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풍 든 삼성 “부자 몸조심!”
  • 안은주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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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부문 최고 실적 내고도 ‘긴장 해이’ 경계령…“5~10년 뒤 농사 준비”
삼성그룹은 최근 유례 없는 경영 실적을 올리고도 축하연을 흐드러지게 벌이지 못하고 있다. 샴페인을 터뜨리기는커녕 오히려 ‘조심 또 조심’ 하는 분위기이다.





삼성그룹 고위 관계자는 “계열사 사장단은 이미 약속한 언론 인터뷰도 취소하고, 잘 나간다는 인상을 심어줄 만한 말이나 행동은 가급적 삼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 계열사들은 기업 성과를 알리는 기업 설명회도 줄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 1분기 9조9천억원 매출에 1조9천억원 순이익이라는 창사 이래 최고 영업 실적을 내고도, 이를 발표하는 자리에서조차 말을 아꼈다. 경영 성과만 발표하고, 이런 영업 실적이 지니는 의미나 한국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 등에 대해서는 자랑하지 않았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이미 4월 초 월례 조회 때 “경기가 회복되고 실적이 호전됨에 따라 기강이 해이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3월 말 이학수 구조조정본부장을 통해 삼성 계열사 사장단에 ‘지금 잘 나간다고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 뒤에 나타난 것이다. 이회장은 ‘일부 임직원이 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겼다면서 기뻐한다’는 보고를 들으며 표정이 굳어졌고, 그 뒤에 이같은 특별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회장은 외환 위기 이후 ‘한국에는 삼성밖에 없다’는 말이 나돌며 주목되는 상황에서 자칫 들떠 있다가는 집중 공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 위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 초 일본 언론의 인터뷰를 거절하는 등 이회장 스스로 대외 활동을 일절 삼가면서 ‘지금은 삼성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지만 잘못했을 때는 질시하고 질투하는 분위기 때문에 사회적 뭇매를 맞을 수도 있다’라고 그룹 전체에 경고했다.


이회장이 경고한 뒤 삼성 계열사 경영진은 대외 활동을 자제하고, ‘5년, 10년 뒤 뭘 먹고 살 것인가 준비하라’는 이회장의 주문에 화답하기 위한 ‘준비 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는 최근 삼성그룹 계열사 별로 세계 1위 품목과의 차이를 분석하고, 이를 따라잡기 위한 개선안을 마련해 4월 말까지 구조조정본부에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임원들은 이건희 회장이 권한 <벼랑 끝에 선 호랑이>(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출판부)라는 책도 열심히 읽고 있다. 이회장은 중국 장쩌민 주석이 권좌에 오른 역정, 주변 정치 엘리트와의 관계 등을 분석한 이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삼성이 중국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한 것으로 알려졌다.


“봉건적 지배 구조는 그대로” 비판도


특히 전자 계열사들은 지난 4월19∼20일 최고경영자 합숙 워크숍에서 세계 1등 제품과 자사 제품을 비교하며 세계 일류 상품화 전략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금융 계열사 6개사 사장단도 5월 중순에 회사 별로 10년 후 사업 아이템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가질 계획이다.


삼성의 이런 변화에 대해 경제계나 학계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다. 김광두 교수(서강대·경제학)는 “아무리 삼성이라 해도 3년만 흐트러지면 망가질 수 있다. ‘까불지 말라’는 이회장의 경고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위기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회장이 경고 메시지를 전달한 방식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김주영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대주주가 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좋지만, 비공식 경로로 제왕처럼 한마디 툭 던지는 것은 삼성의 시스템이 아직도 봉건적이라는 것을 시사한다”라고 말했다. 구조조정본부가 아니라 각 회사 이사회를 통해 공식으로 말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도 최근 삼성 기사를 다루면서 ‘사업은 세계 일류이지만 지배 구조는 19세기 수준’이라고 비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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