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등치는' 제일은행
  • 런던·김용기 편집위원 ()
  • 승인 2001.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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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의를 일으킨 주식 스톡옵션 부여를 둘러싼 제일은행 호리에 행장의 태도는 '시장 논리'라는 이데올로기에 편승해 공적 금융기관의 경영자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엄청난 공적자금을 자신의 '지갑' 속 돈인 양 사용해 왔고, 또 앞으로도 엄청난 공적자금을 추가로 요청하려고 준비하는 호리에 행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은행은 정부의 '지갑'이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해 왔다. 하지만 호리에 행장은 예금자·주주·채권자 들이 '시장 규율'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공해야 할 경영공시제도 이행을 게을리하거나 위반해 왔다는 점에서 지극히 이중적이다. 그는 지난해 3월 이래 발생한 무수익 여신을 한 차례도 공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스톡옵션이 누구에게 얼마만큼씩 부여되었는지도 아직 공시하지 않고 있다. 2000년 1월 이래 누가 이사로 새로 등재되었고 누가 빠졌는지도 일절 공시하지 않았으며, 은행 내부에서조차 극히 일부만이 알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4월 1일과 2일 〈경향신문〉 〈한겨레〉가 '지난해 제일은행이 임원과 사외이사들에게 부여했다는 스톡옵션의 80% 이상이 호리에 행장에게 부여되었고, 이에 따른 수익은 현재 가치로 추산해도 최소 4백억원이 넘는다'고 보도한 데 대한 제일은행의 태도는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내 준다. 4월3일 사내 방송을 통해 호리에 행장은 '금감위와 예금보험공사에 (스톡옵션에 대한) 기밀 자료를 냈는데, 둘 중 한 곳에서 유출시킨 것 같다. 항의서를 전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사실상 위의 보도 내용을 시인했다. 하지만 이것이 연합뉴스에 보도되어 각 언론에 게재되자 제일은행 홍보실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그 입수 경위를 묻고 그 과정에서 '행장이 (기자와 접촉한 자를) 색출해 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한 '색출 지시' 사실이 다른 경로들을 통해 확인되면서 〈대한매일신보〉가 1단으로 기사를 작성하자 제일은행은 다시 한번 뒤집혔고, 해당 직원은 '행장이 그런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하소연해 해당 기사는 빠졌다고 한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다는 이유만으로 'No라 할 수 있는 은행장'이라고 칭송하는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가 시장 규율을 가로막는 이런 식의 '전제적 비밀 경영'을 가능케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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