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의 거인들⑨] '핸드스프링' 도나 두빈스키 사장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5.0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PDA 출산한 '자유인'


진부한 말이지만, 우리의 사명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핸드스프링 사장 도나 두빈스키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한다. 회장이자 최고 제품 개발자(CPO)인 제프 호킨스와 함께 핸드스프링을 설립한 그녀는 'PDA의 어머니'로 불린다.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 개인 휴대 단말기)는 일정·연락처·메모 등 개인 정보를 관리하는 기본 기능만으로는 전자 수첩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PDA가 PC를 대체할 차세대 컴퓨터로 불리는 이유는 다양한 컨텐츠 때문이다. 게임·전자책과 같은 일상적인 컨텐츠뿐만 아니라 일반 사무용부터 엔지니어링·의학·천문학 등 온갖 분야의 응용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두빈스키 자신은 "나는 몽상가도 아니고 특별한 예지력도 없다"라고 말하지만, 그녀는 첨단 기술의 미래를 읽어내는 뛰어난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딴 그녀는 동기들이 골드먼 삭스·매킨지 등에 입사해 연봉 10만 달러를 받을 때 꿈을 찾아 실리콘밸리로 갔다. 그녀의 첫 직장은 최초로 PC를 개발한 애플 사인데, 연봉은 3만 달러에 불과했다.


두빈스키가 PC에 이어 첨단 기술의 미래를 좌우하리라고 본 것은 다름 아닌 PDA였다. 1992년 그녀는 PDA를 개발하고 있는 제프 호킨스와 만났다. PDA를 보자마자 그것이 차세대 컴퓨터가 될 것이라고 직감한 그녀는 곧 호킨스와 단짝이 되었다. 호킨스는 제품 개발을 담당했고 두빈스키는 애플에서의 경험을 살려 물류와 마케팅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들 두 사람에게는 자금이 충분치 않았다. 제품 개발도 여의치 않았다. 재정난을 이기지 못한 두 사람은 통신장비 업체 US 로보틱스에 회사를 팔기로 결정했다. 대기업인 스리콤이 US 로보틱스를 인수하자 두빈스키와 호킨스는 자연스럽게 대기업 우산 아래 들어갔다. 비록 스리콤은 PDA를 '애들 장난감'처럼 여겼지만 제품 개발비만큼은 충분히 제공했다. 결국 1996년 호킨스는 첫 작품 '팜 파일럿'(팜)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PDA는 애플의 '뉴튼'이지만 컴퓨터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PDA로 팜을 꼽는다. PC의 기능을 그대로 PDA에 이식한 뉴튼과 달리 팜은 '단순함'이라는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팜은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에 전자 수첩만큼 쉽고 편하게 조작할 수 있으면서도 기능은 그보다 훨씬 강력했다. 팜은 출시 첫해 2백만 대가 팔렸는데, 텔레비전·PC 등 인류 역사상 어떤 첨단 기기도 이보다 빠른 속도로 팔려나간 적이 없었다.


팜은 PDA 시장의 90%를 넘게 장악하며 눈부시게 성공했지만, 1998년 두빈스키와 호킨스는 스리콤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은 천성적으로 대기업보다 좀더 작고 자유로운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유인'이었는데, 스리콤이 팜 사업부를 분사하는 것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팜' 퇴사 1년 만에 '팜' 아성 위협


두빈스키와 호킨스는 팜의 성공을 뒤로 하고 스리콤을 나와 핸드스프링을 설립했다. 그리고 1년 뒤 '바이저'를 내며 순식간에 팜의 아성을 위협했다. 어두운 색 일색이었던 팜과 달리 과감한 컬러 케이스를 사용했고, 팜의 매력인 단순함을 유지하면서도 '스프링보드'를 이용해 MP3 플레이어·디지털 카메라 등 다양한 기기를 장착할 수 있어 확장성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바이저는 출시한 지 석달 만에 PDA 시장에서 20% 점유율을 차지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의 PDA용 운영체제 '포켓PC'를 장착한 제품들은 지금까지도 한 자릿수 점유율에 머무르고 있다.


올해 들어 업계 1위인 팜이 매출 부진에 시달리는 반면 핸드스프링은 지난해에 비해 매출액이 대폭 증가하며 경기 침체기에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기업이 왜 혁신적인 제품을 내지 못하는지를 잘 간파한 클레이튼 크리스첸슨의 〈혁신자의 딜레마〉를 애독서로 꼽는 두빈스키. 경제지 〈포춘〉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CEO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녀가 '초심'만 유지한다면 핸드스프링의 앞날은 밝을 것 같다.


■ handspring :

1998년 제프 호킨스와 도나 두빈스키가 설립. PDA시장 점유율 25%로 팜에 이어 업계 2위. 올해 1∼3월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1% 성장해 팜을 위협하고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