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가 고래를 어떻게 삼켰을까
  • 이문환 (lazyfair@sisapress.com)
  • 승인 2002.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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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신부국건업, 부산 다대 택지 827억에 매입

'부산판 수서 비리 사건’으로 불리는 부산 다대 지구 택지 전환
특혜 의혹 사건은 1998년에 터졌다. 이 사건에서 정치권에 로비를 벌인
장본인으로 지목된 이영복 전 동방주택 사장이 검찰 수사망을 피해 도주한
이후 13만3천평에 달하는 다대 택지는 줄곧 버려진 땅으로 남아 있었다.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대 택지를 담보로 잡고 동방주택에 1천30억원을 제공한 대한주택보증(당시
주택사업공제조합)은 지난해 이 땅을 법원 경매에 매물로 내놓았지만
1차와 2차 경매는 유찰되었다. 유찰이 거듭되면서 1차 경매에서 1천1백77억원에
달했던 경매가는 3차 경매를 앞두고 5백77억원으로 추락했다. 그러자
대한주택보증은 지난해 9월 열기로 했던 3차 경매를 11월로 미루었다가
다시 올 1월23일로 연기했다.


그러나 경매 예정일을 하루 앞둔 1월22일 신생 건설업체 신부국건업이
이 땅을 경매 가격보다 훨씬 높은 8백27억원에 사들이기로 해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11월에 설립된 신부국건업은 서울 압구정동 ㄱ빌딩
5층에 작은 사무실을 두고 있는 자본금 2억원짜리 회사. 토지를 확보하고
시공사를 선정해 공사를 맡기는 시행업체인 이 회사는 한때 일본의 한
부동산·IT(정보기술) 업체가 1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회사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신부국건업에 따르면, 100억원은
투자받은 것이 아니라 빌린 것이다.


설립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부국건업은 미심쩍은 데가 많은
회사다. 우선 건설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8백억원이 넘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시행사는 국내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문데, 신부국건업은
아직 ‘신출내기’ 회사이다. 그래서 대한주택보증이 경매를 포기하고
이 회사에 수의 계약을 통해 매각한 것을 두고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들도
있다. 과연 이 회사가 그 땅을 살 능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일단 대한주택보증과 수의 계약을 맺음으로써 신부국건업은 한번에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야 하는 일은 피했다. 경매로 산다면 인수 대금을
일시불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신부국건업 관계자는 “앞으로 들어갈
사업 비용 일부는 일본에서 추가로 자금 차입을 할 예정이다. 국내 금융기관·건설사
등과 컨소시엄도 이룰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신생 회사가 국내에서
‘돈줄’을 얼마나 끌어올지는 알 수 없다. 지난해 말부터 이 회사와
토지 매각 협상을 벌였던 대한주택보증측은 계약이 깨질 것을 대비해
매각 대금의 10%인 82억원을 받아두었다고 밝혔다.


‘로비 주인공’ 이영복 전 동방주택 사장 관련설


택지 개발에는 걸림돌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다대 지구는 부산에서도
‘미니 신도시’ 개념으로 개발되는 곳이어서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다. 진입로 등 기반 시설을 새로 깔아야 하므로 상당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지역 환경단체와 인근 주민들의 반발도 심하다. 무엇보다도
큰 어려움은 다대 택지에 얽힌 정치적인 문제다. 부산 지역에서 다대
지구 택지 전환 의혹은 선거철마다 정치권 인사들로부터 제기되는 단골
메뉴이다. 다대 택지 인수에 건설사들이 ‘입질’만 하고 좀처럼 나서지
않은 데도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다. 자칫하면 땅을 사놓고서도
본격적으로 사업에 착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부산 현지에서는 신부국건업과 이영복 전 동방주택 사장의 관련설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19일에 정치권 로비 의혹의 중심
인물인 이씨는 부산지검에 자진 출두했는데, 2년 넘게 도피 생활을 하던
그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산의
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해 여름부터 자수할 뜻을 밝혀 왔다.
이씨는 검찰측에 불구속 수사가 가능하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지만 검찰은
그런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며 빨리 들어오라고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부국건업과 이씨의 관련설을 주장하는 이들은 이씨가 검찰에 출두하기
전에 물밑에서 택지 매각과 관련한 사전 정지 작업을 모두 마친 것으로
보고 있다. 즉 신부국건업은 이씨가 내세운 제3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부산 건설업계 관계자들 중에는 대한주택보증이 3차 경매일을 두
차례나 연기한 것도 이씨의 물밑 작업을 배려한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11월에 부산 지역 ㅇ건설이 땅을 사겠다고 밝혔는데도 경매를
연기한 것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대한주택보증 관계자는 “경매가가
대책 없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경매를 연기하는 것이 유리하니까 그렇게
한 것뿐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신부국건업과의 계약
내용에 대해서 “국정감사 요구가 들어온다면 모를까 절대 밝힐 수 없다”라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일부에서는 신부국건업과 부산 출신 현역 국회의원인 ㄱ씨와의 관련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신부국건업의 자금 출처는 일본인데, ㄱ의원은 일본에
지인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에 3차 경매가 또다시 연기되고 며칠이 지난 뒤 ㄱ의원은
이 지역 건설업체 중 유일하게 경매에 참가할 뜻을 보였던 ㅇ건설에
공동으로 땅을 개발하자고 제의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ㄱ의원은 “외국인
투자자 중에 부산에서 임대 주택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알아본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신부국건업은 앞으로 다대 택지에 고급 아파트 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문제는 이 회사를 지원하고 있다는 일본 회사의 정체. 신부국건업 이광진
사업본부장은 “아직은 시기가 아니다. 시공사를 정하고 본격적으로
홍보할 때가 되면 그 때 모든 것을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다대 택지를
둘러싼 의혹은 새로운 땅 임자가 나선 뒤에도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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