 이상주의자이다. AOL 임직원을 대상으로 심리 검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그는 사상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축가' 기질을 지닌 사나이다. 그와 같은 성격의 소유자는 현실을 현실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이상을 실천하는 장소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비사교성과 이상주의. 이 두 가지 성향을 동시에 갖고 있는 그에게 온라인 공간은 꿈을 펼치기에 적합한 세계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는 언론과 대중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즉 매체와 컨텐츠에 관심이 많았던 것이다.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교 시절 학교 신문 편집장을 맡았고, 대학 시절에는 밴드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가 컴퓨터를 접한 것도 대학 시절이었다. 비록 복잡한 명령어 체계는 혐오했지만, 그는 컴퓨터를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었다. 1980년 봄, 21세이던 그는 한 제조업체에 낸 입사지원서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기술적 발전이 우리의 의사 소통을 바꾸고 결국 삶의 모습을 완전히 변화시키리라고 굳게 확신한다.'

그는 AOL을 설립하며 자신의 믿음을 몸소 실천하는 주역이 되었지만, 경영자로서 그의 이력은 산전수전의 연속이었다. AOL의 전신인 CVC와 퀀텀 사(社)는 마케팅 비용을 아끼려고 '대기업 명성에 빌붙는 바퀴벌레'라는 빈정거림을 들었다. 시도하는 사업마다 족족 실패했다. 온라인 통신 서비스 업체 AOL이 출범한 것은 1989년. 하지만 시장에는 대기업들이 설립한 컴퓨서브와 프로디지가 '터주 대감'으로 버티고 있었다.


'온라인 패권' 놓고 빌 게이츠와 일전 준비


1993년 AOL은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적대적 합병·매수를 당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당시 온라인 서비스 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노리던 빌 게이츠에게 규모는 작지만 유능한 인재들이 똘똘 뭉친 AOL은 매력적인 '먹이감'이었다. 1993년 MS 본사에서 빌 게이츠는 스티브 케이스에게 "자네 회사 주식을 20% 사거나 전부 살 수 있네. 아니면 우리가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 자네를 매장시킬 수 있네"라고 말했다. AOL 인수에 실패하자 1995년 빌 게이츠는 '윈도 95' 출시와 함께 온라인 사업 'MSN'을 시작했다.

그러나 AOL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특유의 공격적인 전략을 승부수 삼아 '넘버 1'로 도약했다. 1993년 7월 AOL은 마케팅 역사에 최대 사건으로 기록될 '공습 작전'을 시행했다. AOL 서비스 프로그램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 2억5천만장을 미국 대륙 전역에 배포했다. 또한 AOL은 재미있는 컨텐츠·대화방·동호회 중심의 '인간적인' 서비스를 강조하며 미국 중산층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AOL의 가장 큰 매력은 고객 지향의 쉽고 편한 서비스이다. 인터넷 붐이 일면서 AOL은 비관론자들로부터 '유료 온라인 서비스 시대는 끝났다'라는 사망 선고를 받았지만 이를 비웃듯 AOL 가입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AOL 유료 가입자는 현재 2천8백만명. '정보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느니 돈 내고 질 좋은 서비스를 찾는 이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앞으로 스티브 케이스는 온라인 세계의 패권을 놓고 빌 게이츠와 '별들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상대와 타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승부처에서 결코 물러난 적이 없는 빌 게이츠는 MS의 인터넷 전략인 '닷넷'에 힘을 싣는 계획을 속속 발표하며 AOL측을 조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온갖 생사의 기로를 넘으며 AOL을 바퀴벌레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회사로 키워냈다고 평가받는 스티브 케이스. 오프라인-온라인을 통합하는 미디어 제국을 꿈꾸는 그에게 MS는 단지 넘어야 할 '벽'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 America Online :
유료 회원 2천8백만명인 세계 최대 온라인 통신 서비스 업체. 지난해 타임워너와 합병하면서 컴퓨터·텔레비전·이동전화 등을 통합한 쌍방향 통신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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