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지분 이동’ 이유도 제각각
  • 신호철 기자 (eco@sisapress.com)
  • 승인 2002.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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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구도 확립 · 경영권 방어 등 ··· 이재현 회장은 '자의반 타의반' 증식 포기



대주주가 살찌는 시절이다. 이재용 상무보를 비롯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자녀들이 SDS 신주 인수권을 행사한 것이 올해 2월25일이었다. 이들은 시가 4천억원에 해당하는 주식 2백9만1천주를 받았다. 3월26일에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주)SK 주식 6백46만주를 샀다. 최회장은 워커힐 주식 3백25만주를 SK C&C에 넘기는 대신 SK C&C가 보유하고 있던 (주)SK 주식을 받았다. 연초에는 롯데 신격호 회장이 롯데제과 지분을 자녀에게 양도한 사실이 알려졌다.



2, 3세 대주주의 지분이 늘어나는 이유는 그룹마다 제각각이다. 삼성의 경우는 이건희 회장에게서 자녀들로 이어지는 상속 작업의 완성이다. SK 최태원 회장은 과거 SK C&C를 통해 SK그룹을 간접 지배하려는 구도를 직접 (주)SK를 지배하는 방식으로 바꾸려는 듯하다.



공통적인 배경도 있다. ‘정권 공백기’를 이용한 타이밍 작전이다. 한경연과 같은 전경련 산하 연구소가 ‘국회의원 리콜제’ 등을 주장하면서 정치권을 향해 맹공하는 것처럼, 이 때를 놓치면 안된다는 재계의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1997년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바뀌던 때 삼성그룹은 이재용씨 승계 작업에 들어간 바 있다.



최근 증시에 외국인 큰손이 많아지면서 대주주들이 지분 보유에 위협을 느끼는 것도 한 이유다. 과거와 달리 외국계 큰손들의 합병 및 매수(M&A) 위협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록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대주주들이 경영권 방어에 무심할 수 없게 만든 배경이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침체했던 경기가 살아나면서 거래 여건이 좋아진 것도 큰 원인이다.



이런 ‘대주주 지분 늘리기’ 유행과 달리 제일제당 이재현 회장은 지분 증식을 포기해 화제가 되었다. 그가 지난 4월26일 시가 천억원에 해당하는 신주인수권부 사채(BW) 6백만2천여 주를 소각한다고 발표하자 언론에서는 ‘아름다운 포기’라고 치켜세웠다. 덕분에 그가 2001년 3월부터 7월까지 네 차례에 걸쳐 신주인수권 16억원을 행사했다는 사실은 덮이는 분위기다. 그 역시 이미 ‘대주주 지분 늘리기’ 작업에서 본전 이상을 거둔 뒤였다.



최근 이회장의 ‘용단’과 관련해 자세한 내막이 밝혀졌다. 참여연대 관계자에 따르면, 4월19일 참여연대와 밀접한 관계인 좋은기업지배연구소의 보고서 한편이 회장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제일제당 신주인수권부 사채 발행을 문제 삼은 리포트 작성을 전후해 참여연대는 이재현 회장측과 몇차례 교감을 가졌다.


참여연대는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소각하는 것만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는 조언을 이회장에게 전했다. 급기야 4월25일 이재현 회장 비서실장이 참여연대를 직접 방문해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소각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매듭 짓기로 했다. 다음날 오전 10시께 제일제당은 신주인수권부 사채 소각 결정을 발표했고, 10시30분에 참여연대는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참여연대는 주주대표소송으로 갈 경우 승산이 높다고 계산했다. 이재현 회장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설사 이재현 회장이 참여연대와의 소송을 피하기 위해 신주인수권부 사채를 매각했다 하더라도, 그의 용단의 가치가 퇴색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민단체의 지적을 대주주가 받아들인 최초의 권리 포기 사례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일제당과 접촉한 한 인사는 “요즘 이회장은 다른 회장들로부터 마뜩찮은 시선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에 ‘밀렸다’는 이유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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