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맥주 맛있니? 흰 맥주는 어떠니?
  • 이문환 기자 (lazyfair@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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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맥주 판매량 급증, 다양한 제품 쏟아져…
하이트·OB '시장 키워 나눠 먹기' 마케팅


지난 6월 두산그룹은 OB맥주 지분 45%를 네덜란드계 투자회사 홉스에 매각했다. 이로써 나머지 지분 50%를 가진 벨기에 인터브루 사가 OB맥주의 최대 주주로 떠올랐다. 1998년 OB맥주 지분을 사들여 한국에 진출한 이 회사는 세계 4위 맥주 업체이다. 하이트 대 OB의 '2강 체제'였던 국내 맥주 시장은 이제 한국 회사와 외국계 회사가 벌이는 국제전 양상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이 두 업체가 택한 전략은 '너 죽고 나 살기'식 출혈 경쟁보다 시장을 키워 사이 좋게 나누어 먹자는 '파이 키우기'이다. 주류 시장 70%를 맥주가 차지하는 일본과 달리 한국 주류 시장에서 맥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남짓이어서 한국 맥주 시장은 더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시장 점유율은 하이트가 54%, OB가 46%를 차지하고 있는데, OB측은 해마다 시장 점유율을 1%씩 올려 2004년까지 50% 점유율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더위가 일찍 시작된 올해는 맥주 시장을 넓힐 절호의 기회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IMF 시절 줄였던 마케팅 비용을 조금씩 늘려온 두 맥주 업체도 올 여름부터 다시 마케팅 전략을 활발히 펼 계획이다. 그러나 OB·하이트·카스 세 브랜드가 출혈 경쟁을 벌였던 1990년대 중반과 달리 올 여름 마케팅은 '맥주 문화' 자체를 홍보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7월부터 텔레비전에서 방영을 시작한 'OB 라거' 광고가 그러한 예이다. 30∼40대 직장인을 겨냥한 OB 라거 광고는, 맥주가 직장인들이 프로젝트를 끝마치거나 승진했을 때 축하 파티를 하며 마시는 음료라는 개념을 전달하고 있다. 그밖에 '맥주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인터넷 홈페이지 'www.beer.co.kr'를 개설한 것도 맥주 문화를 널리 보급하자는 전략 중 하나다.


"한국 시장 50년 지배한 라거식 맥주 비중 줄 것"


올해 맥주 시장의 화제는 단연 흑맥주이다. 10년 전 하이트가 출시한 흑맥주 '스타우트'는 1999년까지 연간 판매량이 고작 3만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부산 지역에서 스타우트 판매량이 늘기 시작했다. 이유를 분석해 보니,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흑맥주와 생맥주를 섞은 칵테일이 부산에서도 인기를 끈 것이었다. 스타우트의 2000년 판매량은 50만 상자. 하이트측은 올해 예상 판매량을 100만 상자로 본다. 이를 위해 애인 없는 젊은이들이 짜장면을 먹는 날로 알려진 '블랙 데이'(4월14일)에 흑맥주를 마시는 이벤트를 벌인 하이트측은 현재 콘서트장이나 레스토랑 등에서 시음회를 여는 방법으로 흑맥주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신세계백화점 등 시중 유명 백화점이 고급 수입 맥주 코너를 개설하면서 제품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OB맥주의 경우 아베이 비어(중세 수도원에서 빚은 흑맥주)인 '레페', 흰색 맥주인 '후가든' 등을 수입해 맥주 애호가들의 입맛을 노리고 있다. OB맥주 김준영 상무는 "우리나라 소비자는 지난 50년 동안 라거식 맥주(저온 숙성 과정을 거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의 맥주)만 마셔 왔지만 맥주 시장이 성장할수록 라거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업계가 바라보는 맥주 시장의 본격 성장기는 국민 소득이 만 달러에 도달했을 때부터. 한국보다 인구가 3배 더 많은 일본의 맥주 시장이 한국보다 7∼8배 더 큰 배경도 소득 수준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경제 불황기에는 소주 판매량이 늘고 호황기에는 맥주 판매량이 늘어난다는 속설이 있듯이, 맥주 시장도 한국 경제의 미래와 운명을 같이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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