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 질주 '미스터 현대차'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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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매출액 5조 사상 최대 실적…
독특한 '외교술'도 한몫


지난해 3월 정몽구 회장과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놓고 '왕자의 난'을 벌일 때 두 형제가 세간에 남긴 인상은 정반대였다. 정몽헌 회장이 '약삭빠른 여우'였다면 정몽구 회장은 '무식한 불도저'였다. 이런 시각에는 정몽구 회장의 선 굵은 인상도 한몫 단단히 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최근 현대·기아차가 눈부신 성적을 거두자 정회장에 대한 시각은 180° 바뀌고 있다. 지난 1/4분기 현대차는 매출액 5조5백77억원에 영업이익 5천1백37억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었다. 올해 1∼5월 현대·기아차의 수출 실적은 지난해와 비교해 21%가 늘어난 54만대. 이 결과 현대차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정회장이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도 112% 늘어났다. 10대 그룹 총수 중 올해 들어 주식 재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이가 바로 정회장이다.


정회장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은 그가 겉보기에는 불도저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철저한 성격이라고 전한다. 이계안 사장·정순원 부사장 등 뛰어난 경영자를 발탁해 '사람 보는 눈'도 만만치 않다는 평가다. 정회장이 경영을 총괄하면서 현대차는 재무 관리 부문에서 획기적으로 변신했다. 외국의 선진 기업을 방불케 할 정도로 고도의 금융기법을 동원해 자금을 관리하는데, 이는 정세영 회장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식이다.


'10년 10만 마일 보증제'로 미국에서 인기


4백만 대 생산 능력을 갖춘 '빅6'만 살아 남는다는 세계 자동차 업계의 거센 물결 속에서 정회장은 독특한 '외교술'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다임러-크라이슬러가 현대차 지분 10%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현대와 다임러의 관계는 '종속 관계'가 아닌 '우호적 관계'에 가깝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현대차는 월드카(1000cc 미만 소형차) 사업은 다임러와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상용차 사업은 다임러와 합작으로 진행하고 있다. 대우증권 장충린 애널리스트는 "다임러가 투자한 기업 중 적자를 안 내는 유일한 기업이 현대차다"라고 지적했다. 다임러의 '우산' 밑에 들어간 크라이슬러·미쓰비시가 모두 적자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현대차의 발언권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회장의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미국에서 현대·기아차가 인기를 끈 비결은 업계에서 유례 없는 파격적인 보증 프로그램인 '10년 10만 마일(16만km)' 보증제이다. 중고차가 아닌 신차로 구입한 현대차가 엔진 등 주요 부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10년 동안(주행거리 10만 마일 이내) 무상으로 수리해 주는 이 제도는 훗날 자칫하면 현대차에 엄청난 '독'이 될 수 있다.


수출 물량이 늘어날수록 미국의 통상 압력도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통상 마찰을 피하려면 1980년대 일본 업체들처럼 미국·멕시코 등에 현지 공장을 지어 차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신영증권 조용준 애널리스트는 "현지의 높은 인건비와 비싼 부품 조달 비용을 극복하고 경쟁력 있는 자동차를 만들려면 품질 향상이 과제다"라고 말했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현대차는 르노-삼성차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중형차 시장에서 르노-삼성의 'SM5'는 기아차 옵티마를 누르고 현대차의 턱밑까지 쫓아왔다. 게다가 현재 채권단과 2차 협상을 벌이고 있는 GM이 대우차를 인수할 경우, 현대차의 독점적 지위는 더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왕자의 난'에서 정몽헌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빼앗길 당시 세간에서는 정몽구 회장이 추락하리라고 점쳤지만 그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전문 경영인으로서 정회장의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은 정작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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