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서 더 잘해요”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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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가 금녀의 벽 깬 김정숙·민미숙씨



김정숙씨(31·외환코메르쯔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부 과장)는 국내 최초의 여성 채권 펀드매니저다. 김씨는 채권에 담긴 어렵고 복잡한 수학적 매력에 묘한 도전 의식이 발동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금융기관의 벽은 높기만 했다. 투자신탁 회사에 입사해 채권 운용 전문가 과정에 지원한 김씨는 모든 시험에서 1등을 했다. 하지만 남자 동기들이 지원한 분야로 진출할 때 김씨는 채권 업무가 아닌 법인 영업에 나서야 했다.


“펀드매니저라는 자리는 시험이 아니라 남자 상사들의 검증과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펀드매니저 발령은 전적으로 회사 몫이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좌절은 김씨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다. 그녀는 경제 서적을 탐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 펀드매니저로 가는 길을 닦았다. 그리고 1999년 드디어 채권 펀드매니저가 될 수 있었다. 여성 최초라는 부담감이 컸다.
김씨는 펀드매니저 분야에 관심은 있지만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그녀는 여성 전용 상품인 ‘우먼파워 투자신탁’을 만들었다. 금융권에 여성 전용 상품이 나온 적은 여러 차례 있지만 여성 펀드매니저가 직접 만들어 운용하는 상품은 처음이었다. 대박이었다. 펀드 규모는 2조원까지 불어났고, 수익률도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상을 휩쓸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상관과 동료들도 시장의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치켜세웠다.
김씨는 펀드매니저가 여성에게 더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추천한다. 세심하고 꼼꼼한 일 처리가 필수인 데다, 여성은 감각이 뛰어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유연한 사고를 가져 투명한 운용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민미숙씨(40·대한투자신탁 압구정역지점장)는 필드를 누비는 투신사 유일의 여성 지점장이다. 투신사 지점장은 고객들로부터 돈을 직접 끌어내는 자리여서, 지금까지 여성들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 ‘금녀 구역’으로 통했다. 하지만 민씨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을 살려 지점장에 오른 지 불과 1년 만에 지점을 고객관리 최우수 영업점으로 키워냈다. 봄이 되면 화분을, 여름이면 수박을 들고 고객들을 직접 찾아 나선 결실이었다.


자금 운용 정보 세심하게 챙겨줘


민씨가 1980년 대한투자신탁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여직원은 남자 직원과 구조적으로 다른 길을 걸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우선 급여 체계부터 달랐다. 또 여직원은 결혼하면 바로 사직해야 했다. 승진해 관리자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투신사에 남녀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자 민씨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사내 최초로 지점장이 되자 남자들과 경쟁하기보다는 여성 특유의 장점을 살리는 작전을 구사했다. ‘룸살롱 접대’‘접대 골프’ 등은 딱 부러지게 못한다고 하는 대신 고객에게 자금 운용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세심하게 챙겨주고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민씨는 “여직원이 일에 대한 적극성과 책임감이 부족하다는 것도 일부는 사실이다. 공부만 하는 여직원도 많은데, 동료들과 화합하지 못하고 자격증만 있는 사람은 고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없다”라고 말했다. 후배 직원들이 이런 단점만 고친다면 금융기관이야말로 여성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일터라고 민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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