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날벼락'에 '돈벼락' 맞은 기업들
  • 신호철 기자 (eco@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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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 · 방탄복 제조업체 수출 '불티'…보안장비·DVR도 호황
10월17일 음경성씨(50)는 서울 종로 3가에 자리 잡은 삼공물산 대리점에서 44만원을 주고 방독면 5개를 샀다.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동생 가족에게 보내주기 위해서다. "미국에서 방독면을 구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어 걱정되었다."




세계 경제가 침체했지만 뉴욕세계무역센터 붕괴 이후 방독면 생산 업체는 웃고 있다. 삼공물산 황규호 마케팅 과장은 "생산량을 전보다 50% 이상 늘렸지만 수출 수요가 엄청나 목표량을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방독면 제조사인 산청기업 서광만 전무는 "그 전까지 미국에 수출해 본 적이 없었는데 10월에만 벌써 6천 개 이상 수출했다"라고 말했다.


군수품 판매업체 이글코리아는 방탄복 수출 특수(特需)를 맞고 있다. 국내 경호업체와 파키스탄 등 외국 바이어들로부터 구매 문의가 쏟아졌다. 이 회사 방인경 차장은 "테러 전보다 상담 건수가 40% 늘고 수주액은 3배가 늘었다"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방독면이나 방탄복을 수출할 수 있는 것은 남북 대치 상황 때문이다. 한 방위산업 관계자는, 한국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나라라는 이유로 한국산을 찾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미사일·탱크 등 중장비 무기는 선진국을 따라갈 수 없지만, 한국산 보조 군장비는 세계적 수준이다.


방독면 못지 않게 보안장비업체도 테러 수혜 업종이다. 비전인터랙티브는 얼굴 판독을 이용한 출입 통제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테러 사태 이후 삼보정보통신·에스원 등 기업과 보안회사에서 주문이 밀려오고 있다. 대표이사 강홍렬씨는 "신생 업체여서 여름까지만 해도 올해 수출 물량을 1억원대로 예상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20억원은 무난할 것으로 본다."


"오랫동안 한 우물 파며 틈새 시장 관리한 덕"


디지털 감시 카메라 DVR를 제작하는 3R도 행복한 곳이다. 주요 시설 경비가 강화되면서 수요가 늘어나 생산 공장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 미국 뉴저지 현지 법인에서는 장비 점검 문의가 폭주해 연구원을 10명 파견했다.


모건 스탠리 은행은 세계무역센터에서 25개 층을 사용하다 변을 당했지만 주요 정보를 필라델피아 정보센터에 미리 옮겨 둔 덕분에 피해 규모를 줄였다. 이 사례가 알려지면서 재해복구시스템 업체들에게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데이터 저장관리 업체 넷컴스토리지 직원은, 그전까지는 고객에게 데이터 백업의 중요성을 일일이 설명했지만 지금은 '테러' 한마디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고 말했다. 데이터보안업체 정소프트 임병호 과장은 "올해 매출액의 절반 정도는 테러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제주도 관광산업에도 특수가 있다. 비행기 납치를 우려한 국내 신혼 여행객들이 해외 대신 제주도로 발길을 옮기기 때문이다. 제주도 관광협회 강승철 조사개발과장은 "홍콩·하와이·싱가포르는 테러 이후 지역 경제가 흔들릴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하지만 제주도 관광객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늘어났다"라고 말했다. 도서업계에도 이득을 본 곳이 있다. 〈이슬람〉(청하출판사) 등 아랍을 소개한 도서는 베스트 셀러 목록 상위에 오르며 출판사를 기쁘게 하고 있다.


대형 참사를 계기로 특수를 누리는 기업들은 일면 운이 좋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오랫동안 전문성을 키우며 틈새 시장을 관리한 보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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