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EO, 연봉 얼마나 받나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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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장 1억5천만원 '아시아 하위권'…
일부 스타급은 30억원 넘어


인터넷 경매업체 '옥션'의 이금룡 대표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난 4월 와우북 대표로 자리를 옮긴 최고 재무 책임자(CFO) 신용호 이사의 공백을 아직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옥션이 새 CFO로 원하는 인물은 국내 자금 시장에 밝으면서도 국제 감각을 갖춘 '재무통'. 문제는 유학파에다 외국계 기업 근무 경력이 있는 적임자들은 옥션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보수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금룡 대표의 연봉이 1억5천만원인데 이들이 요구하는 연봉은 그보다 3∼4배나 된다.




헤드헌팅 전문가들에 따르면 쓸 만한 재무 전문가의 '시가'는 최소한 연봉 4억원. 이는 국내 시중 은행장의 평균 기본급 3억5천만원을 웃도는 액수이다. 성과급까지 포함하면 국내 은행장들은 최대 7억∼8억 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는 외국계 은행장 연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외국계 은행에서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해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정부가 한빛은행 중심의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을 뽑을 때의 일이다. 정부는 회장감으로 국제 금융에 정통한 40대 외국계 은행 지점장을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연봉 수준을 맞출 수 없어 결국 '국내파'로 눈을 돌렸다.


최근에는 외국 기업에 비해 한국 기업 경영자들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조사 보고서까지 나왔다. 지난 4월21일 다국적 인사·조직 컨설팅업체 '타워스페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 최고경영자의 평균 연봉은 11만 달러로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뒤질 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도 뒤지는 수준이다(오른쪽 표 참조).


각종 기관이 실시한 설문 조사 및 관계자들에 따르면, 30대 그룹에 속하는 대기업 사장의 연봉은 1억5천만원 선. 그 이하 기업은 규모에 따라 5천만∼8천만 원 정도이다. 벤처 기업 경영자들은 창사 초기에 받은 스톡옵션을 제외하면 대개 중소기업 사장 수준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벤처 기업인 '한글과컴퓨터' 전하진 사장은 올해 연봉으로 8천만원, 새롬기술 오상수 사장은 6천만원을 받는다.


한국전력·한국통신 등 국정감사가 열릴 때마다 '방만한 경영'을 질타받는 공기업 사장들도 책임에 비해 푸대접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자산 64조원으로 재계 2∼3위 규모 공룡 기업인 한국전력의 최수병 사장은 올해 6천5백만원을 받는다. 법인 카드로 업무추진비 3천5백만원을 쓸 수 있다는 것 외에 최사장이 특별히 누리는 혜택은 없다. 자산 규모 23조원인 한국통신을 이끄는 이상철 사장의 연봉은 이보다 좀더 나은 1억6천8백만원이다.


그렇다면 삼성·SK·LG·현대 등 4대 그룹의 경우는 어떨까. 이들 재벌사 내에서도 '잘 나가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 사장들 간에 명암이 엇갈린다. 연봉 수준이 가장 높은 그룹으로는 삼성이 꼽힌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나 진대제 반도체총괄 사장과 같은 '간판급 경영자'들의 경우 지난 3월 스톡옵션으로 받은 10만 주까지 합치면 올해 연봉이 30억원은 넘으리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반면 다른 삼성 계열사 사장들 연봉은 이에 훨씬 못 미치는 3억원 선으로 알려져 있다. SK그룹 손길승 회장이나 SK그룹의 실질적인 주인 최태원 사장, LG그룹 구본무 회장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LG·SK 그룹 사장들의 연봉은 1억7천만∼3억 원 선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그룹은 이들 세 그룹보다 꽤 떨어진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말이다.


오너 체제·국민 정서가 연봉 '걸림돌'


국내 최고경영자들이 책임은 크고 보수는 적은 '저임금 구조'에 시달리는 이유는 아직 최고경영자 시장이 활성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드헌팅 업체 '유니코 써어치' 유순신 대표는 "국내 기업들에서도 최고경영자를 영입해 몇 배 수익이 나면 그만큼 보상하는 시장이 형성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연봉으로 단돈 12원을 받는 대신 스톡옵션으로 30만 주를 받아 '실적으로 모든 것을 보상받겠다'고 선언한 주택은행 김정태 행장이나, 필라 코리아를 키워낸 주역으로 지난해 연봉 24억원을 받은 윤윤수 사장과 같은 경영자가 더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경영자 시장 활성화가 어려운 이유로는 우선 고소득자를 곱지 않은 눈길로 보는 '국민 정서'가 꼽히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내 기업들의 '오너 중심 체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오너들이 전문경영인에게 주는 보수를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오너 체제 특유의 불투명한 경영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특히 경영진의 연봉을 떳떳하게 공개하는 외국 기업과 대조적으로 4대 그룹의 경우 임원 보수와 보수 체계를 절대 비밀에 부친다. 신수식 교수(고려대·경영학과)는 "국내 기업들은 경영자가 거둔 성과를 평가하는 딱 부러지는 기준이 없다. 경영자에게 지급하는 성과급·스톡옵션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보다 오너의 자의적인 판단에 좌우되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헤드헌팅 업체 '탑 컨설팅'의 고강식 대표는 "이익을 내고 그에 따라 보상받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전문 경영인에게 소신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멍석'을 깔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5년 안으로 최고경영자 시장이 급속히 활성화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업 경영이 세계화할수록 각 회사가 국제 감각을 갖춘 유능한 경영자를 영입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에서도 '메이저 리그급' 스타 경영자가 잇달아 배출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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