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의 적 ‘부익부 빈익빈’
  • 안은주·신호철 기자 (anjoo@sisapress.com)
  • 승인 2002.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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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임시직 노동자 등 ‘소외 계층’ 박탈감 심각
우리은행 이순우 대리(31)는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 아침 저녁으로 중국어 학원에 다녔지만 따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토요일 하루를 온전히 중국어 공부에만 매달릴 수 있게 되었다. 가끔은 주말을 이용해 국내 여행을 하고, 해외 여행도 욕심 내볼 계획이다. 서울은행 마라톤 동호회 회장인 허용우 차장(40)은 “이제 토요일 아침에 동호회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라고 기뻐했다.




그러나 중소기업 규모 화학 공장에 다니는 윤현식씨(38)에게 주5일 근무는 먼 나라 이야기이다. 공장이 1년 내내 쉬지 않고 돌아가는 터라 토요일은커녕 일요일에 쉬는 적도 드물다. 교대 인원을 늘리려면 인건비가 더 들기 때문에 가뜩이나 빠듯한 형편에 주5일 근무는 엄두도 못 낸다는 회사측 설명을 듣고 윤씨는 한숨만 내쉬었다. 윤씨는 “숨 돌릴 틈 없이 밤이나 낮이나 공장에 처박혀 일하는 우리들이야말로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주5일 근무는 고사하고, 월급이나 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라고 말했다.


7월부터 ‘주5일 혁명’이 시작된다. 은행권이 7월부터 주5일 근무제에 돌입하기로 선언한 데 이어 해태제과와 KBS도 주5일 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 증권·보험·카드 등 제2 금융권의 주5일 근무제 협상도 활기를 띨 전망이다. 올 2월 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22.5%가 이미 자율적으로 토요휴무제를 실시하고 있고, 15.8%에서 앞으로 토요휴무제를 실시할 계획이다. 주5일 근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주5일 근무제가 잘 정착하면 생산성을 높이고 내수를 증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근로시간 단축의 경제사회적 효과’ 연구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면 고용이 창출되고 잠재성장률이 증가하며, 임금 인상 효과가 일어난다(표 참조).


근로자 처지에서도 늘어난 여가만큼 충분히 쉬거나 자기 계발을 할 수 있어서 얻는 이익이 크다. 주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삼성테스코 같은 기업에서는 이같은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딸린 기사 참조).


문제는 노사정위원회가 합의점을 못 찾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일정한 지침 없이 사업장 별로 형편에 따라 주5일 근무제를 추진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하게 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데에 있다. 업종과 기업의 형편에 따라 일부에서만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주5일 근무제 수혜자와 소외자 사이의 간극은 더 뚜렷해질 수밖에 없다. 휴먼컨설팅 이진희 부장은 “이런 추세라면 금융업이나 대기업 등 일부 직종에 종사하는 근로자만 근로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정작 휴식이 꼭 필요한 생산직 종사자들은 상대적 박탈감만 더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금융권이 남보다 서둘러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할 수 있는 까닭은 토요일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회사나 직원 어느 편도 크게 손해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금융산업의 경우 주5일 근무제가 도입되면 경비가 연간 약 1천2백억원 절감된다. 이 비용을 이용해 은행 자동화에 필요한 추가 설비나 인력을 충당하면 회사측도 위험 부담을 덜 수 있다.


형편이 넉넉한 대기업의 경우에도, 협상력이 강한 노조가 금융권의 주5일 근무제를 예로 들며 사측을 압박하면 주5일 근무제가 빠르게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 직원들은 주5일 근무제의 혜택을 누린 대가로 생산성을 올리고, 그 열매는 다시 회사의 이윤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정규직 줄이고 일용직·임시직 늘릴 듯


하지만 제조업 위주의 중소 영세 사업장은 처지가 다르다. 제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에서는 근로 시간을 단축하면 비용 절감 효과를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인력 확보를 비롯한 추가 비용 부담이 크다. 생산직이 많고, 근속 기간이 짧으며 통상 임금 비중이 큰 업종일수록 추가 임금 부담이 크다. 특히 1년 내내 가동해야 하는 장치 산업의 경우 공장을 3조3교대에서 4조3교대로 운영해야 하므로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가 전면 실시되면 기업들의 추가 부담 규모가 연간 최소 15조원이 넘을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래서 제조업체들은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 생산직 부문에서 정규직 인원을 줄이는 대신 일용직·임시직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강구하려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종업원 10인 이상 전국 1천4백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근무 시간 단축에 따른 인건비 상승을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채용하거나 외부 용역 또는 하청을 늘리겠다는 기업이 74.8%나 되었다. 이에 비해 정규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기업은 13.3%에 불과했다.




부담이 크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지 않으면 가뜩이나 좋은 인력을 구하기 힘든 실정에서 중소기업의 인력 확보는 더욱 더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소기업은 악순환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악순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가 세제나 금융 지원을 통해 주5일 근무제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또 임금 보전이나 휴가 폐지에 대한 일정한 기준 없이 단위 사업장 별로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개인 간의 부익부 빈익빈도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사무금융연맹 김금숙 국장은 “일정한 기준 없이 주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 대기업 직원이나 여유가 있는 사람, 정규직 근로자 등이 수혜자가 되지만 그 반대층은 소외감이 더 커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여가 시간이 늘면 지출도 커진다. 금융권의 주5일 근무제는 엄밀하게 따지면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라 변형근로제이기 때문에 근로자는 3% 가량 임금이 삭감된다. 따라서 경제 사정이 넉넉한 사람은 늘어난 여가 시간만큼 휴식이나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주말용 직업을 찾아 나설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에 다니는 강 아무개씨(28)는 주말에는 인터넷 방송에서 디스크자키로 일한다. 주말에 몇 시간 일하면 한 달에 50만∼60만 원을 번다. 강씨는 “평일에는 광고 회사에 다니고, 토·일요일에는 벤처 회사 홍보 일을 하는 친구도 있다”라고 말했다.




여가를 활용하는 데 익숙한 젊은층과 달리 평생 일만 해온 40, 50대는 ‘노는 법’을 몰라 주5일 근무제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삼성테스코 문한성 부장(49)은 “우리 세대는 일하는 것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5일 근무제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쉬는 날에도 회사에 나가 일했다”라고 말했다. 주5일 근무제를 찬성하는 사람이 20, 30대에 비해 40, 50대가 적은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표 참조).


주5일 근무제 혁명이 코앞에 닥쳐왔지만, 새로운 환경에 필요한 각종 인프라는 미미하다. 국민은행 염기종 조직실장은 “주말에 경제적으로 쉴 수 있는 인프라가 아직은 많지 않다. 그래서 은행이 소유한 연수원을 휴양지나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으면 주5일 근무제 효과를 제대로 거둘 수 없을 뿐 아니라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인프라와 관광산업의 경쟁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관광객이 해외로만 빠져 나가 고용 창출 효과가 반감되고 관광 수지 적자가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주5일 근무제를 겨냥한 신종 사업과 각종 마케팅 전략이 나오고 있지만 그 움직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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