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선수 늙었는데 유망주는 없고…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2.08.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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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자동차 등 5대 주력 수출품 노쇠화 심각
한때 날렸던 주전 선수들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유망주는 아직 없다. 앞서 가는 강팀들을 따라잡기는 힘이 부치고 쫓아오는 약팀들은 하루가 다르게 기량이 급상승하고 있다.




지금 한국 수출 산업이 딱 그런 처지다. 한국무역협회 최용민 수석연구원은 한국의 수출품이 늙어가고 있다며 수출 품목이 줄고 유망 상품은 나타나지 않는 현실을 걱정했다. 주력 수출 상품(한국 수출액의 0.1%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 3백30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백83개 품목의 수출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수출 상품의 ‘조로 현상’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국산 제품이 해외에서 통하는 평균 수명은 6.3년. 선진국에 비해 2분의 1도 안된다. 수명이 3년 이하인 단명 품목도 1백23개(36.7%)에 달한다.



핵심 기술 외국에 의존해 성장에 한계



수출 효자였던 의류와 신발 산업은 사양화한 지 오래이고, 반도체·컴퓨터·자동차·휴대 전화·선박 등 5대 주력 수출품은 이미 정점에 도달했거나 쇠락 기미가 완연하다.
1995년부터 한국 수출을 주도해온 반도체의 기둥은 D램이다. 우리 기업들은 이 기둥에 지나치게 의존하다가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비메모리 분야를 놓치고 말았다. 한국은 비메모리 분야에서 1%대 점유에 그치고 있다. D램은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해 한국 경제의 불안정 요인이 되곤 한다. ‘D램 편식’이 한국 반도체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운 것이다. D램 분야는 기술 장벽이 낮아 중국 등 후발 업체의 도전도 만만치 않다. 대신증권 진영훈 애널리스트는 “한국 반도체 업체는 앞으로도 D램 분야에서 수익을 내겠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성장 폭에는 못 미칠 것이다. 비메모리 특정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동차 수출은 성장해 왔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바라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동차산업은 현재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한국의 기술 수준으로 선발 업체를 따라잡기는 버겁기만 하다. 현대자동차의 연구개발비는 미국 GM의 10% 수준으로 생산 대수가 적은 일본 혼다에도 미치지 못한다. 굿모닝증권 손종원 애널리스트는 “한국차의 인식이 좋아지고 중·대형차 수출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외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는 값싼 차라는 인식을 떨쳐내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 중 선박과 휴대전화 수출은 일본을 따돌리고 급격한 증가 추세이다. 한국은 조선 분야에서 1999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 계속 격차를 벌리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인력과 자본을 바탕으로 삼아 달려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또 세계 조선 시장의 30%를 차지하는 대표적 고부가가치 선박인 고급 여객선 건조는 아직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삼성증권 정순호 애널리스트는 “국내 조선사의 위치가 견고해 수출 물량을 확보하는 데는 문제가 없지만 제품 구성을 좀더 다양하게 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선박 건조로 눈을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동통신산업의 활황을 등에 업고 세계 4위로 올라선 국산 휴대전화 수출도 급격히 꺾일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한 휴대전화 생산 업체 간부는 “핵심 기술 없이 생산 기술력의 우위만 가지고 있는 휴대전화 수출은 이미 정점에 이르렀다”라고 말했다.



수출품이 성장하지 못하고 늙어 버리는 가장 큰 이유를 전문가들은 핵심 기술을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2001년 국내 수출의 7.5%를 차지한 컴퓨터의 핵심 기술 및 부품의 해외 의존도는 심각한 수준이다. 선진국과 2년 이상 격차를 보이고 있고, 국산화율도 60∼70%에 머무르고 있다. 반도체 재료 산업은 국산화율이 60% 정도에 머무르고, 반도체 장비 자급률은 13%에 불과하다. 회사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컬러 휴대전화 단말기 부품은 50% 이상 외국산이고, 핵심 부품의 경우 국산화율이 2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각종 네트워크 장비의 국산화율은 10%에 불과하며, 디지털 가전 분야는 절반이 넘는 부품을 수입하고 있다. 고급 제품일수록 ‘케이스 제조’에 그치는 수준이어서 앞으로 무역 수지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산업 인력 노령화도 큰 문제






산업 인력 노령화도 간과할 수 없는 부문이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 일본 산업 현장에서 불기 시작한 인력 고령화 현상은 일본의 경쟁력을 약화시킨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한국 산업 현장도 본격적인 노령화에 들어서고 있다. 한국 산업의 가장 큰 강점이 양질의 근로자임을 감안하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뒤늦게 시설을 자동화하고 젊은 인력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선박 시장을 고스란히 한국에 내준 일본의 전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1950년대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을 먹여 살린 것은 누이들의 머리카락이었다. 가발산업은 1960년대까지 3대 수출 주력 산업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었다. 이후 섬유·철강·전자제품·선박·반도체·자동차 등이 한국 수출의 견인차로 나섰다. 지금은 D램·조선 등이 세계 1위를 차지하며 우리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다. 이를 대체할 IT·나노·바이오 산업은 반도체 D램과 휴대전화처럼 효자 상품으로 자리잡기에는 최소한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리라는 전망이다.
기존 선수들의 체력을 강화하고 선진 기술을 익히는 동시에 새로운 유망주들도 확실하게 키워내야 한다. 이것이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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