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 문턱에 선 증시 월드컵 날개 다나
  • 김희석(이데일리 · 증권부) ()
  • 승인 2002.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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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경기 회복이 관건…공격형 펀드 ‘유망’



"마치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을 보는 것 같다.” 주식 시장을 지켜 보아 온 한 증권맨의 말이다. 월드컵 16강 진출 여부에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주식 시장의 눈길은 종합주가지수가 1000 포인트를 넘을 것인가에 쏠려 있다. 국내 주식 시장은 평균 4년을 주기로 1000 선에 도전해 왔다. 한동안 지수가 1000 선 위에서 놀기는 했지만 안착하는 데는 늘 실패했다. 더구나 1000 선에 올랐다가 떨어질 때마다 적지 않은 피해를 남겼다. 16강 진출의 기대가 사라졌을 때 찾아올 공허감처럼.


한국 증시가 1000 포인트를 넘은 것은 크게 세 차례다. 최초로 1000 고지를 밟은 때는 1989년 3월31일. 종합주가지수가 1980년 1월4일을 기준점(100)으로 삼고 있으니 딱 10년 만에 주식 시장이 10배 성장한 셈이었다. 1989년의 1000 선은 그 동안 양적 성장 위주로 달려온 한국 경제의 정점이었다. 3저로 불린 대외 환경도 주가가 1000 선에 도달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렇지만 1000 선은 나흘 천하로 끝났다.


이 때의 1000 선은 순수하게 ‘한국의 힘’으로 해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외국인에게 주식 시장이 개방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사상 초유의 조처인 발권력을 동원한 증시 부양책에도 지수 1000 선은 난공불락이었다.


구조적 한계인가, 도약 직전의 조정인가


주가 1000 선 공략은 경기 사이클을 타게 되었다. 특히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반도체 경기가 주식 시장의 최대 변수로 등장했다. 다시 1000 선이 찾아온 것은 5년이 흐른 뒤였다. 오래 기다린 만큼 1000 선에 머무른 기간도 길었다. 1994년 9월 9일부터 1995년 1월3일까지 거래일 기준 86일 동안 1000 선에서 춤을 추었다. 그 다음에 다시 1000 포인트 고지에 오른 것은 IMF 이후 코스닥 바람이 불던 1999년 7월7일이었다. 진통도 만만치 않아 800선 아래로 되밀리기도 했지만, 1999년 말~ 2000년 초에 정점을 맞았다.


1980년대 말 이후 한국 증시는 500∼1000 선의 박스권에서 움직였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10년 이상 유지해온 장기 박스권을 깨고 이제는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까. 최근 주식 시장이 900 선을 돌파한 뒤 주춤하고 있는 것은 구조적인 한계인가, 아니면 도약 직전의 조정인가.


주식 시장 주변 여건을 과거와 비교해 보자. 표에서 알 수 있듯이 GDP 대비 시가총액은 과거보다 높지 않다. 또 시중자금 대비 시가총액은 과거에 비해 크게 낮다. 금리 수준이나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 영향력도 과거에 비해 훨씬 우호적이다.


가장 대표적 비교 도구인 주가수익비율(PER)과 에바에비타(기업의 가치가 영업 활동을 통한 이익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표)를 통해서 지난 10년 간을 보면 올해 한국 주식 시장의 적정 주가는 800선에 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는 최근 질적으로 발전해, 오히려 시장이 저평가된 결과가 되었다.


관건은 한국 시장 저평가가 얼마나 해소될 수 있느냐이다. 미국·영국·싱가포르·타이완·홍콩 등 한국과 비교할 만한 주식 시장의 평균 주가수익비율은 2.2배,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1.7%이다. 한국 주식 시장의 주가수익비율과 자기자본이익률은 1.2배와 11.1%로 크게 저평가되어 있다.
이번 1000 선 도전이 과거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구조 조정’에 있다. 과거 국내 증시가 1000 선에 도전했을 때에는 구조 조정이 없었다. 외환 위기 이후 구조 조정 결과가 양호한 편이고, 한국 기업의 수익성과 효율성도 개선되고 있다. 업종 대표 기업들의 수익성과 효율성은 1990~1997년 평균을 웃돈다. 단순히 매출 규모가 커진 데 그치지 않고 수익을 효율적으로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 조정에 대한 외부 평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특히 금융 부문에 대한 평가는 외환 위기를 경험한 국가나 구조 조정이 난관에 직면한 국가들과 큰 대조를 보이고 있다. 가장 시의성 있는 잣대인 각국의 금융업종 주가로 평가해 보면, 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 등에 비해 한국 금융업종의 주가는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또 일본·타이완·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는 지금까지 금융 구조 조정이 부진해서 경제와 시장이 발목을 잡혀 있다.


한국 경제가 다양한 산업 분포를 갖추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외국인이 다양한 업종에 투자할 수 있고, 특정 업종에 편중된 투자에서 오는 위험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자가는 지역과 시장뿐만 아니라 업종별 포트폴리오 비중을 구성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과 비금융주, 경기 민감주와 가치주, 정보 기술(IT)과 전통 산업 등으로 위험을 고루 분산할 수 있는 조건을 갖고 있다.





하반기에는 강세장 펼쳐질 듯


투자 위험도가 얼마나 줄어들 수 있을지, 국내 기업의 주가가 어느 수준이 적정한지는 나중에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내 주식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할 계기는 마련되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 중에 1000 선을 돌파할 것이고, 하반기에는 모든 고점을 넘어서는 강세장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종합주가지수가 900선을 넘어선 뒤 외국인들이 차익 실현에 주력하고, 지수 또한 큰 폭으로 조정되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지난해 말 이후 국내 주식 시장이 강세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경기 호전에 대한 기대감과 내수 경기 활황 덕분이었다. 주식 시장이 1000 선을 앞두고 주춤거리는 것은 내수 경기를 통한 주가 상승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본다면 수출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1000 선에 안착하기가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따라서 2분기가 중요한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 경기 회복이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경기가 회복되면 국내 주식 시장은 탄력을 받을 수 있고 1000 선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현시점에서 포트폴리오 재편이 필요하다. 즉, 이제까지 상승을 주도했던 내수주보다는 수출 비중이 높은 종목으로 갈아타는 것이다. 간접 투자에서도 안정형보다는 공격형에 주목해야 할 때다. 바야흐로 2분기는 국내 주식 시장이 질적으로 달라질 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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